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 7. 16:28ㆍ특별 연재/체벌거부선언
저는 고등학교에서 16년째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교사입니다. 처음 교사가 되려고 마음 먹었을 때 큰 사명감이나 윤리의식 없이 안정적 직장 그리고 여유로운 생활을 동경한 것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교사가 되기 전에 준비했던 것은 임용고사를 합격하는 것이지 직업윤리 의식의 측면은 고려한 적이 없었습니다.
막상 임용되고 나서 학교현장에 가보니 제가 공부한 것은 정말 무용지물이었습니다. 학생들을 대하면서 그저 낙후된 시골에 사는 학생들을 동정하면서 그들을 도와주기 위해 학업에 매진하여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을 이등시민으로 보고 계속 계몽하고 깨우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행사되는 폭력은 아이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행해야하는 필요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버트란트 러셀의 저작을 읽고 공부하면서 저의 생각이 모순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교육이 학습자의 자율성을 전제로 한 것이고 학습자의 성장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며 학생을 한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것이 그 기초라고 하는 점을 배웠습니다. 이와 반대로 계몽의 대상이고 이등시민인 학생을 전제하고 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공포를 통해 행동을 바꾸게 하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 교정 또는 훈련 내지 세뇌가 되는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교육을 가장한 폭력과 세뇌로 학생들의 존엄함을 짓밟고 그들을 길들였을 뿐이었습니다. 임용된지 3년이 지나서야 그걸 깨달았으니 그간 저와 마주친 수많은 학생들의 피해가 너무도 큽니다. 또 깨달았다고 바로 실천으로 옮겨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면 성과중심의 학교행정과 문화는 그 자체로 폭력적이며 그 속에서 가장 손쉽게 성과를 내는 길은 폭력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손쉬운 길의 유혹을 이겨내기 힘들었습니다. 직접적 폭력을 즉 신체적 폭력을 쓰지 않더라도 제게 주어진 교사로서의 권한을 최대한 이용하면 학생들의 자유를 침해했습니다. 또한 과거의 폭력적 성향을 자랑하듯 말하며 학생들이 제 말을 듣지 않으면 언제든 과거로 회귀할 수 있다고 위협했습니다. 교육자로서 부끄러운 나날들이었습니다.
저는 이후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자치를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교육은 인권의 일부임을 알았고 인권의 보장을 위해 교육이 필요함을 알았습니다. 체벌은 인간의 존엄함을 짓밟는 반인권적 행위이며 반교육적 야만임을 깨달았습니다. 체벌을 하지 않고 체벌할 수 있다고 협박하고 암시하는 것도 마찬가지임도 알았습니다. 이에 제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며 앞으로 더 인권적이고 교육적이며 민주적인 학교를 만들기 위해 함께 할 것을 약속합니다.
- 고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