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9. 15. 21:00ㆍ인트로
혐오에 갇힌 청소년
- 삽화: 라망
청소년에게 씌워진 대표적인 세 가지 이미지가 있다. ‘미래의 주역’, ‘보호의 대상’, ‘위험하고 충동적인 10대’가 그것이다. 이 이미지들은 서로 모순되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같은 뿌리를 공유하고 있다. 바로 ‘청소년은 미성숙하고 완전하지 않은 존재’라는 관점이다. 이는 청소년에 대한 통제를 정당화하고 다양한 인권침해의 구실이 되어 왔다. 청소년혐오에 바탕을 둔 이러한 이미지는 실제의 청소년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요즘것들은 청소년이라는 집단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넘어 ‘혐오’라는 표현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회구조적 폭력이 존재한다는 관점을 전제로 글을 쓰고 실어 왔다. 이번 호에서는 바로 그 ‘청소년혐오’ 자체를 짚는다.
특집기사에서는 청소년혐오의 기본적인 특성과 작동 방식을 살핀다. 칼럼 <‘급식충’은 청소년혐오 표현이다>에서는 ‘급식충’의 어원과 맥락 등을 고찰하여 그 속에 담긴 청소년혐오를 집어낸다. 다른 칼럼인 <청소년의 삶을 정말로 바꾸려면?>에서는 청소년혐오가 청소년의 삶을 둘러싼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는 점을 지적한다. ‘극한직업 청소년’에는 온라인에서 청소년임을 드러내지 못한 경험, 청소년이어서 배제된 경험담이 생생하게 담겼다. 우리 사회는 청소년이 존재를 숨기는 것이 안전하다고 느낄 정도로 강력한 청소년혐오 사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존재를 드러내고 인권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어 온 청소년들이 있어 왔다. 리뷰와 소식 코너에서 그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다. 청소년혐오에 지친 당신에게 이번 호가 힘이 되었으면 한다.
- 호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