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1. 16. 19:50ㆍ특별 연재/체벌거부선언
부모와 교사, 그리고 청소년은 체벌과 가장 관련이 깊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부모와 교사는 주로 체벌의 가해자가 되고, 청소년은 체벌의 피해자가 됩니다. “맞을 짓을 했으면 맞아야지.” 관습처럼 여겨지는 체벌 문화에 문제의식을 가진 부모, 교사, 청소년을 만나보았습니다. 그들이 서 있는 자리에서 체벌을 어떻게 거부할 수 있을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이를 때리는 원인은 아이가 아닌 나에게 있었다."
체벌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인터뷰 - (1) 부모 편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결혼 전에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강해졌다. 3년 쯤 전, 어린이책시민연대(이하 어린이책)를 알게 되었다. “청소년들이 무엇이 불편해서 인권 이야기를 할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궁금해서 계속 활동한다. 나는 청소년기가 지났지만, 아이들의 청소년기를 생각하면서.
부모로서 살아오면서 자녀에게 체벌을 가한 경험이 있나.
물론 있다. 아이를 낳긴 했는데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몰라 무작정 육아서를 읽었다, 그런데 다행히 내가 읽은 육아서에는 아이를 때리지 말라고 쓰여 있었다. 체벌이 폭력을 가르친다는 책도 많이 읽었다. ‘아 내가 아이를 때리면 아이가 다른 아이를 때리게 되겠다’ 싶어 때리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감정선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었다.
아이를 때리는 원인은 아이가 아닌 나에게 있었다. 아이를 정말 심하게 때린 적이 한번 있다. 놀이터에서 큰 아이가 동생을 괴롭힌 적이 있었는데, 그 후에 큰 아이를 때렸다. 아이가 한 행동보다는, 다른 엄마들에게 비추어지는 내 모습이 신경 쓰여서 아이에게 화를 냈다. “너 때문에 내 체면이 안 섰다. 어떻게 거기에서 네 동생을 그렇게 할 수가 있나. 엄마가 뭐가 되나” 남의 시선에 대한 걱정과 부끄러움으로 아이를 때렸다. 그간 결심했던 것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후회가 밀려왔다. 이것밖에 안 되는 엄마인가 하는 죄책감이 컸다.
인터뷰에 오기 전 질문지를 읽다 생각해보니, 사과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놀고 있던 아이를 불러서 물어보니 아무렇지도 않게 ‘엄마는 화나면 때리잖아’라고 하더라. 꿀밤 등을 계속 때려왔던 것이다. 미안하다고, 엄마가 앞으로는 정말 안 때리겠다고 했다. 남편과도 ‘우리 앞으로 절대 때리지 말자’고 이야기했다.
청소년기에 체벌을 당한 적이 있나.
어린 시절에 부모님이 꿀밤을 때리거나, 머리를 빗어주다 화가 나서 빗으로 머리를 때린 일이 있었다. 엄마도 화가 나고 분에 못 이겨서 나를 때렸던 것이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너 잘못했으니까 대, 회초리 맞아’ 같은 말을 들었던 경험은 없다. 학교에서는 단체기합을 종종 당했다. 초등학교 때 오리걸음을 많이 했는데, 특별히 잘못한 게 없어도 군기를 잡는다는 이유로 했던 것 같다.
학교에서 단체기합을 받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나.
억울하다는 생각이 컸고, 잘못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잘못한 그 아이는 누구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지금 생각하면 미숙한 생각이다. 선생님에게 화가 나야 하는데 잘못한 한 사람에게 화가 났던 것 같다. 부당한 상황에 대해 화가 나야 하는데,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다들 그렇지 않았을까.
그밖에도 선생님들이 숙제를 안 해오면 겨드랑이 밑을 꼬집고, 지압에 좋다며 머리채를 잡고 흔들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인권침해지만, 그때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다.
부모들이 왜 체벌을 한다고 생각하나.
어쩌다 체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 본 분이 있는데, 한 번도 이런 생각을 깊게 해본 적이 없으시더라. 체벌을 주제로 이야기했는데, ‘애들 그 시기에 때려서라도 말을 듣게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이 은연중에 있었다. 설득을 해도 어느 정도 체벌은 필요하다고 했다. 그게 보편적인 어른들의 생각인 것 같다. 체벌에 대해서 한 번이라도 청소년의 이야기를 듣거나 과거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고 별 고민 없이 아이를 키우다보면 때리게 되는 것 같다. 더 무서운 건 그런 엄마들이 모여서 ‘그래, 때려야 된다. 안 그러면 커서 못 잡는다’고 이야기하며 체벌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반대편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다보니, 체벌을 옹호하는 분위기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엄마들은 아이가 다른 친구를 괴롭히지 않도록, 너그럽게 대하도록 만들기 위해 체벌을 한다. 아이의 행동을 교정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건데, 모순적이게도 체벌을 당한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에 비해 더 자주 폭력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걸 보면서도 폭력은 폭력을 가르친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미디어에서는 체벌을 하는 사람이 주로 엄마이고, 아빠는 상대적으로 너그러운 것처럼 그린다.
스트레스가 큰 원인인 것 같다. 남편과 싸웠거나, 몸이 안 좋거나 하면 화를 많이 내게 된다.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한다. 모든 책임을 엄마에게 돌리는 것도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남편이 ‘네가 잘못 키워서 그래’라고 말하고는 한다. 둘째가 많이 칭얼거리는데, ‘네가 자꾸 받아주니까 더 한다’라고 말한다. 나는 고민하고 노력해서 체벌을 하지 않는 것인데, 아이를 ‘오냐오냐’ 키운다고 비난한다. 잘하려고 하지만, 항상 좋기만 할 수는 없지 않나. 아이들이 내 맘대로 안 되는 걸. 억울하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까 신경 쓰인다고 했는데. 육아를 같이 해야 할 남편이 육아의 첫 번째 감시자, 평가자인 셈이다. 여성의 독박육아가 사라지면 체벌이 줄어들까.
아마 줄어들긴 하겠지만, 체벌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변화 없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상한 정상가족> 이라는 책에서 봤는데, 스웨덴 등 외국에서는 부모와 종사자에 대한 교육을 통해 체벌금지법이 잘 정착되어 신고도 활발하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아동복지법 등 체벌을 금지하는 법은 있지만 ‘우리 애 내가 때린다는데’ 등의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있어서 많은 사람들의 실생활이 변화하지는 못한 것 같다. 생각이 변화하는 기회를 만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보통 엄마들은 아이를 서울대 보내는 법 등의 교육에는 관심이 있지만,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주는 교육에는 관심이 적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열망은 다들 있지만, ‘좋은 엄마는 아이를 똑똑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아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이 글을 볼 부모 분들이 생활 속에서 해갈 수 있는 체벌 근절을 위한 실천은 무엇이 있을까?
일단 체벌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누가 했다더라, 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 말고 자기만의 신념이 있어야 한다. 체벌을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비슷한 생각을 하는 또래 엄마들을 많이 만나서 경험을 들어보는 것도 필요하다.
아이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아이 입장에서는 엄마를 화나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닌데. 아이의 입장에서 상황을 이해한다면 화가 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 있어 어린이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된다. 어린이 책 토론을 통해 어린이를 보호하고 가르치려는 대상으로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고 엄마로서 나도 모르게 권위적인 생각들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이를 존중한다는 것에 대해 구체적인 고민들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안다고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없다는 것도 동시에 알게 되었지만.
예를 들어, <삐삐 롱스타킹>에 나오는 삐삐의 행동이 어른의 시선에서는 화가 나기도 하고, 버릇없어 보였는데, 들여다보니 주체적으로 어른과 동등하게 행동하고 이야기하고 있더라. 아이다움을 강요하고 있는 나의 편견을 알 수 있게 된 때다. 어린이 책을 읽다보면 아이의 마음이 조금씩 보이고, 굳이 잔소리 하지 않아도 될 상황이 생긴다. 아이는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다른 갈등으로부터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아이들에게 화를 내게 되니, 스트레스 해소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나 같은 경우,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고, 학교에 가고 나서는 굉장히 편해졌다. 24시간 붙어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다. 어디로도 탈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풀 곳이 없어 아이에게 화를 냈던 것 같다.
체벌 근절을 위해 사회제도적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체벌을 하지 말자는 목소리가 사회에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청소년일 때도 체벌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는 했다. 하지만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드물었던 것 같다. 실제로 체벌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보여주는 일이 필요하다. 체벌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한 것 같다.
- 글 : 치이즈
- 만화 : 이기,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