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공포

2019.01.03 15:58Yosm Special




 

우리는 미래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다!


청소년인권과 관련해서, 한번쯤은 들어봤을 말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자. 미래가 아닌 현재를 살아간다는 게 무슨 말일까? 타임머신이 발명되지 않는 이상, 우리는 모두 현재에 살고 있다. 그러나 현재에 하는 모든 행동들이 미래를 위한 준비 취급을 받을 때, 현재 상태는 완전하지 않고 미래 어느 시점에 도달해야만 완전해질 수 있다고 여겨질 때 우리는 현재를 온전히 살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그래서 이 슬로건은 어쩌면, “우리는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다.”는 의미일 지도 모른다.


입시란 입학시험의 준말이다. 보통은 시험지를 푸는 것뿐 아니라, 상급학교로 진학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모든 과정을 통칭한다. 그리고 상급 학교의 가장 마지막 단계는 대학이다. 많은 학생들의 하루 일과가 입시 준비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면, 입시는 마치 학생들의 유일한 삶의 목표처럼 여겨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생들이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입시는 학교에서 1년에 4번씩 치르는 내신 시험이다. 내신 시험 점수는 학생부 관련 전형으로 대학을 가기 위해서 필수적이다. 시험이 이루어지기 2주 전, 길게는 한 달 전부터 소위 ‘시험 기간’이 시작되는데, 시험 기간에 학생들은 오로지 시험공부만 할 것을 강요받는다. 시험이 가까워지면 교사들은 시험 공부하는 시간을 제공하기 위해 수업을 하지 않기도 한다. 정규 수업 시간은 자습 시간으로 바뀌고, 교사는 학생들의 자습을 감독한다.

 

학생들이 그다음으로 준비해야 할 시험은 수능과 모의고사다. 모의고사는 수능 시험과 같은 형식으로 출제되며, 3월, 6월, 9월, 11월에 정기적으로 이뤄진다. 여기에 사설 모의고사까지 더해지면 학생들은 거의 매 달 모의고사를 치르게 된다.

 

여기에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수행평가와 쪽지 시험 등을 포함하면, 학생들의 삶은 거의 매순간 ‘시험기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흔히 교사와 부모들은 시험 기간에 시험 준비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지만, 1년에 이렇게 많은 시험이 있는 한 학생들은 시험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될 때가 거의 없다. 결국, 아무것도 준비할 필요 없는, 오롯이 현재의 행복을 위해 살 수 있는 시간이 청소년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 청소년은 여전히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존재할 뿐, 현재를 살지 못하고 있다.

 

학생들은 왜 입시를 준비할까?

 

우리는 학생들이 왜 자신의 삶을 바쳐가며 입시를 준비하는지 조금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한국 사회에서 학력이 개인의 사회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서열화된 대학 체제를 기반으로 학력 학벌 차별이 만연한 직업 세계에서는, 사회적 서열이 더 높은 대학을 졸업해야 더 나은 조건의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처럼 장래 직업의 질이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 점수에 달려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학생들을 끝없이 불안에 떨게 만든다.

 

게다가, 주변 부모나 교사들이 던지는 소위 ‘사회생활’에 대한 조언은 학력 차별로 가득한 사회를 정당화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A씨는 “주변 어른들로부터 ‘입시는 현실이고, 사회는 냉정하다’ 는 식의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고 말했다. 한동안 논란이 되었던 “대학 가서 미팅 할래? 공장가서 미싱 할래?” 류의 문구들은 이러한 차별을 더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말들은 공통적으로 ‘학력에 따라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으니(또는 당연하니) 네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입시에 매진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처럼 미래에 겪을 차별에 대한 공포는 입시에 대한 압박을 증가시킨다.

 

그러나 차별에 대한 공포는 미래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이 사회의 학력 차별은 학교 내에서 이루어지는 성적 차별의 연장선이다.학교에서는 입시를 위해 좋은 성적을 받을 것을 강요하면서, 성적에 따라 학생들을 차별한다.

 

많은 학교들에서 성적이 높은 학생들을 따로 묶어 자습실 이용이나 진학 상담 기회에 있어 특혜를 주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렇게 특수한 몇몇 경우가 아니더라도, 성적이 낮은 학생들은 그 자체로 학교에서 일상적인 모욕에 시달린다. 성적이 중하위권에 해당하는 청소년 B씨는 “학교 선생님한테 내가 상위권 학생들에게 민폐라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청소년 C씨는 “반에서 성적이 낮게 나온 학생이 교사로부터 이름대신 점수로 불리는 걸 봤다.”고 이야기했다. 이처럼 성적이 낮은 학생이 굴욕을 당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반면, 성적이 높은 학생은 규칙을 어겨도 벌을 받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차별적인 구조에 문제를 제기하는 순간 “네가 공부를 잘 했어야지”라는 말이 돌아오고, 문제의 원인은 성적이 좋지 않은 개인으로 지목된다.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의 문제

 

모든 고등학생들이 어떤 자격시험을 거치지 않고도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에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은 시험 성적에 따라 더 실력이 좋다고 검증된 사람에게만 자신이 원하는 교육을 받을 기회, 원하는 직업을 얻을 기회가 제한적으로 주어진다. 이는 교육이나 노동의 영역이 권리보다는 효율의 원칙에 의해 굴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즉, 공부를 더 잘 할 것이라고 잠재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에게 더 수준 높은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고, 더 생산 능력이 뛰어날 것이라고 인정받은 사람에게 더 보상이 큰 직업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

 

사회적 자원을 거의 가지지 못한 청소년에게는 입시를 통해 비청소년이 되었을 때의 자신이 누리게 될 사회적 자원을 배분받는다.입시에서 실패한 사람에게는, 즉 ‘지잡대’를 가거나 대학에 모두 떨어진 사람에게는 아주 적은 사회적 자원이 주어지고, 입시에서 성공한 사람, 소위 ‘SKY’에 입학한 사람에게는 그보다 훨씬 많은 사회적 자원이 부여된다. 이는 그 후 이어지는 개인의 삶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입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선발 또는 ‘능력에 따른 분배’라는 방식에 의문을 가져야 한다. 모든 청소년들이 현재에도, 미래에도 평등하게 사회적 자원을 분배받고, 인간답게 살 수 있기 위해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