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6. 26. 17:09ㆍ칼럼-청소년의 눈으로
청소년보호대책, 왜 문제인가? - 보호가 감추는 청소년 권리의 문제
-삽화: 조행하
지난 5월 2일, 여성가족부는 14개 부처·관계기관과 합동하여 제3차 청소년보호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여성가족부는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랜덤채팅 앱에서 이루어지는 청소년 성 착취, 청소년 배달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산업 재해 사고와 같은 사례를 들며 유해환경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해야 하는 필요성을 강조했다. 제3차 청소년보호종합대책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유해매체) 청소년 불건전 만남 매개·조장 랜덤채팅앱으로부터 청소년 보호방안 강구
◆ (유해약물) 청소년 음주 시 판매한 사업자 외에 동반한 성인에게도 책임 부과
◆ (유해업소) 학원 등 청소년 생활 주변 신·변종 업소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점검)
◆ (폭력 및 피해 예방) 청소년 대상 고금리 대출·갈취 행위 집중 단속
◆ (근로보호) 배달·아르바이트 청소년의 안전 및 피해회복을 위한 산재보험 적용 확대
그러나 보호의 필요성, 즉 청소년이 겪는 폭력의 심각성과 달리, 제3차 청소년보호종합대책에서 제시하는 청소년 보호 방안은 여전히 안일하고 구시대적이다. 예를 들면, 여성가족부는 랜덤채팅앱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청소년 스마트폰의 유해정보차단 앱 설치를 활성화한다고 밝혔다. 이는 이미 ‘아이스마트키퍼’와 같은 앱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던 방식이다. 또, 청소년 혼숙 등에 따른 피해 예방을 위해 무인텔 등 숙박업소에 종사자 및 설비를 의무화해 출입자의 나이를 확인하고, 숙박앱 등을 통해 청소년 혼숙을 예방해 나간다고도 했다. 기존에 일정 시간대에 청소년의 출입을 금지했던 피시(PC)방, 코인노래방 및 찜질방 등과 같은 업소들에도 인센티브를 부여하여 출입 제한 조치를 강화한다.
대책의 효용성을 살피기 위해 최근에 있었던 청소년의 폭력 피해 사례를 보자. 같은 날 광주에서는 10대 의붓딸 A 씨를 살해한 유 씨가 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았다. 조사 결과, 살해된 A 씨는 지난 몇 년 동안 친아버지와 의붓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아왔으며 수차례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성범죄 신고 내용을 학대 가해자에게 알리고, 수사가 필요하지 않다는 친아버지의 말 한마디에 조치를 취소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책임을 묻자 경찰은 “조치를 위해 개인정보를 수집해야 하는데, 본인과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보호자의 동의가 없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제3차 청소년보호종합대책은 청소년 보호를 통해 청소년이 경험하는 폭력 피해를 줄일 것을 취지로 삼는다. 그러나 제3차 청소년보호종합대책과 같은 보호 정책들은 폭력을 경험한 청소년들의 대응 역량을 축소하며, 오히려 청소년의 권리 보장을 가로막는다.
청소년보호대책, 왜 문제인가
UN에서 말하는 인권 보호는 정부의 인권 의무에 속한다. 인권 의무에는 존중, 보호, 충족이 있으며, 그중 보호는 ‘다른 사람의 권리 향유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즉 ‘보호’는 정부가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관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의무를 나타낸다. 그러나 어린이, 청소년 인권에 대한 통합적인 기본법조차 없는 한국 사회에서는 무엇이 청소년 인권이고 무엇이 청소년인권 침해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다. 보호 대책에 앞서, 청소년인권의 정의와 범위를 확정하는 것이 더 필요한 실정이다.
제3차 청소년보호종합대책 역시, 무엇이 청소년에게 유해한 것인지 명확하게 나타내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랜덤채팅앱과 혼숙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랜덤채팅앱과 혼숙은 그 자체로 청소년을 위협하지 않는다. 막아야 할 것은 청소년에 대한 성 착취다. 그리고 성 착취의 원인은 성폭력이 만연한 사회 분위기, 남성 비청소년과 여성 청소년 간의 사회적 자원과 권력 차이, 탈가정 청소년의 빈곤 문제 등에 있다. 단순히 랜덤채팅과 혼숙을 막는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게다가 혼숙 금지는 여성 청소년의 순결을 강요하는 성차별적인 문화에서 비롯한 규정이다. 이와 같은 규정들이 ‘청소년은 모텔에 가면 안 된다’와 같은 도덕적 잣대를 강화하면서 집 바깥 공간에서의 숙박을 필요로 하는 청소년들의 사정을 어렵게 만든다. 오히려 집 안에서 가족에 의해 폭력을 겪는 A 씨와 같은 청소년들의 대피 장소를 줄이는 셈이다.
A 씨의 사망 사건은 여타 다른 아동 학대 사건과 마찬가지로, 사건의 잔인함과 심각성에 초점이 맞춰져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청소년이 폭력을 경험했을 때 대응할 수 있는 역량과 시스템을 점검해야 한다. A 씨의 사건에서, 경찰은 이전에 A 씨가 신고했을 때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데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조처할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의 개인정보를 이용하는 것조차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한 상황에서 A 씨가 공적으로 자신의 권리 보장을 요청할 방법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지속적인 학대 속에서 가족들과 떨어져 살아갈 수 있게끔 할 지원이 부족했기 때문에 A 씨는 자립과 관련된 역량을 키울 수 없었다.
폭력의 구조에 관심 없는 사회
제3차 청소년보호종합대책은 청소년이 피해를 본 사건이 발생할수록 청소년의 행위가 더욱 규제당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규제가 많아질수록 청소년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 인터넷 사이트, 일자리 등은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청소년의 권한과 역량 또한 깎여나간다.
청소년의 힘이 줄어들 때 위험에 대응하는 능력은 함께 줄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은 집이나 학교와 같은 ‘청소년이 있어야 할 곳’에 가만히 있으면 위험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A 씨의 사례에서 알 수 있다시피 집과 학교는 언제든지 폭력이 일어날 수 있는 장소다. 제3차 청소년종합보호대책에서 정하는 청소년출입제한업소들은 밤이 되었을 때 ‘안전한 집’으로 돌아갈 것을 강요하지만 ‘안전한 집’이 없는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폭력이 발생했을 때 대안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청소년에게 존재하지 않는다면, 피해 청소년은 더 큰 위험에 맞닥뜨리게 된다. 결국 청소년에게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사라지기 위해서는 청소년에게 더 많은 권리와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 치이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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