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4. 23. 20:04ㆍ특별 연재/학교민주주의
[청소년은 청소하는 년인가 : 학교민주주의 기획 연재]
청소년은 학교의 주인이라면서, 왜 학칙부터 소풍 갈 곳까지 죄다 학교에서 정하나?
왜 청소할 때만 '너희가 주인'이라며 교무실에서 컵씻는 것까지 우리를 시키지?
국가의 주인은 국민, 이게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고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라면서?
우리도 학교의 주인이 학생인, '진짜' 민주주의 학교을 만들래.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학교민주주의가 아닌, 우리가 상상하는 학교민주주의를 말한다.
글을 쓰기 전에 초등학교 저학년 때 엄마와 나눈 대화가 문득 생각났다.
“엄마, 학교 주인은 누구야?”
“학교 주인은 학생들이지. 학생없이 어떻게 학교가 돌아가겠니?”
뭐, 나의 엄마가 소위 ‘운동권’ 이라 그런 대답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운동권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이는 엄연한 사실이긴 하다. 피교육자가 없는 교육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배울 사람은 없고 가르칠 사람만 덩그러니 있는 학교라니, 상상만 해도 웃기지 않는가.
여하간 난 엄마에게 그런 답변을 들은 이후로 나는 내가 학교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갖고 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학교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사회가 정말 잘못 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나는 엄마가 했던 대답에 대한 의문을 품었다. ‘과연 내가, 학생들이 학교의 주인인가. 만약 우리가 주인이라면, 우리가 자유롭게 말하고 또 청소년들의 생각이 제대로 받아들여지는 학교여야 하지 않은가?’
우리나라에 있는 중, 고등학교 중 학생회를 통해서든, 학생들의 직접적 의사표현을 통해서든 학생들의 의견이 정말 제대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학교가 과연 몇이나 될까? 아니 조금이라도 받아들여지는 학교는 과연 몇이나 있을까?
학교나 교육당국은 언제나 학생이 행복한 학교 어쩌구 학생이 주인 저쩌고 말은 추석날 송편처럼 번지르르하게 잘도 해댄다. 그래놓고 정작 청소년들의 요구는 제대로 받아들이지도, 아니 귓등으로도 듣질 않는다. 학습시간이 길다고 줄이라고 말해도 그냥 넘겨듣고, 핸드폰 뺏지 말라고 요구해도 씹고, 하다못해 청소년 인권을 보장해달라고 외쳐도 쌩깐다. 그러면서 학생이 학교의 주인이라고 한다. 개소리도 적당히 해야 들어줄 만하지. 이쯤되면 욕이 입술까지 나온다. 정말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청소년들은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가장 밑에 있는 계급이다. 학교를 벗어나 사회 속에서도 그렇다. 사회에서는 보호라는 이름 아래 감금과 감시를 당하고, 학교에서는 교육이란 이름 아래 온갖 폭력을 당한다. 현실은 이렇게 암담하지만, 상상 속에서는 마음껏 우리가 주인이 되는 학교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학생이 진짜 학교의 주인이 된다면, 들러리 주인이 아니라 진짜 학교를 움직이는 주체가 된다면 학교는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봤다.
내가 원하는 시간, 원하는 장소에서
잘 먹고 잘 자면서 공부하기
<내가 자는 게 자는 게 아니야> 제공 : er (아수나로천안지부추진모임)
지금 우리의 모습은 이렇다. 해가 뜨지도 않은 이른 아침, 귀가 째져라 울려대는 알람소리에 허둥지둥 일어나 허겁지겁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아침식사를 끝내고, 급하게 세수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교복을 입고, 제대로 뛰기 힘든 교복을 입고, 사오 킬로그램은 족히 될 듯한 무거운 가방을 메고 헐레벌떡 뛰어서 학교에 도착해 오자마자 잠도 덜 깬 눈과 머리로 책을 펴고 공부를 시작한다.
우리가 학교의 주인이라면? 해가 중천에 뜬 늦은 아침 여유롭게 일어나, 아침밥을 맛있게 먹고, 편하고 개성있는 옷을 입고, 어슬렁어슬렁 느긋하게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서 학교에 오면 읽고 싶은 책도 읽고, 운동도 하고, 잠이 조금 모자란다면 잠도 잘 수 있는 학교의 아침이 만들어진다.
여름이면 시골 가마솥, 겨울이면 대관령 골짜기 어디쯤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싶든 듣고 싶지 않든, 감방같은 교실에 징역이라도 사는듯이 꼿꼿이 허리를 펴고 수업을 듣는게 아니다. 수업을 듣고 싶은 학생들만 수업을 듣고, 농사를 배우고 싶은 학생들은 텃밭을 일궈 농사를 배우고, 운동을 배우고 싶은 학생들은 운동을 배우고, 글쓰기나 사진, 미술 등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재밌는 일들을 배우는 학교의 낮이 만들어진다. 밤 10시가 넘어서도 불이 꺼질 줄 모르는 환한 교실에 앉아 스펙과 입시만을 쫓는 저녁이 아니라, 환한 낮에 하교해서 여가생활을 즐기고 잠도 제때 자고 밥도 제때 먹는 저녁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우리가 참여해서 결정하고
참여권을 빼앗기면 항의할 수 있는
나는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시행한 8, 9교시를 반대해 불참하려 했지만, 학교에서 강제적으로 8, 9교시를 참여하게 해 어쩔 수 없이 들어야했다. 그에 맞서 나와 몇몇 친구들과 선배들은 감독을 오는 교사들에게 매일같이 따졌다. 하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하나같이 묻혔다. 그래서 나는 다시 생각해보았다. 만약 학생이 학교의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하고 결정한다면 저런 일이 있었을까? 만약 그랬다면 학교는 또 어떤 모습일까?
학교 교복 디자인, 또는 교복 착용 여부도 학생이 정하고, 교칙도 학생이 만들고, 시간표도 학생과 교사가 함께 짜고, 더 크게는 수업시수와 방학일수도 학생이 직접 참여해서 정하면 어떨까? 만약에 지금의 모습처럼 학교가, 교육당국이, 사회가 청소년을 배제하고 제멋대로 돌아간다면 “이건 아니잖아! 왜 우리는 쏙 빼고 니들끼리 다 해먹냐? 아이 씨X 개빡치네!” 하며 서울 한복판 거리란 거리를 다 틀어막고 시위를 하거나 “지 맘대로 해 처먹은 교육부장관 얼굴이 히틀러를 닮았다며?”라고 조롱하며 교육부 장관 만나겠다고 정부청사에 쳐들어가도 큰 ‘뒷감당’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자신이 제 목으로 목소리를 내는 걸 두려워하거나 철저하게 자기검열을 하지 않아도 되는,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것에 굳이 용기를 내지 않아도 되는 그런 학교와 사회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학생이 정말 학교의 주인이 된다면 어떠한 강제도 없고, 어떠한 폭력도 없고, 모두가 평등한, 정말 ‘다닐 맛’ 나는 학교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청소년의 꽉 막힌 숨통을 탁 트여줄, 숨통이 트이는 학교가, 정말 내일의 학교가 기다려지고, 웃으면서 등교할 수 있는 학교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꿈같은 일? 역사가 증명하는,
곧 현실이 될 수 있는 일
△ "부모 형제들에게 총부리를 대지 말라" 청소년들이 대거 참여했던 4.19 혁명
이런 학교가 당장에 만들어지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학교와 교육당국은 언제나 청소년들의 말을 개 무시하고 사회는 언제나 우리를 왕따 시키지만, 그들이 쌓은 청소년들을 가로막는 높고 두터운 벽을 계속 두드리고 넘어가려 한다면, 언젠가는 저런 신나고 재밌는 꿈이 현실이 되어있을 것만 같다. 아니 현실이 되어있을 것이다.
거짓말하지 말라고? 역사를 보라. 광주 학생 항일운동, 3.1운동, 4.19 혁명, 1987년 6월 민주항쟁, 80~90년대 민주화 투쟁과 고등학생운동, 2008년 촛불시위 등 청소년들은 역사 속 거대한 분노의 파도들을 만들어냈고 그 파도 속에서 함께했다. 청소년들은 청소년들의 힘으로 조금씩 세상을 바꿨다. 지금 청소년들이라고 세상을 바꾸고 학교를 바꾸지 말라는 법도 없고 못 바꾼다는 법도 없다. 지금보다 더 많이 거리로 나서고, 더 크게 목소리를 내고, 더 많은 청소년들이 온 마음을 다 담아서 항의하고 맞선다면 진심으로 우리가 원하는 학교, 우리가 주인인 학교와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꿈을 꿔본다. 청소년이 학교의 주인이 되고, 세상의 주인이 되는, 그래서 정말 다닐 맛 나는 학교, 살맛나는 세상에서 웃으며 살아보는 그런, 너무나 큰 꿈인지 아니면 정말 작은 꿈인지 헷갈리는, 그런 꿈을 꿔본다.
긁적
아수나로 밀양(준) 활동가
밀양에서 놀면서 먹으면서 살고 있는 청소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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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세차례의 각각 다른 주제의 연재가 더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도, 보태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아래 메일로 글이나 그림 혹은 만화를 보내주세요.
메일 : yosmpress@asunaro.or.kr
분량 : 제한 없음
갈래 : 글, 그림, 사진, 만화 등등 제한 없음
기간 : 2016. 04. 23 ~ 05. 15
주제 : 학교민주주의에 대한 모든 이야기
예시 )
- 학생이 학교의 주인이 된다면? 학생이 평등한 구성원으로 대접받는, 그래서 학생의 요구를 반영해 운영되는 학교에 대한 달콤한 상상
- 우리 학교 학칙 좀 보래요! 넘나 구린 것! 나라면 이렇게 바꿀거야.
- 내 시간표를 짤 권리
* 요즘것들은 섭외나 주제 지정 공모를 통해 기고받은 컨텐츠에 각 1만원의 고료를 지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아수나로의 재정 상황이 열악해서 팀에서 미리 섭외한 4인 외에 이 연재에 참여해주시는 분들께 고료를 지급하지 못합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