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 43

2017. 11. 16. 22:22특별 연재/2017 나의 대학입시거부

 올해도 어김없이 대학입시를 위한 수능이 치러질 예정이다. 하지만 여기 입시경쟁과 학력학벌차별에 반대하며 대학입시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거창하고 대단한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11월 6일부터 <2017 나의 대학입시거부> 코너를 통해 대학입시거부자 10여 명의 목소리를 담고자 한다. 이들이 직접 전하는 대학입시거부의 이유와 의미를 들어보자.


-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지문 43


 “너 지금 뭐해?”

 “, 아무것도 안 해요.”


 입 밖으로 낸 소리가 생각보다 커서 말끝이 흐려졌다. 몇 여자애들의 상황을 살피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샤프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해야 해, 정말 별 것 아닌 것 같이 숨겨야 해, 이상한 걸 숨기려는 게 아니라 내 사생활을 지키려는 의도 정도로 숨기는 척 해야 해…….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기습이었다. 왜지? 평소에 이렇게 꼼꼼히 순찰하지 않는데.


 “아무것도 안 하면 어떡하니? 얼른 책 꺼내고, 공부할 거 펴.”


 아, 그냥 확인차였나 보다. 내가 뭘 쓰고 있는지는 관심이 없겠구나.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급하게 노트를 닫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눈앞에 보이는 수학 문제집을 빼 들었다. 이제 갔나? 지우개를 찾는 척 슬쩍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 갔다, 갔다. 뒷짐을 진 사감의 뒷모습이 벌써 다섯 걸음 이상 떨어져 있었다. 문제집은 펼쳐 놨지만 나는 샤프를 손에 쥔 채 미동도 없이 앉아만 있었다. 그러기를 1, 2, …… 끼이익, 독서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분명 이 소리는 사감이 독서실을 나간 것일 테지. 나는 조금 더 기다렸다가, 고개를 빼꼼 들어 주위의 시선이 모두 각자의 책으로 가있는 것을 확인하고 아까 닫았던 노트를 다시 펼쳐 들었다. 아까는 너무 부주의했지, 책상에 대놓고 펼쳐두고 쓰다니……. 사물함을 열고 영단어장을 집었다. 노트를 적당히 가릴 만한 것이 필요했다. 수학 문제집에 영단어장이라니, 조합이 너무 터무니없나. 살짝 웃음이 나왔다. 영단어장을 펼쳐 노트를 가리듯 덮고 아까 쓰던 글을 처음부터 다시 천천히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유언장, 20161028


 중간쯤 읽고 있던 중이었다. 갑자기 영단어장 앞에 쪽지 하나가 톡, 떨어졌다. 읽던 글을 빠르게 손바닥으로 덮었다. 으아, 완전 깜짝이야. 쪽지를 들고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웃음을 참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 은주의 옆얼굴이 보였다. 쪽지를 펼쳤다.


 ‘오늘 청소 뺑끼치고 떡볶이 ? 다른 애들은 다 괜찮댔음.’


 당연 괜찮지, 근데 어디서 먹게? 휘익, 옆으로 쪽지를 던졌다. 10초도 안 지나서 다시 돌려받았다.


 ‘나가서 먹어야지, 접때 이수정네 걸려서 벌점 10점 먹음


 샹, 그 놈의 벌점. 바깥 온도가 영하 8도 밑인데 꼭 밖에서 먹게 만드는구나. 동의의 의사를 전하는 쪽지를 던지고 탁상시계로 시선을 던졌다. , 10, 10분 남았네. 야자 1교시에 쓰던 걸 마무리 내려고 했는데 그건 무리였나 보다. 조심스럽게 노트를 접어 수학 문제집에 끼워 넣었다.


 “만 사천 원입니다.”

 “나중에 뿜빠하는거다? 일단 카드로 결제해주세요.”


 춥네, 응 추워, 떡볶이를 받아들고 욕 반, 춥다 반을 열심히 궁시렁대며 운동장을 터벅터벅 걸었다. 이쯤 앉자, 너무 끝에 가면 오히려 더 보여. 나를 포함한 204호 룸메이트 넷은 독서실 방향과 정반대인, 그리고 가장 멀리 떨어진 운동장 구석에서 주춤주춤 엉덩이를 내리기 시작했다. 엉덩이가 시리니 털썩 앉을 수는 없고, 궁상맞게 쪼그려 앉자니 그건 불편함을 넘어 그냥 싫은 자세였다. 어쩌다 보니 다들 기도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앉았다. 가운데에 떡볶이를 놓으니 꼭 무슨 의식을 치르는 것 같은 자세가 되었다. 그런 자세가 되었는데도 다들 따뜻한 주머니에서 손을 뺄 생각을 못하고 쭈뼛쭈뼛 떡볶이만 내려다 보았다.


 “야 진짜 존나 춥다. 먹다가 입 돌아가는 거 아니냐.”

 “나 담요 가져왔어, 같이 덮자.”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빨리 먹어 치워야 돼. 용감하게 지희가 먼저 뚜껑을 열었다. 그제서야 다들 젓가락을 들었다.


 “님들 우리 이제 수능 3주도 안남은 거 앎?”

 “, 이 미친놈이 밥맛 떨어지게.”


 안 그래도 추워서 떡볶이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지도 못할 판에, 갑자기 은주가 입을 열었다. 뜨거운 떡볶이마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아 미안, 근데 징그러워서. 은주는 멋쩍게 웃었지만 누구도 반응하는 사람은 없었다. 쩝쩝대는 소리와 훌쩍거리는 소리가 조용히 바람과 함께 날아갔다.


 “너네는 3년 동안 제일 끔찍했던 게 뭐야?”


 무심한 척, 지희가 입을 열었다. 지희의 앞니에 찰싹 붙은 고춧가루가 눈에 밟혔다.


 “솔직히 그냥 하루하루가 지옥 아니었냐.”

 “나는 그래도 시험기간 아닐 땐 좋았다. 2학년 1학기 때까지만.”


 갑자기 다들 회상이라도 하는지 말이 없어졌다. 나도 생각에 빠졌다. 제일 끔찍했던 것? 갑자기 생각하려니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왠지 다 괜찮았던 것 같은 느낌. 이래서 사람들이 발전을 못 하는 걸까? 이것저것 떠올리려고 하는데 불편한 표정을 한 은주가 작게 입을 열었다. 나는 잊을 수 없는 게 있어. 낮고 작은 목소리였음에도 은주의 한마디가 가볍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은주는 잠시 입술을 우물거리다,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우리 자습할 때 있잖아, 집중이 안 돼서 잠깐 손을 놓고 멍 때리고 있었거든. 그냥 그림이나 그릴까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애들이 채점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응? 채점? 수현이가 말을 끊었다. 은주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말을 이어나갔다. 표정이 더욱 불편해 보였다.


 “, 그런데, 너희 알지 동그라미 그릴 때랑 틀려서 직 그을 때랑 소리가 다른 거. 그런데 주위에서 계속 동그라미 치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촤악, 촤악 하고. 왠지 틀리는 소리는 하나도 안 들리더라. 계속 듣고 있는데숨이 막히는 거야. 왜 계속 맞지? 왜 안 틀려? 이러면서. 그러니까 갑자기 주위가 다 물리쳐야 할 적같이 보이고, 내가 너무 한심한 것 같고. 채점소리가 계속 귓가에서 울리는데진짜 거기 더 앉아 있으면 미칠 것 같더라.”


 아 그래서 너 전에 갑자기 창백해져서 방 들어간 거? , 기분이 너무 그래서. 수현과 지희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다들 비슷한 경험을 가진 적이 있는 눈치였다. 은주의 말이 끝나자마자 텅 빈 것 같았던 머릿속에 지난 3년의 기억이 우르르 쏟아졌다. 그리고 왜 내가 유언을 쓰고 있었는지도.


 “맨날 기지개 펴려고 고개 들 때마다 양쪽으로 길게 책상 늘여져 있는 거, 거기 앉은 애들 표정들이 다 죽을상인 거 보이는데 그거 왠지 너무 소름 끼쳐. 정신 차리고 보면 나도 똑같고.”


 속삭이듯 말하는 수현의 목소리가 공포에 질린 것처럼 들렸다. 담요를 좀 더 꽉 둘러맸다.


 “니들 그거 기억 나냐, 나 화장실이 너무 급한데 쉬는 시간까지 못 참겠어서 슬쩍 나가려고 했다가전체 마이크로 존나 크게 거기 나가는 학생, 다시 들어가세요.’ 했던 거.”

 “끔찍하지. 어떻게 잊어. 애들이 다 너 쳐다보고 그래서 결국 돌아와서 엎드려 있었잖아.”

 “난 정말그때만 생각하면.”


 지희가 말을 멈췄다. 다들 안쓰러운 눈빛으로 지희를 바라보았다. 지희는 추위로 붉어진 얼굴로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수현이가 지희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래도 너는 폰 뺏겨서 일주일간 못 쓰지는 않았잖아. 나는 진짜 마지막 날에 사감한테 가서 울면서 빌었다. 부모님한테 연락이라도 하게 제발 달라고.”

 “개 같은 놈들.”


 그렇지 뭐, 학교가. 표정들이 복잡해졌다. 씁쓸한 표정, 울 것 같은 표정, 화나는 표정. 조심스레 표정들을 관찰하다가 나도 입을 열었다.


 “나는제일 이해 안 되는 게, 애들 공부하는 책상 본 적 있어? 거기 붙어 있는 포스트잇들?”

 “1년만 참으면 행복해진다, 미래를 위해 한 걸음, 조금만 더 버티자, 이딴 문구들.. 근데 거기에 하나같이 현재를 위한 글은 하나도 없는 거. 그러면 지금은 괜찮은가? 내일 행복하려고 오늘은 죽어도 괜찮아?”


 담담하게 말하려는 게 실패했다. 점점 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왜 자꾸 미래의 나에게 편지 이딴 거 쓰고 현재의 나는 신경도 안 써? 지금이나 미래나 둘 다 나인데, 왜 자꾸 현재의 나는 이렇게 죽냐고.”


 야 진정해. 지희가 등을 두들겼다. 몸은 추운데 얼굴은 뜨거워졌다. 억울한 일, 끔찍한 일을 말하자면 밤을 새워도 다 못할 것 같았다.


 “나는 왜 꼭 대학 가야 하는지도 모르겠어. 내가 하고 싶은 건 빵 만들고 커피 만드는 건데 왜 굳이 대학을 가야 해?”


 내 말을 다그치려는 듯 바람이 한번 세게 불었다. 무슨 큰일 날 소리냐고 하는 것 같았다.


 “야 너 그 말 상담 받을 때 절대 하지 마라. 나 성적 안 되면 대학 안 갈 거다, 이 한마디 했다가 2시간 동안 설교 오지게 들었어. 대학 안 나오면 거리에서 쓰레기나 줍고 살 거라면서, 몸 팔고 살고 싶냐면서. 리얼 정신 개조 당하는 줄.”


 지희가 몸서리를 쳤다.


 “근데 정말 우리 대학 안 가면 어떻게 되는지 니들 아냐?”


 대답이 없었다. , 들은 게 있어야지. 인생 망한다는 말 말고 들은 거 뭐 있겠냐. 다들 어깨만 한 번 으쓱할 뿐이었다. 원래 인생이 이렇게 폭이 좁은 거였나?


 “됐다 야, 우리 이제 수능만 지나면 다 끝이야. 얼마 남지도 않았어.”

 “맞아, 나 요즘 수능 끝나면 할 리스트 만드는 중임. 눈앞에 있는 게 문제집이 아닐 때면 죄책감은 좀 있지만.”


 갑자기 다들 표정이 밝아졌다. 멈췄던 손들이 다시 떡볶이로 향했다. 폰을 새로 살 거라느니, 일주일간 무단결석할 거라느니, 애인이랑 여행을 갈 거라느니, 미래에 대한 이야기로 시끌해졌다. 가수 오디션을 볼 거라는 은주가 일어서서 춤을 추려는 순간, 야간학습 3교시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어 시발 좆됐다. 야 일어나.”


 다 먹지도 않은 떡볶이를 들고 우다다 달려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떡볶이 국물이 쓰레기통 바닥에 빨갛게 피처럼 질질 새어 나왔다.


 “하여튼 수능 끝나고 다시 보자. 우리의 12년의 끝이다.”


 지희의 말에 친구들은 전부 웃었다. 계단을 우다다 올라가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보았다. 12년의 끝이라는 말이 나는 웃기지 않았다. 무슨 끝이라는 거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인생의 끝을 말하는 건가, 머리가 아팠다. 계단을 뛰어올라가는 것을 멈췄다. 어두워서 그런지 독서실까지 올라가는 계단이 너무 길어 보였다. 아까 쓰다만 유언장이 생각났다.


 ‘수능 끝나고.’


 언제부터 유언장 적는 게 취미처럼 됐더라. 코끝이 시렸다. , 가기 싫다. 무심코 입 밖에 소리내어버렸다. 입 안에 찬 공기가 들어차는 것이 느껴졌다. 속이 벙벙하고 머리도 벙벙했다. 끝나지 않는 악몽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대학에 가고 싶은 걸까? 안 가면 안 되는 걸까? 그런 선택지는 없는 걸까? 하고 싶은 걸 하면 안 되는 걸까? 계단을 오르는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 너무 무거웠다. 어느새 친구들의 뒷모습이 없어졌다. 지독하게 혼자인 기분이 들었다. 하늘에는 달 한 조각 볼 수 없었다. 가서 유언장이나 마저 다 쓰자.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도망칠까?”


 어떻게 된 사고 회로가 이따위로 가는지, 작게 감탄했다. 하지만 말하고 나자 이만큼 완벽한 답이 없는 것 같았다. 도망가서 뭐? 어떻게 하게? 너 가면 죽어. 누군가 속삭였다. 하지만 이미 발은 움직이고 있었다. 계단을 오르던 발은 꿈쩍도 안하더니, 내려가는 발은 탭댄스 뺨을 친다. 보폭은 점점 넓어졌다. 독서실을 뒤로하고 전력을 다해 뛰는데 바람이 계속 밀었다. 돌아가, 돌아가, 뺨이 시리고 손도 시렸다. 가슴도 시리고, 귀도 시리고, 다리도 시렸다. 발만 뜨거웠다. 가까워져 가는 학교의 정문을 보며 웃었다. 너무 웃겼다.

 

 

- 피아

샷건이 절실한 청소녀입니다. 제가 학교에서 느낀 것들, 그리고 대학입시거부를 결심하게 된 심정을 소설 형태로 표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