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탈출한 청소년들

2019.10.01 13:38Yosm Special

학교를 탈출한 청소년들


- 삽화: 조행하



우리 사회에는 학교에 가지 않으려는 청소년에 대한 익숙한 서사가 존재한다. ‘부모와 교사는 청소년에게 학교에 가라고 하지만, 청소년은 학교에 가는 것을 싫어한다.’가 그것이다. ‘청소년은 원래 공부를 싫어하기 때문에’ 부모나 교사는 청소년의 의사와 상관없이 무조건 청소년을 학교에 가게 하는 것을 옳은 일이라고 여긴다. 이는 청소년은 애초에 미성숙하기 때문에 배움을 피하므로, 그들을 성숙한 시민으로 만들기 위해 공부를 강요해야 한다는 편견을 전제한 생각이다.


그런 흐름 속에서 학교를 탈출한 청소년은 확실하게 ‘비행 청소년’의 틀에 갇힌다. 탈학교 청소년에게는 ‘공부하기 싫어서’, ‘선생님 말 안 들어서’, ‘철이 없어서 학교를 나온 애들’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모든 탈학교 청소년은 다양한 각자의 이유로 학교를 나왔음에도, 사회는 이들의 사정을 일차원적으로 일반화한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예비범죄자처럼 취급되기도 한다. 이런 인식의 이유는 기존의 학교 문화를 정상으로 두고, 학교 밖을 나온 이들을 비정상이라고 낙인찍기 때문이다.


 

탈학교 청소년 사일과 작이의 이야기


이들을 탈학교 청소년이라 부르는 이유는 학교를 ‘탈출’을 결정하기까지의 고민과 갈등의 과정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탈학교 청소년’은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말보다 탈출이라는 능동적인 행위를 강조한다. 탈학교 청소년 사일과 작이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들을 정상이나 비정상으로 구분하려는 시도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사일과 작이는 둘 다 대안학교를 다니다 그만두었다. 사일은 중학교를 졸업했을 때부터 고등학교에 가기 싫었다고 말했다. 중학생 때부터 대안학교를 다니면서, 다양한 비교과 활동을 했던 사일은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학교 밖에서 관련된 활동을 더 자유롭게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사일은 창작 활동에는 학력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생각과 달리 고등학교에서는 대학 입시를 중요하게 여겼다. 시험 점수와 등급을 신경 쓰는 학생들이 사일을 괜히 초조하게 했다. 수능을 보기 위해 들어야 하는 수업과 학생 자치를 위한 동아리, 자신의 진로에 맞는 활동 등 너무 많은 일을 해야 하는 것이 버거웠다. 오랫동안 부모를 설득해 고등학교 1학년 말에 자퇴할 수 있었다.


작이는 인권 친화적인 분위기를 기대하며 대안학교를 진학했지만, 학교는 굉장히 실망스러웠다고 말했다. 교사회에서 누리는 권력은 크고, 학생들을 단속하는 규제는 많았다. 학생에 대한 규제가 많다는 것은 학생을 대변하는 힘보다 학생을 통제하는 힘이 더 크다는 것을 의미했다. 학교 구성원이 모두 모이는 ‘식구 총회’에서는 주로 규제를 어긴 학생들을 처벌하는 것에 집중했다. 원래 식구 총회가 의도했던 것은 공동체 내에서 문제의 원인과 해결을 논하는 것이었지만, 사실상 학생을 어떻게 처벌할지 집단으로 학생을 심판하는 자리가 되었다. 교사와 학생 간의 권력 관계가 불평등한 가운데, 그 안에서 공동체 의식이 생겨나기는 어려웠다.


교내에서 대자보를 붙이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던 작이는 점점 학교를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을 잃었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제기하는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여러 시도가 있고 나서, 작이는 더 이상 학교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 후 자퇴했다.


이들은 탈학교를 하기 전에 학교를 바꾸려 노력하거나 자신이 진정 무엇을 하고 싶은지 탐구했다. 이후의 삶이 어떻든 간에, 당시의 사일과 작이는 자신을 위한 선택을 했다.



탈학교 청소년이 차별받는 이유


그렇다면 탈학교 청소년들이 그들의 고민과 관계없이 비정상이라고 비난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교에 가지 않으려는 청소년들을 결혼하지 않으려는 여성들과 비교해보자. 최근 몇몇 여성들은 여성의 과업이라고 여겨졌던 결혼과 육아를 거부하면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비혼 여성들은 불평등한 관습들로 이루어진 결혼과 육아가 여성을 억압하는 굴레이며, 가부장제가 이를 장려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회는 그러한 여성들을 두고 ‘이기적’이라고 비난했다.


생애주기에 따른 청소년의 과업은 자신의 나이에 맞게 학교에 가고, 최종적으로는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다. 청소년이 대학에 가도록 요구받는 이유는 대학을 졸업해야 개인의 안정적인 삶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분위기 때문인데, 그것이 유독 청소년에게 엄격한 이유는 그렇게 해야만 한국의 교육과 사회 제도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사회, 교육 제도가 생애주기에 따른 과업을 수행하는 청소년만을 위해 설계되어 있다. 사회는 학교 밖의 청소년을 고려하지 않고, 청소년에 대한 복지와 교육의 책임도 학교에 떠맡겨 왔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에 따라 이탈한 청소년은 가려지고 고립된다. 탈학교 청소년은 청소년에게 주어진 과업을 거부했기 때문에 그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까지 박탈당하게 된다.


사일은 탈학교를 한 후, 서울에 살지 않는 탈학교 청소년이 가질 수 있는 배움의 기회가 거의 꿈드림센터1)밖에 없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열리는 작가 관련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거리가 멀어 힘들었고, 자신에게 잘 맞는 강의를 찾기도 어려웠다. 자신처럼 탈학교를 한 청소년들과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교육은 권리다


청소년이 탈학교를 말할 때, 어떤 이들은 학교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있다며 ‘배부른 소리’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학교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말하는 권리와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아도 가야 하는 청소년들의 권리는 본질적으로 같다. 모든 청소년은 자신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배울 권리를 가진다. 학교에서 자신이 원하는 배움을 얻을 수 없을 때에도 학교에 앉아 있을 것을 강요하는 것은 학생의 교육권을 해치는 경우다.


청소년에게 교육은 의무가 아닌 권리다. 모든 청소년의 교육권을 보장해야 하는 것은 학교뿐만이 아니라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시민의 의무다. 탈학교 청소년에 대한 차별을 자각하고, 그들의 권리를 더 적극적으로 보장하자.


- 치이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