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칙 핑계 좀 그만 대!

2020. 3. 12. 16:24칼럼-청소년의 눈으로

교칙 핑계 좀 그만 대!




대부분 학교에는 교칙이 존재한다. 많은 사람은 교칙이 학교 내의 법이라 생각한다. 나라마다 법은 비슷하기도 하지만 조금씩 다른데, 어쩐지 학교마다 교칙은 서로 다른 학교인지 구분하기도 힘들 정도로 대부분이 유사한 방식을 보인다. 법은 사회의 소수자를 보호하고 권력을 통제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교칙은 학교 내 소수자인 학생을 통제하고 권력자인 교사가 휘두르는 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일관된 방식으로 지금껏 존재해왔다.

 

학생이 만든 교칙


교칙을 어긴 학생에게는 대개 이런 말이 돌아온다. “너희가 만들었으면서 너희가 지키지 않으면 어쩌느냐”, “교칙을 만들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면서, 인제 와서 안 지키려 들면 어쩌느냐.”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자. 보통 교칙은 교사와 학생회가 제정 혹은 개정한다. 과연 그 안에 학생회가 아닌 학생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된다 할 수 있을까? 학생들은 자신의 의견이 어떤 과정을 거쳐 전달되며 얼마나 논의되는지도 모른다. 내 의견이 논의되었는지조차 모르는데 어떻게 학생이 만든 교칙이라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학생회의 의견이 잘 반영되는 것 또한 아니다. 학생회 중에 교칙을 바꾸고자 하는 학생이 있을 때, 그 의견이 교사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열띤 토론이 일어날까? 아니다. 그 의견은 너무도 쉽게 “그건 안돼”라는 말로 묵살당하고 만다. 학학생들로 이루어진 학생회가 직접적으로 교칙 제·개정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반인권적인 교칙이라도 정당성을 가지는 듯 보이나, 학생회가 실질적으로 자치권을 행사할 수 없는 현실에서는 그저 기만에 불과하다. 교사가 “그건 안된다”고 막지 않는다고 교칙이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만든 교칙이 되지는 못한다. 결국 학생들은 교사의 눈치를 보고 어떤 교칙을 만들어야 교사의 마음에 들지 고민하는데, 어떻게 그 교칙을 학생이 만든 교칙이라 할 수 있을까? 정말 어떠한 교칙을 학생이 만든 교칙(혹은 규칙)이라 하고 싶다면 그 과정에서 학생들이 교사의 눈치를 보지는 않았는지, 교사가 불필요하게 개입을 하지는 않았는지, 학생들이 충분히 교칙에 관해 토론하였는지, 학생들에게 교사가 자신의 의견을 주입하려 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그렇다고 학생이 만든 교칙은 민주적이고 인권적일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학생은 민주적이고 평화롭고 인권적인 사람이 아니다. 학생이 아니고 청소년이 아닌 사람들이 다 제각각이듯 학생 또한 제각각이다. 어쩌면 학생 스스로가 학생 인권 침해적인 교칙을 제정하자고 나설 수도 있다. 그런데도 학생이 교칙 제정 과정에서 충분한 기회를 보장받아야 하는 이유는 한 공동체에 적용할 규칙은 그 공동체에 있는 사람이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사와 학생은 다른 집단이다. 교사는 학생이 미성숙한 존재라고 말하지만 정작 학생이 미성숙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지는 않는다. 제대로 된 교칙을 만들기 위해서는 누구나 미성숙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서로 합의해 교칙을 만들고 충분히 수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허울뿐인 교칙


다들 한 번씩 경험해봤을 것이다. 교칙에 없는 사항인데도 교사들이 온갖 핑계를 대며 학생의 소지품을 압수하거나 두발복장을 규제하는 모습 혹은 교칙에 있는 사항을 어겨도 교칙을 어긴 학생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여기는 상황을 말이다. 새로 부임한 교장 선생님에 따라, 학생부장 선생님의 생각에 따라, 교칙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변하기도 한다. 결국 교칙은 실질적으로 소용이 없는 허울뿐인 규칙이라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있으나 마나 한 교칙은 왜 존재하는 걸까? 교칙은 지금껏 교사들의 인권침해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쓰여왔다. ‘교사 지시 불이행 시 징계’와 같은 두루뭉술하고 굉장히 주관적인 기준의 교칙이라 할지라도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교칙에 있으니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댈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교칙을 어기는 학생은 더더욱 많아질 수밖에 없다. 주관적이고 교사 마음대로인 교칙을 어느 학생이 지키고 싶어 하겠는가? 누군가는 교칙이 불만이면 교칙을 어기지 말고 직접 바꿀 생각을 하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집단이 규칙을 바꿀 수 있는 실질적인 권한을 독재하고 있다면, 권한이 없는 다른 집단이 그 규칙에 불응하는 행동은 그들이 규칙을 직접 바꾸는 행동이나 마찬가지이다.

 

왜 교칙은 학생을 향할까


왜 교칙의 대상은 학생일까? 바꿔 말해보면, 왜 교칙의 대상은 교사가 아닐까? 교칙은 항상 학생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만 쓰여왔기 때문에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교칙을 찾아보긴 힘들다. 하지만 막상 학교 안을 들여다보면 학생이 교사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일보다 교사가 학생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례를 훨씬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학생은 학교 내에서 일상적으로 체벌 당하고, 자신의 미래를 담보로 협박당하고, 교사의 눈치를 본다. 그러므로 학생에게 가장 필요한 교칙은 교사가 학생에게 더 폭력을 행하지 못하도록 막고, 교사가 폭력을 행사했을 때 피해자 학생에 대한 충분한 보호와 가해자 교사에 대한 적절한 처벌을 받게끔 하는 교칙이다. 그러므로 교칙에는 “귀밑 5센치”, “치마 길이 무릎까지”, “교사 지시 불이행 시 징계” 등의 내용이 아닌 “교사가 학생에게 두발 복장에 대해 간섭할 권리 없음”, “학생은 교사 지시를 무조건 따라야 할 의무 없음”, “학생에게 체벌한 교사는 징계” 등의 내용이 있어야 한다. 학생들에게는 교사의 부당한 대우에 항의했을 때 돌아오는 생기부 협박에 근거를 주는 교칙이 아닌, 교사의 부당한 대우에 충분히 항의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교칙이 필요하다.


공교롭게도 그러한 내용은 학생인권조례에 있는 내용이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의 양심의 자유, 신체의 자유, 개성을 실현할 권리 등 학생들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교칙은 학생인권조례와 다르게 학생의 기본적인 인권을 등한시하고 학생에 대한 폭력을 교육을 위해 당연한 일로 여긴다. 자칫 이런 폭력들이 교육을 위해 이루어진다고 착각할 수도 있으나 학생들이 정말로 교육권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듣기 싫은 수업을 억지로 듣고, 화장실도 허락을 받아야 갈 수 있고, 피곤해도 자면 안 되는 게 아닌 자신이 정말로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게 학생들의 교육권이다. 학생들이 교육권을 제대로 보장받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인권 보장은 필수요소다.


-권리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