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4. 23. 17:35ㆍYosm Special
저는 여성이고 청소년인데 제 인권을 반으로 자를 수 있습니까
그림 : 조행하
여성단체 등의 페미니즘 모임에 청소년으로서 함께 한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 청소년으로서 겪은 불편함이나 어려움, 직·간접적인 차별이나 배제, 혐오가 있었는지를 물었다. 대표적으로 청소년 페미니스트의 활동을 기특하게 여기는 것, 청소년의 성과 섹슈얼리티를 폭력과 착취로부터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는 관점, 청소년 참여자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모임 여건이나 뒤풀이 문화 등이 지적되었다.
페미니스트가 되면 기특한 사람들
“제가 페미니즘을 하면 기특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페미:나〉를 준비하면서 페북 페이지에 올라오는 게시물을 ‘어린애들이 기특하다’는 투로 공유하신 분도 보았고, 제가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면 ‘어린애가 똑부러진다’거나, ‘말 잘한다’는 소리도 들어봤어요. 사실 다른 비청소년 페미니스트들과 별다를 바 없는 말을 했지만요. 굳이 언어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흐뭇하게 쳐다보는 시선을 느낀 적 도 많아요.”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에 함께하며 지난 1월 열린 청소년 페미니즘 캠프 〈페미:나〉를 준비했던 태양 씨는 위와 같이 증언하며 단지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활동이 기특하거나 대단하게 여겨지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냈다. 위와 같은 비청소년의 행태는 사실 칭찬을 가장한 차별이며, ‘청소년은 특수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개 무지하고 무능하다’는 식의 청소년혐오적 인식을 기반으로 한다. 기특하다는 인식은 청소년 페미니스트가 함께 차별과 혐오에 맞서 싸우는 ‘동료’라는 인식과 결코 함께할 수 없다.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을 대단하다고 여길 때 그 대단함을 그들이 청소년이라는 사실에서 찾고 있지는 않았는지 경계할 필요가 있다.
까슬까슬한 ‘보호’의 시선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이후 일상적으로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여성의 삶에 대한 발언이 주되게 등장했어요. 그때 자신이 유년기에 겪은 ‘폭력’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 시기 자신의 모습을 ‘가엾고 수동적인 모습’으로 대상화하거나, ‘지금 청소년기를 경험하는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페미니즘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정서도 종종 보였고. 전체적으로 비청소년 중심적인 문화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이후 많은 여성이 자신의 일상적인 성폭력 피해 경험을 자각하고 증언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어린 시절에 겪은 성폭력을 증언하는 여성들도 있었다. 이때 자신의 과거의 경험에 '성적으로 무력하게 착취당한 아동청소년’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경우가 있다. 이전의 경험이 폭력이었음을 말하기 위해 그 당시 스스로가 취했던 태도나 가졌던 감정을 부정하거나 왜곡할 필요는 없다. 폭력의 원인은 피해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며, 피해자답다는 것은 어느 하나로 규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동청소년기의 성폭력 경험에 있어서는 그 기억 속 자신이 어리고, 미숙하고, 수동적이었다는 등을 강조하는 사후적인 해석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당시에 스스로가 그 상황을 어떤 식으로 마주했는지와는 별개로 말이다. 사건으로 다뤄질 때 피해자의 ‘어린’, ‘학생’이라는 점이 유독 강조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아동청소년의 권리가 쉽게 무시되고 침해되는 현실과 맞물려 그 피해를 나이와 연관 지을 때 피해라고 인정받기도 쉽고, 심각한 사안이라는 인상도 남길 수 있기에 선호된다. 이런 속에서 아동청소년의 성과 섹슈얼리티는 ‘취약한 것’,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진다.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에 함께하고 있는 양지혜 씨는 이러한 대상화나 보호를 넘어 ‘여성청소년이 겪는 복합적인 차별을 고민하고 청소년들의 페미니즘에 대한 목소리를 담아내고 싶어서’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페미니즘을 함께 이야기하다가도 의제강간이나 로리타 이야기가 나오면 ‘어린애들한테 저런 옷 입혀놓고 뭐 하는 거냐.’같은 불편한 이야기나 청소년을 보호해주어야 할 대상으로 대상화하는 발언을 들을 때가 있어요.”
같은 모임에 함께하는 태양 씨 역시 비청소년과 함께한 페미니즘 모임에서 청소년의 성과 섹슈얼리티를 보호하는 것에만 초점을 두는 논의에 불편함을 느꼈다. 청소년활동가들은 이에 ‘스스로 자유로이 향유 할 수 있는’ 인권, 자기결정권으로서의 성과 섹슈얼리티를 말하며 의제강간 등의 이슈에 대한 논쟁을 이어나가고 있다.
은밀한 배제를 경계하기
청소년은 여러 권리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청소년 참여자와 함께하려면 보다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 이때 발생하는 불편함은 참여하는 청소년의 잘못이 아니며, 청소년 개개인이 감당하도록 내버려 둘 문제도 아니다. 그러나 그런 불편함을 함께 감당하고 고민하기보다도 청소년 참여자 자체를 밀어내는 일이 곳곳에서 발생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뒤풀이’에서의 배제이다.
“모임이나 행사 끝나고 하는 뒤풀이가 매번 술집에서 진행되어서 마음을 졸이면서 들어가야 했어요. 이에 대해 친한 해당 단체 상근활동가에게 걸릴까 봐 불안하다고 이야기한 적은 있지만, 뒤풀이 장소를 바꾸자고 제안한 적은 없어요.”
“어느 여성주의 모임에서 누군가 술을 가져왔는데, 술을 청소년인 구성원에게도 허용해야 하느냐 마느냐를 가지고 의견다툼이 있었어요. 모임 구성원분들이 저나 다른 청소년분의 문제제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시고 받아들여서 해결은 잘 되었지만, 그것이 모임 내에서 ‘합의’를 통해서 결정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슬픈 현실이죠. 음주와 관련한 청소년 배제는 비일비재한 것 같아요.”
이는 엄밀히 말해 여성단체나 페미니즘 모임의 문제라기보단 운동사회를 비롯한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이다. 뒤풀이 문화가 대개 음주와 연관되어 있기에 청소년이 뒤풀이에 참여하는 경우 술집에서 ‘민증검사’를 당할까 눈치를 보게 되거나, 술을 마실 때 다른 비청소년들의 눈치를 보게 되기도 한다. 이때 청소년 이 화기애애한 뒤풀이 분위기를 깨고 자신을 배제하지 않는 뒤풀이를 요구하기란 쉽지 않다. 청소년 참여자의 수가 적으면 적을수록 더더욱 ‘나 하나 때문에’라는 부담이 생겨난다. 노골적으로 배제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불편함과 불안이 누적되면서 청소년이 뒤풀이에 참여하는 것을 포기하는 ‘실질적인 배제’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불안을 청소년 홀로 감당하게 되지 않아야 진정으로 청소년에게 ‘열린’ 모임일 것이다.
밀려남과 고립이 아니도록
청소년이 동료 페미니스트로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여러 어려움과 갈등을 마주해야 한다. 언급한 것 외에도 곳곳에서 여러 양상의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 페미니스트가 존재할 것이다. 청소년 페미니스트 모임이 만들어지는 것은 (특히 여성)청소년에게 작용하는 고유한 억압을 발견하고 진단, 대응하는 움직임을 만드는 데 용이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나이주의와 청소년혐오 등에 의한 ‘밀려남’이고 ‘고립’은 아니어야 한다. 원한다면 어떤 청소년이든 ‘원하는 곳에서’ 함께, 동등하게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비청소년 페미니스트의 연대가 필요한 때이다.
[ 호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