안녕하지 못한 자두야 - 편식하는 청소년 권리모의〈안녕 자두야〉 리뷰

2019.07.01 19:51리뷰 ver.청소년

안녕하지 못한 자두야

- 편식하는 청소년 권리모의안녕 자두야〉 리뷰


사진: <안녕 자두야> 공식 이미지



안녕 자두야 시즌 2, 48화의 제목은 ‘편식을 고치는 방법에 대하여’다. 이 에피소드에서는 멸치를 못 먹는 자두와, 멸치를 먹을 것을 강요하는 엄마의 갈등을 다룬다. 엄마는 자두가 좋아하는 요리들을 잔뜩 해놓고는 멸치를 먹어야 저 음식들을 먹을 수 있다고 말한다. 자두는 멸치를 버리거나 민지에게 또는 고양이에게 주는 방식으로 멸치를 먹지 않으려 노력한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어린이집을 다닐 때 급식으로 나온 국에 든 미더덕을 억지로 삼키려다 토를 했던 적도 있고, 엄마가 내가 싫어하는 연근을 갈아서 강제로 마시도록 한 적도 있었다. 초등학교 때에는 ‘잔반’을 남기지 않도록 강요받는 일이 더 많아졌다. 심지어 학교는 ‘잔반 없는 날’이라는, 잔반을 가장 적게 남긴 반에 간식을 주는 행사까지 만들어서 급식을 다 먹을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하루는 연근이 반찬으로 나왔다. 나는 연근이 먹기 싫어 시간을 질질 끌었고, 결국 급식실에는 나와 급식 도우미인 친구만 남게 되었다. 나는 코를 막고 먹기, 조금씩 잘근잘근 먹기, 몇 번 안 씹고 얼른 삼켜버리기 등등 온갖 방법을 동원하며 겨우 연근을 먹었다. 그러나 그 친구는 내가 연근을 먹은 이후에도 내가 연근을 도로 뱉지는 않는지 의심했었다. 그런 일들 때문에 내게는 급식 검사를 하지 않는 중학교 때까지 억지로 급식을 먹는 습관이 생겼다. 그러다 문득, 내가 음식을 원해서 먹는 게 아닌 억지로 먹는다는 걸 깨달았고 음식을 억지로 먹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그 습관을 버릴 수 있었다.


많은 어른은 자두 엄마처럼,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해야 한다며 “편식은 나쁜 것이고 어릴 때 습관이 어른 돼서도 남으니 얼른 고쳐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 안에 청소년의 의견은 들어있지 않다. 왜 이 음식을 먹기 싫은지, 이 음식을 먹기를 강요당했을 때의 기분과 감정은 어떤지 등의 질문은 하려 하지 않는다. 청소년의 생각을 고려하기보다는 청소년을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자기 생각만을 중요시한다. 특정 음식을 먹지 않았을 때 건강에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이라면 그 음식과 비슷한 영양소를 가진 음식으로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왜 편식을 하는 사람과 함께 얘기를 나누거나 생각과 기분을 묻고, 갈등을 해결할 방법을 의논해보는 상황은 생각하지 못하는 걸까?


사람들은 유난히 청소년의 편식에 민감해한다. 많은 사람이 싫어하는 것으로 유명한 오이를 예로 들면, 어른에게는 오이를 안 먹고 편식을 하면 건강에 안 좋으니 억지로라도 먹자고 하지 않는다. 오이를 먹이기 위해 오이를 먹으면 맛있는 음식을 준다던가, 오이를 다 먹는지 중간에 몰래 안 먹고 뱉지는 않는지 감시하지 않는다. 이처럼, 어른이 오이를 먹지 않는 것과 청소년이 특정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은 확연히 다른 대우를 받게 된다. 이상하리만치 다른 대우의 원인은 청소년의 판단에 대한 불신에 있다. 청소년이 자신의 몸을 잘 알지 못할 것이라는 불신, 청소년은 미성숙해서 판단 또한 미성숙할 것이라는 불신, 청소년의 결정은 성장에 방해가 되고 미래에 후회하게 될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이 바탕이 되어 청소년의 식습관을 강제로 고치려는 일이 생겨난다.


내가 이 음식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이 음식을 먹었을 때 속이 좋은지 안 좋은지, 어떤 음식을 먹고 싶은지 등은 자신이 제일 잘 안다. ‘나’에 관한 것은 어떤 사람도 ‘나’보다 더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어른은 청소년이 내리는 스스로에 대한 판단이 미숙하다고 치부해버리고, 청소년을 한 인격체가 아닌 미숙하고 제멋대로인 존재로 단정 지어 버린다.


내가 초등학생일 적, 급식 도우미 친구가 내가 잘 먹지 못하는 연근 반찬을 강제로 먹게 하고, 먹은 뒤에도 뱉지는 않는지 끊임없이 의심했던 이유도 나를 불신했기 때문이다. 이런 불신은 청소년인 나를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강박에서 나온다. 부모와 교사들, 어른들은 청소년이 나이대의 평균 키나 평균 몸무게에 맞지 않으면, 청소년을 평균에 끼어맞춰야 한다는 내면적 압박을 받는다. 사회적으로 정해져 있는 나이대별 평균 키, 몸무게 등은 개개인이 느끼는 압박을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왔다. 개 중에는 필요한 보호도 있었지만, 나를 억압하는 보호도 있었다. 자두 엄마가 자두를 보호하기 위해 멸치를 먹으라고 강요하는 것을 보호라 할 수 있을까? 자두의 감정과 생각을 고려하지 않고, 멸치를 먹지 않기로 한 자두의 결정을 무시해버리는 건 보호가 아니라 자두에 대한 불신을 바탕으로 한 통제가 된다. 나는 내 경험들을 살펴보았을 때 그 속에 보호라고 이름 붙일 만한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보호는 내가 무언가를 하려 할 때 그 행위를 할 수 있게끔 보장하기 위한 밑바탕이어야 한다. 나의 건강함을 위한 보호는 내가 못 먹는 음식을 강제로 먹이는 게 아니다.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들로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것, 나와의 대화를 통해 내가 무엇을 싫어하고 왜 이 음식을 먹지 않는지 의사를 묻고 존중해주는 것, 그로 하여금 내가 한 존재로서 존중받으며 식사를 할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권리모 기자



이번 24호는 4.9통일평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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