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규제, 인간답게 사는 것을 규제하다

2018. 3. 28. 21:34Yosm Special

나이 규제, 인간답게 사는 것을 규제하다


- 삽화: 조행하

 


 사회의 규제는 시민들의 삶에서 할 수 없는 것을 지정하는 역할을 한다. 대표적으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것이 그렇다. 그러나 규제는 기본적으로 시민의 사적인 삶에 개입하는 만큼, 그 정당성과 필요성이 신중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사회의 인권 의식이 발전하면서, 규제가 개인의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청소년들이 현재 경험하는 규제는 청소년의 자기결정권이나 사생활의 자유를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사회에서 청소년이 규제에 막혀 스스로 행할 수 없는 것은 비청소년에 비해 지나치게 많다. ‘청소년이라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질문했을 때, 58명의 청소년은 이렇게 답했다.


<“미성년자는 이용할 수 없습니다 경험 설문조사 답변>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했는데 대학생 이상만 지원 가능했다.”

중고 서점에서 책을 팔려고 했더니 부모님과 통화해 보겠다고 했다.”

고시원을 계약하려고 했는데 미성년자는 안 된다고 했다.”

공개 방송을 방청하려고 했는데 방송이 15세 이상 관람가라 방청이 안 된다고 했다.”

면세점에서 립스틱을 사려고 했는데 청소년은 안 된다고 했다.”

친구와 찜질방에서 자려고 했는데 어려 보인다며 출입을 못 하게 했다.”

“24시간 운영하는 카페를 못 들어간다.”

여권을 발급하려고 해도 부모님을 모시고 와야 가능하다고 한다.”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가려고 했을 때 대부분의 숙박업소들이 성인만 받는다고 했다.”

속눈썹 화장 때문에 라이터를 사려고 했는데 미성년자에게 팔지 않는다고 했다.”

카메라를 대여하려고 했는데 부모 동의가 필요했다.”

도서관에서 시 낭송회를 하는데 성인만 낭송회 참여가 가능하다고 했다.”

주민등록등본을 부모님 없이 혼자 발급받지 못해서 보건소에서 보건증을 만들 수 없었다.”

피어싱을 하려고 했는데 귀 이외의 부위에 하는 것은 부모님의 동의가 있어야 했다.”



 은행과 동사무소의 창구 앞에서, 인터넷 홈페이지 안내 창에서, 또는 녹음된 전화 안내 음성에서 청소년들은 별다른 설명 없이 나이만을 이유로 거절당하고, 거부당한다. 사회의 많은 공간들이 청소년에게 무신경하고 악의적인 규칙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청소년들은 넒은 범위의 사회 활동에서 배제되고 있다. 설문조사 답변에서 청소년들은 나이 때문에 규제당하는 것으로 은행 계좌를 만드는 것, 중고 서점에서 책을 파는 것,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 등을 꼽았다. 특별한 이유 없이 청소년이 이러한 행위를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사회는 아무런 경각심이 없다. 그러나 그로 인해 청소년들이 겪는 권리 침해의 문제는 심각하다.

 


스스로 계획할 수 없는 자신의 삶

 

 청소년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나이 규제는 청소년의 삶에 대한 결정권을 매우 넓은 영역에서 억압한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들은 어떤 장소에 갈지, 어떤 물건을 구매할지, 어떤 기회를 가질지 등 일거수일투족을 규제에 의해 감시당하고 있었다. 친구들끼리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가려고 계획했던 청소년 A씨는 여행 경비를 모아두는 용으로 계좌를 개설하려 했지만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계좌 개설에 어려움을 겪었다. 숙박업소를 예약하려 했지만 대부분의 숙박업소들이 청소년끼리만 숙박할 경우 부모님 동의서를 요구했다. 부모는 청소년들끼리 여행을 가는 것이 위험하다면서 여행을 허락하지 않았다. A씨는 결국 친구들과의 여행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만 14세 미만이었던 청소년 B씨는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을 보기 위해 공개 방송에 방청 신청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방송사 홈페이지에 가입하는 것조차 부모의 동의가 필요했다. 정보통신망법 31조에 따라, 14세 미만의 청소년은 정보통신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자신의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구해야 했기 때문이다. 부모의 동의를 받아 홈페이지에 가입했지만, 방송이 15세 이용가라는 이유로 B씨에게는 방청 신청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


 타 지역에서 학교를 다니기 위해 자취를 했던 청소년 C씨는 전입신고를 하기 위해 동사무소를 갔지만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다짜고짜 청소년은 전입신고를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결국 C씨는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전입신고 되지 않은 상태로 자취를 했다. 그러나 이후 C씨는 법적으로 청소년이 전입신고를 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C씨는 담당 공무원은 관련 규칙을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당연하다는 듯이 청소년은 전입신고를 할 수 없다고 했고, 왜 그런지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한참 후에야 그게 정확한 정보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라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나이를 이유로 거절당하는 청소년들은 비청소년 위주의 사회 시스템 앞에서 삶이 위축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설문조사에서 작고 사소한 일도 나이 규제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청소년들은 굴욕감과 무력감을 느꼈다고 답했다. 응답자 중 한 명은 규제에 의해 자신의 행위를 저지당했을 때 억울하고 어이가 없었다. 다짜고짜 거부당하는 상황에서 짜증이 나고 이유를 알 수 없었다.”라고 답했다. 또 다른 응답자는 내가 나의 주인이 아닌 것 같다. 도대체 청소년으로 살면서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허망감이 들었다.”라고 답했다.


 이처럼 사회 곳곳에서 청소년을 배제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청소년 스스로도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행위의 범위를 좁게 설정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많은 청소년들이 자신은 정치적인 행동을 할 수 없을 거라 말하고는 한다. 이는 청소년이 본래 수동적이거나 무기력하기 때문이 아니라 제재 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작은 것 하나를 하는 데에도 부모나 교사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 청소년들은 계속해서 자신의 행위 능력을 의심하고 불신하게 된다.

 




잘 모르겠지만 일단 안 돼” - 무법 청소년 배제

 

 청소년에 대한 규제는 청소년에 대한 편견과 맞물려 그 범위가 과잉되게 늘어난 경향이 있다. 동사무소 직원이 쉽게 청소년은 전입신고가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었던 데에는 청소년이 원가정이 아닌 곳에서 독립적으로 살 수 없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편견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이 독립해 전입신고를 하는 것을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는, ‘어른에게 주어지는 무언의 책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생각이 반영되었을 수 있다. 이는 전형적으로 청소년이 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여겨지는 술과 담배, 섹스에 대한 사회의 통제가 더 촘촘하고 엄격한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예컨대 많은 청소년들이 콘돔을 구매할 수 없다고 아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관련법인 청소년보호법 내용상으로는 청소년이 콘돔을 구매하는 데 문제가 없다. 구매 가능 여부는 여성가족부에서 고시한 청소년유해물건의 목록에 따라 결정되는데, 특수 콘돔은 유해 물건으로 분류되지만 일반 콘돔은 유해 물건으로 분류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콘돔을 판매하는 사업장도, 콘돔을 구매하는 청소년도 법적으로 제재를 당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포털사이트에 콘돔을 검색했을 때, 청소년에게는 콘돔 구매처 등에 대한 정보가 나오지 않는다. 편의점에서 콘돔을 사려고 할 때 비청소년 직원에 의해 저지당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개별 청소년과의 관계에서 비청소년들이 자의적으로 법을 확대해서 해석하고 적용하는 예다. 이렇게 확대 해석된 부정확한 정보가 실제 법인 것처럼 오해되기도 한다. 규제의 존재만으로 청소년의 결정권이나 사생활의 자유 침해가 사회적으로 용인되면서 비청소년들이 자의적으로 청소년의 삶을 제재할 수 있는 폭 역시 넓어진다. 청소년의 입장에서는 복잡한 법망과 권력을 쥔 비청소년의 자의적인 판단이 난무하는 가운데 청소년이 스스로 성에 대해 탐색하는 시도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나이 규제와 청소년의 인간존엄성

 

 국가는 나이 규제를 통해 청소년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확실하게 통제한다. 나이를 이유로 청소년이 확실하게 할 수 있다고 (해야 한다고) 지정되는 것은 공부와 미래의 진로를 위한 훈련이다. 그 결과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의 읽기, 수학, 과학 성취 수준은 매번 참여국 중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학업성취도 외에 다른 역량들을 확인해보면 그렇지 않다. 예컨대 한국 청소년은 선거권이나 정당가입권이 보장되어 있지 않아 OECD 국가들 중 정치참여 역량이 가장 낮다. 비청소년에 비해 취업이 자유롭지 않다는 점에서 경제적으로 재산을 축적하고 부모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가능성도 적다.


 정치, 경제 분야에서 청소년이 참여할 수 있는 여지가 적은 것은 청소년의 인간존엄성에 큰 영향을 끼친다. 정치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영향력을 가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에,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청소년은 자신에게 불리하고 억압적인 환경적 요인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매우 적다. , 자기 명의의 재산을 가질 수 없을 때 청소년은 가정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낮아지고, 지속적으로 가정폭력에 노출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가정폭력에 대해서 오랫동안 연구를 진행해 온 비나 아가왈은 자기 명의의 땅이 있는 여성이 가정폭력에 희생당할 가능성이 낮다고 발표한 바 있다. 개인이 가지는 사회적 자원이 외부의 폭력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되는 것이다.


 청소년에 대한 나이 규제는 청소년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를 통해 청소년이 어떤 사회적 자원을 얻을 수 있는가와 연결된다. 청소년에 대한 규제가 많아질수록 청소년은 무능력해지고 미성숙해지며, 무능력하고 미성숙한 이들에게 기회와 자원을 허락하지 않으면 끝끝내 그런 채로 머물게 되는 악순환이 형성된다. 결과적으로 청소년의 사회적 위치는 하락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청소년에 대한 나이 규제를 허물어야 할 이유다


- 치이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