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간표를 짤 권리, 내 인생을 살 권리

2016. 8. 8. 15:11특별 연재/학교민주주의

내가 12년 동안 뭐할지 결정할 권한은 

심지어 내가 다니는 학교도 아니고 저 멀리 교육부에 있다.



  학교가 학생들 일상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보면, 한국 고등학생들은 거의 학교에서 3년 동안 산다고 해도 과하지 않을 것 같다. 방학 때 하는 보충수업 일수를 빼더라도 일 년에 190일 정도를 (야자를 한다면) 12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 거니까. 사실 엄청난 시간이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은 정말 길고 지루하다. ‘양보단 질’이라는데 공부하는 시간만 엄청 길고 질은..ㅎㅅㅎ..? 정말 입시에만 쓸모 있는 입시공부는 확실히 시키긴 하는데...

 

  학교에선 자습실이 시끄러워서 공부가 안 된다거나, 1,2학년들이 3학년 건물에 와서 공부를 방해한다는 식의 항의들은 정말 잘 받아준다(특히 학부모들이 연락하면 더). 내가 다니는 학교는 기숙사 학교다. 수업과 잠자는 시간외의 남는 시간은 모두 자습으로 때려 박는 아주 아름다운 곳인데 재작년에 수면 시간이 부족해서 너무 피곤하다고 아침자습을 없애고 더 자게 해달라고 건의가 들어왔었다. 하지만 ‘수능을 준비하는 고3학생들을 위해서(?) 공부시간을 더 확보 해야 한다. 더 줄일 수는 없다’는 의견 때문에 무산되고, 올해에야 겨우겨우 기상시간은 오전 6시 30분으로 ‘늦춰졌’다. 이건 기숙사 내의 문제이기 때문에 학교가 자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던 케이스여서 그나마 의견이 반영될 수 있었다.


  내가 만약 수업 시간표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서, 체육시간을 늘리고 4교시까지만 수업을 하자고 학생회에 건의를 한다고 해도 학생회에게는 그런 사항을 결정할 힘이 없다. 그 힘은 시간표를 짜는 학교에게, 아니 더 근본적으로는 교육과정을 정하고 만드는 교육과정평가원과 교육부에게 있다.

 

  의무교육과정 9년에 추가로 고등학교 3년을 다니면 12년이다. 18년 산 내 인생의 절반을 넘는 해를 학교를 다녔는데 내가 12년 동안 뭐할지 결정할 권한은 나도 아니고 학생회도 아니고 심지어 내가 다니는 학교도 아니고 저 멀리 교육부에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이건 정말 정말 이상하다.


 

듣기 싫은 수업을 억지로 듣게 해 놓고 ‘왜 수업시간에 자냐’,

‘왜 집중을 하지 않냐’ 고 하는 소리는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다.

(출처: 제가 찍은 사진입니다.)



 

내 시간표를 짤 권리?

 


  일상화되어서 알아차리지 못하는 폭력이 제일 무섭다고 하던데, 나에게 진작부터 내가 배우는 걸 선택할 권리가 없었다보니 싫더라도 하란 대로 수업을 듣는 것에 익숙해져 왔다. 중학교 때 까지는 그래도 견딜 만 했다. 하루 종일 학교에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기숙사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말 그대로 학교에 살게 되고 중학교 때보다 자유시간이 훨씬 줄어드니까 내가 오늘 하루 뭘 할지 결정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됐다. 금요일 밤에 퇴사하고 일요일 7시에 입사를 하다 보니, 집에 와서 일주일동안 밀린 잠을 보충하고 나면 금세 일요일이 됐고, '주말과제'라며 준 수학프린트를 조금이라도 푼 척이라도 하려면 친구를 만나러 나갈 수도 없었다. 평일에는 24시간 학교에 있었고, 6시부터 11시40분까지 짜여있는 시간표를 따라가기도 벅찼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기숙사로 돌아와 룸메들과 잠시 떠들고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하는 시간이었다. 거짓말하고 외출을 할 정도의 베짱이 없어서 항상 가던 인문학 강좌도 포기했고, 정기적으로 가야하는 치과도, 새벽부터 열이 올라서 병원에 가야했을 때도 선생님들의 허락을 받고 갔다 와야 했다. 그렇게 다른 건 다 포기했었는데 교육공동체 나다의 주말강좌를 입사시간이랑 겹쳐서 포기해야 했을 때는 결국 울어버렸다. 사실 그렇게 듣고 싶은 주제는 아니었는데, 내가 하려고 했던 것들을 다 학교 때문에 포기해야 돼서 너무 억울했었다.

 

  그래서 지금은 기숙사를 나와 통학을 하고 있고 야자를 하지 않으니 다닐 만 하다고 느끼고 있지만 숨통이 트인 것뿐이지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즐거워진 건 아니다. 결국 나는 예전처럼 견디고 있는 것뿐이다.

 



입시공부만을 강요하는 시간표


 


"이런 공부의 과정은 삶의 무능력자들만 체계적으로 양산하고 있다."

(출처: 디지털밸리뉴스)


 

  우리는 '공부해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듣는다. 하지만 그 '공부'라는 말이 가리키는 것은 '대학 잘 가기 위한 입시공부' 일 때가 대부분이다. 야자까지 하면 학교에 있는 시간이 하루에 12시간을 넘어간다. 그 많은 시간을 바쳐서 배우는 건 시험을 잘 보는 방법과 말 잘듣고 고분고분 해지는 방법이다. 학교의 시간표를 잠시 벗어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집에 가는 것은 결국 잠을 자러가는 거고. 학교 진도를 따라가려면 방과 후에도 주말에도 학교 숙제와 학원 숙제에 치여야 한다. 이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걸까, 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다들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이게 현실이고 다 이렇게 산다'고 자신을 위로하면서 시험을 위해 짜인 시간표를 따라가고 있다.

 



누구의 말이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걸까



당신들의 현실은 아무래도 내가 생각하는 현실과는 달라도 한참 다른 것 같다.

(이미지 출처: 리디북스)



  내가 청소년운동을 하면서-아직 5개월이지만!- 들었던 말중에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은, ‘너희는 너무 이상적이다'라는 말이었다. 우리의 주장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합리적이지 않다고 하는 말.


  사실 나는 '현실적' 이라는 말의 뜻을 잘 모르겠다. 전국의 모든 학생들에게 '현실적으로는' 상위 몇 퍼센트만이 갈 수 있는 인서울 대학교에 못가면 루저라고 말하고, '현실적으로' 정말 극소수만이 갈 수 있는 'SKY' 대학교에 도전하라고 부추기면서, '비현실적으로' 긴 학습시간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나에게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하다고 말할 때 가끔 혼란스러워 진다. 나는 아수나로가 제시하는 대안이 지금 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들에 비해선 훨씬 현실적인 것 같은데. 학습시간을 줄이자는 주장이 현실적이지 않다면(실현될 수 없다면) 그건 이 주장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비현실적인 세계에 이미 적응한 사람들 때문 아닐까?


  그리고 ‘합리적‘이라는 말을 듣고 정말 어이가 없었는데, 3년 동안 어떻게 살지에 대한 고민할 시간도 없이, 하기 싫은(그리고 실제로 대부분이 별 쓸모도 없을..) 공부를 하느라고 시간낭비를 하게하고, 공부에 흥미를 잃어버리도록 하려고 짜인 듯 보이는 교육과정은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냐고, 정말 그렇게 생각 하냐고 묻고 싶다. 정말로.

 


이반

오백만원과 세 달 동안 학교안가기 쿠폰 중 하나를 택하라면 후자를 택할 수 있는 과감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