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과 '인권'의 관계

2019. 3. 28. 23:19Yosm Special

'건강'과 '인권'의 관계

 

-삽화: 조행하

 

 

‘건강’과 ‘인권’의 관계

 

청소년의 건강권, 다소 생소한 말일 수도 있다. 우리는 건강을 권리와 연결 지어 생각하지 못할 때가 많다. 특히, ‘청소년’이 붙는 순간에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노인이나 희소병 환자도 아니고 청소년이 건강권을 말한다고? 지나가는 한 비청소년은 혀를 끌끌 찬다. “너희 때는 돌도 씹어 먹을 나이야!”

 

세계 보건 기구(WHO)에서는, 건강권이란 ‘단순히 질병이나 허약함이 없는 상태가 아닌,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한 안녕 상태’라고 말했다. 이러한 건강은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일차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개인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충실한 자기 관리만큼이나 건강한 사회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이는 청소년에게도 마찬가지다. 학생 청소년이 건강해지려면 청소년을 둘러싼 환경, 그중에서도 학교가 어떤 곳인지가 중요하다. 학교에서 청소년들은 스스로 건강하다고 느끼고 있을까? 학교 안에서 느끼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 대해서 질문했을 때 요즘것들의 설문 조사에 응한 47명의 사람은 이렇게 답했다.

 

“오랜 시간 동안 앉아 있다 보니 다리가 부었고, 운동할 시간이 부족해 몸이 무거워졌다.”

“불편한 교복 때문에 소화 불량에 시달렸다. 생리와 겹치면 변비도 심해졌다.”

“목과 허리가 아파서 오래 앉아 있지 못했는데, 학교에서는 전혀 배려해주지 않았다.”

“공부하는데 너무 우울해서 야자 시간에 이유 없이 눈물이 떨어졌다.”

“담임선생님이 상담 시간에 폭언을 했고,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서 구토가 잦아졌다.”

“성적에 대한 압박 때문에 자해를 한 적이 있다.”

“하루 종일 정해진 공간에 있어야 하고, 이 상황이 앞으로 몇 년 동안 지속된다는 사실이 답답해서 숨쉬기가 힘들었다.”

 

많은 청소년은 학교에서 느끼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이 자신들의 ‘일상’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청소년들의 건강 문제는 심각하다. 이러한 고통은 어떻게 청소년의 삶에 자리 잡게 되었을까? 건강과 인권의 관계를 들여다보았다.

 

건강과 인권의 관계

: ‘인권’이 ‘건강’에 영향을 미칠 때

 

오랫동안 건강권을 연구해 온 학자1)들은 건강과 인권이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지적한다. 건강과 인권이 맺고 있는 관계의 첫 번째 양상은 ‘인권’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주로 인권을 침해함으로써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이 가는 것을 말한다. 청소년들이 호소하는 고통은 주로 오래 책상에 앉아있어야 하는 학교 일정, 짧은 식사 시간, 불편한 교복, 대학 입학으로 인한 성적 관련 스트레스를 원인으로 한다. 이러한 것들은 동시에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요소들이기도 하다.

 

자신이 원하는 옷을 입지 못하고, 적절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학교 일정의 운영에 아무런 권한이 없는 청소년들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박탈당한 상태다. 청소년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학교에서 청소년들은 교사로부터 체벌을 당하거나 폭언, 성희롱을 듣기도 한다. 이처럼 청소년들이 경험하는 인권 침해는 당사자에게 실제적인 신체적, 정신적 통증으로 다가온다. 청소년들의 높은 스트레스 인지율과 우울감도 같은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자신에게 불편하고 괴로운 상황 속에서 몸과 마음의 고통을 겪기 때문이다. 몸이 아프고 힘든 상황에서 여유롭고 긍정적인 정신을 유지하기는 어려우며,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다.

 

건강과 인권의 관계

: ‘건강’이 ‘인권’에 영향을 미칠 때

 

건강과 인권이 맺고 있는 관계의 두 번째 양상은 ‘건강’이 ‘인권’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다. 여기서 말하는 건강은 국가에서 실시하는 공공 보건 정책 등을 뜻한다. 우리는 청소년의 건강과 관련된 정책들이 오히려 청소년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지 않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금연 정책을 예로 들자면, 청소년에게 이루어지는 금연 교육에서는 담배가 청소년의 건전한 성장과 발달을 방해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청소년의 흡연에 대한 학교의 제재는 금연 교육에서 그치지 않는다. 청소년의 흡연은 처벌과 징계의 대상이 된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의 조사2) 결과, 서울 지역의 중고등학교 156개 중 68.8%의 고등학교가 흡연을 한 청소년에게 최고 퇴학의 징계가 가능하다고 규정해놓은 상태였다. 흡연 학생을 적발하기 위해 실시되는 소변 검사나 소지품 검사 역시 심각한 인권 침해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규정들은 흡연하는 학생에 대한 명백한 낙인과 차별을 담고 있다. 흡연이 청소년의 건강을 해친다는 이유로, 흡연한 학생에게 가하는 학교의 무자비한 인권 침해는 정당화될 수 없다.

 

누구를 위한 건강?

 

위에서 말한 경우와 같이, 청소년의 건강과 관련된 정책은 종종 개인의 인권보다 우선시된다. 건강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이 오히려 개인의 인권을 침해할 때, 그 건강은 무엇을 위한 걸까?

 

청소년이 건강하게 성장해야 하는 이유가 본인의 좋은 삶이 아니라 외부의 무언가를 위한 것이라면 그 의도는 충분히 의심해볼 만하다. 많은 학생이 학교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건강을 관리하라는 말을 듣는다. 수험생을 대상으로 하는 수많은 보약과 영양제 광고를 보면, 수험생에게 무엇을 기대하며 건강을 장려하는지 알 수 있다. 한편, 현장실습을 이유로 기업에 파견되는 산업계고 출신의 청소년/청년들에게 건강한 몸은 학교와 기업의 이득을 위해 착취되기 쉬운 자원이다. 나이가 어린 축에 속하는 청소년/청년 노동자들은 흔히 체력이 더 좋기 때문에 작업 중의 고통을 더 견뎌야 한다거나 위험한 환경을 감수해야 한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이처럼 건강한 몸은 더 많은 생산성을 보장하기 때문에, 청소년의 건강은 국가, 기업, 학교를 통해 관리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건강과 인권의 관계의 마지막 양상은, 건강과 인권이 상호보완적이라는 것이다. 청소년의 건강을 보장하는 것과 청소년의 인권을 향상하는 것은 연결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청소년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청소년에게 그러한 고통을 유발하는 구조적 차별을 해소해나가야 한다.

 

- 치이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