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라는 ‘보험’을 들지 않기로 했다.

2018. 11. 6. 19:55특별 연재/2018 나의 대학입시거부

대학이라는 ‘보험’을 들지 않기로 했다.




 1000명이 성공을 위해 줄 선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고등학교 2학년 당시 평균 8등급이던 나는 아마 1000번째 였을 것이다. 왜 그렇게 공부를 못했느냐고? 일단 우리집은 가난해서 사교육 같은 건 시킬 여유가 없었다. 또한 우리 부모님은 자신들의 선택을 억지로 강요하는 분들이 아니었다. 대신 모든 선택은 나 스스로 책임을 지게 하셨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학교공부가 더럽게 재미없었다. 인생의 절반을 학교에서 보내는데 학교에서 하는 말이 ‘공부해야 먹고 살 수 있다.’라면 어찌 펜 한 번 들어보려 시도 한 번 안 해 봤겠는가. 게임 좋아하던 나에게 학교공부는 그 여러 번의 시도들이 좌절될 정도로 오버워치보다 가치가 없었다. 



 입시경쟁은 생존싸움이다. 대학은 마치 ‘보험’과 같다. “대학 나온다고 일 잘하는 거 아니다. 요즘은 능력이 더 중요하다.” 라고 하는데, 그 말하는 기업의 고위직 인사들은 다 명문대 나왔다. 결국 대학교에서 교육의 질이 아무리 같잖아도 ‘4년제 대학 졸업’이라는 한 줄이 있어야 위로 올라갈 기회가 생긴다. 그렇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4년제 학자금 5천만원의 보험을 들이고 ‘보장’을 기대하며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도 살아야 하기 때문에 고2때 한 참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계산기를 두드려봤다.  ‘내가 4년의 시간과 빚을 지며 대학보험에 투자했을 때 과연 그것들을 다 되돌려 받을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답은 ‘매우 희박’ 이었다. 되돌려 받을 수 있는 확률은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돈을 투자해야 높아지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2 때 대학을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냥 가난하게 살게 되더라도 서른 되기 전에 전셋집 하나 장만한 뒤 여행 다니며 욜로나 하자~’ 라며 마음을 가볍게 먹기도 했었다. 그러나 마음 속 다른 한 편으로는 너무나 억울하고도 분했다. ‘왜 학교공부를 못하면 좋은 대학을 못 가고, 좋은 대학을 못 가면 좋은 일자리를 가지지 못하는 거지? 왜 안정적인 삶을 선택할 기회를 모두에게 주지 않는 거지?’ 라는 분노가 항상 나에게 있었고, 우리 부모님은 언니랑 나 먹여 살리려고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하는데도 집이 가난한 것이 의문스러웠다.



 나는 그 이유를 사회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를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다. 또한 매일 고생스럽게 일하는 부모님과 우리 부모님뿐만 아니라 대학생들, 취준생들, 직장인들, 학생들 그 모두가 안정적인 미래를 위해 절대로 게을리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지금 사회는 모두가 노력하는데도 사회의 부가 절대로 공평하게 돌아가고 있지 않다. 나는 그 이유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속에서 일하는 사람과 일에서 나오는 과실을 편하게 빼앗아가는 사람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원시공동체 이후부터 역사 속 꾸준히 존재해왔던 권력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불평등이 자본주의 사회 또한 반복되고 있다는 것에 호기심을 느꼈고 그러한 역사를 설명하는 맑스주의 철학을 더 공부해보게 되었다.



 그래서 맑스주의를 공부하는데 시간을 더 투자하고 싶었다. 그래서 자퇴를 고민했었다. 여기서부턴 대학 갈지 말지 고민하는 사람은 더 집중해서 읽어주시길 바란다. 학교에 있는 게 너무나도 싫었다. 7교시까지 붕 뜬 채 지루하게 앉아있기만 했던 시간이 아까웠고, 한참 사회에 대해 날 선 시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던 나는 친구들과 교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러나 무작정 나오기에는 자퇴를 하고 나서 내 시간을 어떻게 쓸지에 대한 계획도 없었고 잘 쓸 수 있을 만한 뚜렷한 목표도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자퇴를 하는 건 오히려 내가 살고 있는 현실사회에서 도피하는 것밖에 안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잘못된 사회에 대해 알려면, 오히려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망을 끊지 않는 것이 좋을 거 같아 학교를 다니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주기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 학교에 나오지 않는 날을 정해, 그 날에는 학교를 나오지 않고 온전히 나에게 시간을 투자했다. 그 시간에는 카페를 가서 자본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책들을 읽었고 실제로 맑스주의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과도 만나 토론을 하며 계속해서 사회를 알아가고자 하는 노력들을 하였다.



 이런저런 요란했던 삶들을 보내고 고3 막바지 지금, 여기에 서 있다. 대학은 원한다면 누구나 더 배우러 갈 수 있는 곳이어야 하고, 공부는 자기가 흥미를 느낄 때 시도해볼 만한 것이어야 한다. 다양한 재능들과 다양한 가능성들은 존중받아야 하며, 사회가 누구나 안정적으로 살 수 있도록 분배가 평등하게 이루어질 때 다양한 삶을 선택할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해도 빈부격차는 계속해서 벌어지고, 경제위기가 주기적으로 와 불안정하다면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다’ 라는 것만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다.



 나는 지금은 보험을 들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원한다. 중요한 건 끊임없이 경쟁을 강요하는 획일적인 하나의 삶만을 고민하게 하는 사회 말고,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있는 사회를 그리는 데에 더 내 삶을 보태고 싶다. 생산과 분배가 평등하게 이루어질 때, 그래서 내 생계가 안정적이어 질 때, 그래서 더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해볼 수 있을 때 우리는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것이 내가 내린 답이고, 방금 말한 것들이 어떻게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 그 방법을 끊임없이 주위 사람들과 고민해나갈 것이다. 어떻게 보면 대학을 포기한 것도 거부한 것도 아니라 가난한 환경 때문에 사교육에 찌들지 않음으로써 대학을 자연스럽게 안 가는 결론을 낸 것이었고, 그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된 사회에 대해 더 알아가보자 하는 열망을 가지게 됐다고 생각한다. 


- 이효빈 



투명가방끈은 수능시험이 치뤄지는 11월15일 목요일, 

'2018대학입시거부선언' 공동선언문을 발표하는 <멈춘자들의행진>을 개최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투명가방끈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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