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적응하지 못했고, 적응하지 않았다.”- 학내 인권 활동을 했던 졸업생 이수경, 이효빈 인터뷰

2019.03.28 23:34청소년 24시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고, 적응하지 않았다.”

- 학내 인권 활동을 했던 졸업생 이수경, 이효빈 인터뷰

 

 

 

*대자보 전문: https://yosm.asunaro.or.kr/376

 

 

폭력적인 학교를 바꾸어나가려는 학생들이 있다. 이들은 학생들에게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학교와 불화하고, 맞서 싸웠다. 올해 김해구산고등학교, 분성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효빈과 수경은 경남 학생인권조례를 만들기 위해 행동하는 ‘조례만드는청소년’의 회원이기도 하다. 졸업식 전에 학교에 대자보를 붙여 화제가 되었던 이들의 학교생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1. 고민의 시작

 

- 효빈(효) : 입시 위주의 교육이 맞지 않을 것 같아 대안고등학교를 가려고 했는데 두 번이나 떨어지고 지금의 인문계 고등학교를 입학했다. 1교시부터 8교시까지 앉아 있어야 하고, 하고 싶은 것은 아무것도 하지 못해서 힘들었다. 대학에 갈 지 말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대학에 가는 이유는 더 나은 일자리 때문인데, 결국 입시에 대한 고민이 불안정한 일자리에 대한 고민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IMF 이후 생겨난 비정규직 일자리들이 지금 내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그 분야에 대한 공부를 더 하고 싶어졌다. 학교에는 더 적응하기가 어려워졌다. 반 아이들과 관심사가 너무 달라서 이야기하는 것이 재미가 없었고, 혼자 고독한 척했지만 사실 굉장히 외로웠다. 대학에 가지 않기로 결정하고, 매주 화요일마다 학교를 가지 않는 대신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학교와 가족과 갈등도 심했지만, 내가 워낙 강경한 태도를 취해서 결국 화요일에는 학교를 가지 않았다. 하지만 수요일에 학교를 가면, 조금의 자유는 쥘 수는 있었지만 오히려 그게 더 힘든 부분도 있었다. 정상적인 루트만을 따르며 사회가 요구하는 생각만을 하는 친구들 속에서 점점 문제의식만 커가던 나는 학교가 적응하기 힘든 공간이 되어갔다. 밖에서는 같이 이야기하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학교에는 비빌 언덕이 존재하지 않았다.

 

- : 우울증이 있었고, 교실에 있으면 숨쉬기가 힘들었다. 입시 공부가 안 맞았는데 학교는 입시 공부만을 강요했고, 답답해서 계속 눈물이 났다. 울면 반 아이들이 쳐다보니까 화장실에서 울다가 들어가고, 부모는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해서 계속 싸웠다.

 

1학년 끝날 쯤에 국정화 교과서 논란이 터졌다. 나는 역사를 굉장히 좋아했는데 박근혜 정부 입맛대로 역사 교과서를 쓴다고 하니까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같은 동아리 하던 언니와 대자보를 붙였다. 학교의 인성부장 교사가 나를 불러서 찬반이 있는 문제고, 시끄러워질 수 있으니 떼는 게 좋지 않겠냐고 했다. 찬반 있는 거 알고 있으니 나는 반대하는 쪽 대자보를 붙인 거다, 찬성하시면 옆에 찬성 대자보 붙이시라고 했다. 그 이후로 대자보는 2주정도 붙어 있었다.

 

2. 교칙 제·개정위원회의 경험

 

- : 1학년 때 학생들을 다 모아놓은 간담회 자리에서 교칙 제·개정위원회의 학부모, 교사위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학생들이 갈색 머리를 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 때 학부모위원들이 다 갈색 머리였다. 그래서 손을 들고 학부모 위원분들 다 갈색 머리지만 전혀 양아치 같지 않고 우아하시다. 학생들도 똑같다.” 했다. 그 때는 인권이라는 말도 몰랐는데 그냥 울컥해서 애써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뒤에서 한 교사가 일어나서 이건 학생인권의 문제라고 길게 지적했다. 우리한테도 인권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엄청 울었다. 그 전에 사회 문제 관련 동아리를 만들려고 했을 때에 지도 교사를 찾지 못해서 만들지 못했는데 간담회가 끝나고 그 선생님한테 찾아가서 동아리 지도 교사를 해달라고 했다. 그 분이 맡아주신 덕분에 2학년 때는 스포트라이트라는 이름의 사회 참여 동아리를 만들 수 있었다.

 

동아리에서 인권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하고 2학년 때는 교칙재개정위원회의 학생 위원으로 참여했다. 그 당시에는 학생생활평점제 존폐 여부가 큰 안건이었다. 학생생활평점제가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는 첫 번째로 상벌점을 내리는 교사의 기준이 자의적이었고, 두 번째로 학생들이 벌점을 받는다고 잘못에 대한 반성을 불러일으키지 않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학생의 행동에 수치화된 점수를 부여하는 것이 비인간적이고, 비교육적이었다. 하지만 교사 위원들의 끈질긴 반대 끝에 결국 평점제는 유지되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교육감이 평점제를 없애라는 권고를 내렸고, 권고가 내려오자마자 평점제가 싹 폐지됐다. 한 학기동안 치열하게 논의했던 것이 없던 일처럼 되어버려서 허무했다. 그리고 학생들 앞에서는 기세등등하더니 교육청의 지시에 한 마디 하지 못하는 교사들이 우스워보였다.

 

- : 지금의 학칙이 잘못된 걸 알고 있는데 여기서 가만히 있으면 사회에 나가서도 가만히 있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2학년 때 학칙 개정을 준비하게 됐다. 같이 할 만 한 친구들을 모으고, 학칙 개정 며칠 전에 캠페인을 벌이면서 개정 사실을 알리고, 학생들의 의견도 받았다. 그런데 준비 기간이 너무 짧았다. 가장 의견이 많았던 것은 등교할 때 체육복을 입고 등교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학칙 제·개정위원회는 학생이 3, 학부모 3, 교사 5명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3명의 학생위원들이 주장해도 8명의 학부모, 교사 위원들이 반대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그 안에서 학생 위원들조차 맞지 않았다. 지금의 교칙이 인권 원칙에 위배되니까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다른 학생위원들은 현실적으로 학부모나 교사가 수용할 수 있는 선으로 양보해야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개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규정개정 토론과정에서 학생위원들끼리도 의견이 어긋나는 거 같아 쉬는 시간에 맞춰보려 나가자고 했는데, 오히려 나를 째려보며 가만히 있었던 친구의 태도가 나에게 상처가 되었었다. 그걸 보던 학부모 위원은 웃었다. 내가 혼자 열을 내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 모든 것들에 상처를 받아서 재개정위원회가 끝나고 울었다. 인성부 교사가 위로한답시고 등을 두드려 주는데 기만으로 느껴졌고, 그건 기만이었다.

 

3학년 때도 다시 학칙 제·개정위원회를 하는 때가 왔고, 지난번의 실패를 만회할 수 있도록 다시 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같이 하려는 친구가 2학년 친구 2명 정도밖에 없었다. 내 또래는 다 입시 때문에 못했고, 어떤 친구는 나한테 와서 대학을 가는 게 너무 중요하다, 미안하다고 이야기를 했다. 같은 사회문제에 대한 가치관을 공유하는 친구였는데, 아쉬운 건 있었다. ‘쟤는 혼자 살 길 찾네?’ 같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친구 두 명과 모임도 하고 책도 같이 읽었는데 사람이 적다보니 흐지부지하게 끝났다. 그 이후로 학교에서 내가 뭘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됐다. 혼자 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학교 밖 활동에 더 집중했던 것 같다.

 

3. 학내 인권 활동

 

- : ‘스포트라이트에서 처음에는 세월호나 위안부 관련 활동을 하다가 학생 인권에 대한 캠페인을 하게 되었다. 지나다니는 학생 30명을 무작위로 뽑아서 학생다움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많은 학생들이 학생다움을 가리켜 없어져야 하는 이름이라고 답해서 놀랐다. 역사적으로 저항하던 존재들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자유롭게 사는 것, 하고 싶은 걸 하는 것, 고지식한 어른들의 편견에 가려져 있는 학생들의 인권, 선생님이 결정할 수 없는 것, 모범생한테 붙는 이름 같은 답이 나왔다. 그런 답변들을 보면서 계속 학생인권 활동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학년 때는 스포트라이트가 해체되고, 혼자서 학생인권 수다회를 열었다. “학생인권 관련해서 하고 싶은 말 있는 사람들 모여라했는데 20명이 모였다. 그 중에 한 명이 엄청나게 눈을 반짝이며 질문을 계속 했고, 그 사람을 보면서 내가 졸업해도 이 활동을 이어나갈 사람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벅찼다. 수다회는 그 후로도 정기적으로 모여서 학생인권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영화 보는 활동도 했다.

 

4. 대자보

 

- : 보통 학생들은 대자보를 그냥 읽어보고 넘어가지 않나. 그 안에서 고민이 흩어진다고 생각한다. 대자보 이후에 고민을 모을 창구가 있어야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고민을 어떻게 학교를 바꾸는 힘으로 이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자보를 하자고 했을 때 처음에는 반대를 했다. 근데 2학년 때 저를 생각하면, 3학년의 누군가가 이런 대자보를 붙이고 인권에 관심이 있다고 말해줬다면 도움이 많이 됐을 것 같아서, 대자보를 붙이면 다음 사람에게 힘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마음을 바꾸고 붙였다.

 

- : 대자보 붙인 건 지금까지 해왔던 일의 연속이고,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발악이었다. 졸업하기가 싫었다. 그동안 대학도 포기하고 (나를) 바쳤는데 학교에서 쫓겨나는 것 같았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는데, 교사들과 다 같이 모여서 간담회도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해서 너무 아쉬웠다. 학생들은 들어오는 것도 맘대로 못하는데, 나가는 데도 맘대로 못하는구나 싶었다. 열심히 집짓고 다 일궈놨는데 쫓겨나는 느낌? 예를 들어 여성 운동은 여성이면 평생 할 수 있는데. 학교를 싸움의 공간으로 인식했는데 학교가 나를 이렇게 버릴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졸업할 때 우울하고 감당이 안 됐다. 그래서 나는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게 학교로 다시 돌아오고 싶어서, 같이 싸워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다. 학교는 힘들고 즐거운 기억이 같이 있다. 희생하고 낙인 당했던 게 억울해서 학교 사람들이 나를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렇게 애썼던 사람이 있었다는 걸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썼다.

 

5. 힘들었던 순간과 극복했던 방법

 

- : 정신적으로 계속 힘들었다. 오전에 캠페인하고, 포스터 붙였다가 오후에는 다 그만두겠다고 하기도 했다. 동아리 지도 교사 선생님한테 찾아가서 나는 사실 매일 죽고 싶다고 하면서 울었다.

 

작은 승리의 경험들이 계속 싸울 수 있게 했다. 학교에서 새로 교문 지도를 실시한다고 공고를 했는데, 공고 이후에 학생 게시판에 학생들과 교사들이 반대하는 내용의 쪽지를 잔뜩 붙였다. 그 때 학생들의 여론을 확인하고 학생인권 수다회도 처음 했다. 그 후에 교사들이 교문지도를 하는데 30분 동안 한 명도 잡지 않더라. 딱 봐도 우리 반응이 두려워서 그랬던 거다. 그 때 너무 뿌듯하고 짜릿했다. ‘송곳이라는 웹툰에서 싸움은 경계를 발견하는 일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학생인권활동을 하면서 우리가 무엇을 하면 교사들이 겁을 내는지 알게 됐고, 경계를 어디까지 넓힐 수 있는지 확인하게 됐다.

 

- : 나는 수경처럼 학교 안에서 나를 도와주는 교사나 친구들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 안에서 겪은 부당한 일들이 더 나아가 학교를 이루고 있는 부당한 사회의 모습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학생들이 살기 위해 상황으로부터 비롯되는 고통을 참으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지금 사회와 학교에 대한 공부와 고민을 많이 했었다. 그래서 나는 학교가 경쟁을 조장하고 힘이 센 사람의 말에는 토를 달 수 없는 모습을 보면서 이 사회가 오직 힘이 강한 자와 성공한자만이, 사회의 부들을 누릴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게끔 만드는 곳이라는 생각을 지금은 하고 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육청도 학업성취도가 높은 학교에 지원을 더 많이 해주다보니 사회가 학교와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 저항하는 게 사회에서 저항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미래가 아닌 현재에 저항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치이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