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2. 8. 00:46ㆍ소식
일부 중고등학교에서 기물파손보다도, 시험 부정행위보다도, 성희롱보다도 더 무겁게 처벌받는 행위는?
답은 바로 담배, 흡연이다. 다음은 서울 서초고등학교의 징계기준표 중 일부를 편집한 것이다. 이 학교 규정은 2016년 7월 13일에 개정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르면 흡연은 3회 적발시 출석정지나 퇴학 처분을 받게 되지만, 증명서 위조, 기물파손, 고사 중 부정행위, 시험 문제 누설 또는 절취는 최대 특별교육 이수의 징계까지만 가능하다. "불건전한 이성교제 등으로 풍기를 문란하게 한 학생"은 최대 퇴학 처분까지 가능하지만 "부녀자를 희롱하거나 심한 욕설을 한 학생"은 특별교육까지만 가능한 것도 눈에 띄는 점이다.
▲ 서울 서초고등학교 2016년 징계기준표 일부
많은 학교들에서 이와 같이 흡연을 대단히 중대한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2016년 국정감사에서 밝힌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초중고등학생 45,170명이 흡연을 이유로 징계를 받았으며, 서울 지역에서는 8,052명이 징계를 받았다. 고등학교에서 퇴학 처분을 받은 사람도 전국 135명에 이르는데, 특히 서울이 그중 97명을 차지하여 서울 지역에서 흡연을 이유로 퇴학당한 경우가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서울지부는 지난 11월 28일 서울 흥사단본부에서 <담배 때문에? - 학생인권의 관점에서 본 흡연과 학교 문제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아수나로 서울지부 치이즈 활동회원은 서울지역 중고등학교 중 156개(고등학교 80개, 중학교 76개)를 임의 추출하여 학교 규정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고등학교의 68.8%가 흡연으로 인해 최고 '퇴학'의 징계가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었으며, 중학교 중 85.6%가 특별교육이수 및 출석정지와 같은 최고 수준의 징계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었다. '전학 조치'와 같은, 불법적인 징계를 명시한 학교들도 존재했다. 대부분의 학교들은 '학교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행위'만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교내외 흡연을 모두 처벌한다고 하거나 교외에서 흡연했다는 제보가 있는 경우, 흡연 측정기에서 기준치를 넘은 경우, 흡연 관련 물품을 소지한 경우 등을 모두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어서 학생이 '흡연자'라는 것 그 자체를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
아수나로는 상당수 학교에서는 흡연을 특별한 사안으로 다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일부 학교에서는 '흡연이 2회 이상 적발된 학생'은 장학금, 학비지원, 급식지원, 포상, 대입추천, 취업 등을 전액 취소 및 보류할 수 있다고 명시했고, 일부 학교에서는 흡연으로 인한 벌점은 상점으로 상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규정하거나 가중처벌하기도 했다. 흡연 학생의 명단을 공개하는 학교도 있었다.
▲ 흡연으로 인해 받을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징계
이날 토론회에서는, 고등학교들 중 흡연 적발 회수에 따라 무조건 퇴학 조치를 하는 등, 일명 '삼진아웃' 제도를 갖고 있는 곳들이 거론됐다. 아수나로 서울지부가 조사한 고등학교들 중에서는 42.5%의 학교들에 3회, 4회, 5회, 6회 흡연 적발시 퇴학시킨다는 규정이 존재했다.
토론자로 참여한 하형주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 인권조사관은 서울 지역에서 유독 '삼진아웃' 제도 같은 규정이 많이 발견된다고 이야기하며, "개인적 소견으로는 흡연 회수를 누적해서 퇴학시키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하형주 조사관은 학교에서 금연 지도를 하는 목적은 정당하다고 보지만, 그 방식이나 범위에 관해 쟁점이 되는 부분이 있다는 취지로 이야기했다. 예를 들어 흡연을 단속하기 위해서 소변·호흡 검사를 하거나 소지품 검사를 하는 등 흡연 단속 과정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에 대해서도, "흡연 측정기는 학생의 동의를 받아서 금연 지도를 위해 쓰는 것이지 징계 목적으로 쓰면 안 된다"며, 소변검사를 한 학교에 대해 학생인권조례에서 보장한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하고 인격권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하고 학교규정 제·개정, 교직원 인권교육을 권고한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지도를 할 수 있겠지만 그 목적이 선도를 위한 것이어야 교육적으로 정당할 것이고 학생의 기본권을 최소한으로 제한하여야 할 것"이라며, "학교에서는 금연지도의 목적, 수단 등에 대한 전반적인 재점검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입장을 밝혔다. 토론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하형주 조사관에게 교육청에서의 정책 권고 검토 등 적극적 기준 제시를 당부했다.
▲ 흡연 회수 적발 누적에 따라 무조건 퇴학시키는 규정
흡연 처벌은 학생 건강이 아닌 학교 이미지를 위한 것
학생 토론자인 이반(경기도 고등학생)은 "흡연에 대한 학교의 징계는 금연을 유도하기보다는 학생을 낙인찍고 배제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고, 이는 학생의 건강이나 인권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학생다운 이미지를 유지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라며 "학교에서 흡연을 징계하지 말아야 하고, 학생들에게 학생다움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교사 토론자 권혁이(경기도 운산고 교사)는 학교 안에서 학생들과 민주적으로 토론을 하고 금연을 도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사례를 소개하며 무조건 처벌을 강화하기보다는 학생들이 실질적으로 금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권혁이는 또한 "흡연하는 학생들이 출결도 안 좋고 수업에서 소외돼있고 학교생활에 잘 적응 못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이런 학생들은 흡연이 결과일 수도 있다. 특히 학교나 선생님들이 흡연하는 학생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주고 학교생활에 적응을 하도록 이런저런 관심을 더 많이 가져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교육적인 접근 방법을 제안했다.
토론회에 참가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회원인 정윤서는 "학교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학교에서 더 눈에 불을 켜고 흡연 학생을 잡으려고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며 학교에서 흡연을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은 학생의 건강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학교의 이미지를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치이즈는 흡연에 대한 학교의 징계 규정들이 "수단의 적합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을 위반하는, 과잉 금지의 원칙을 어긴 조치"라고 비판했으며, "담배는 해로운 일이지만 도덕적으로 나쁜 일은 아니지 않나. 그러나 학교에서는 이를 잘 구별하지 않는다. 처벌은 잘못을 했을 때 받는 것이다. 몸에 해로운 걸 걱정한다면 금연 교육을 할 일이다. 흡연을 징계란 방식으로 처리하는 게 잘못된 일이다.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었을 경우 등에만 처벌하는 게 맞다."라고 주장했다.
이와 같이 학교 현장에서 많은 학생들이 흡연과 관련하여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지만, '청소년이 어디 감히 담배를 피우느냐' '담배를 피우는 건 학생답지 않다'와 같은 사회적 시선 때문에 이 문제는 잘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다. 가령 김병욱 의원실에서 발표한 자료에서는 서울에서 퇴학당한 학생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제대로 된 절차를 밟아 퇴학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퇴를 강요하거나 강제로 전학을 보내는 등 불법적인 조치도 적지 않을 거라 예상된다. 청소년들이 흡연으로 인해 학교에서 처벌받는 통계나 편견에 노출되는 경험 등에 대해 조사하는 것이 시급하다.
우리 사회가 흡연을 규제하는 것이 청소년의 건강과 안녕을 위한 것이라 해도, 흡연을 한다는 이유로 청소년을 처벌하고 흡연하는 청소년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는 것은 결코 청소년을 위한 것이 될 수 없다. 흡연이 과연 학교에서 '처벌'할 사안일까? 혹시 염려하고 대화하고 교육할 문제에 무작정 '처벌'로 대처해온 것은 아닐까? 흡연자인 학생들을 단속하고 다른 잘못보다 더 강력하게 처벌하는 학교의 모습에, 학생을 위한 곳이 아닌, 교육이 아닌 통제와 강압을 고집하는 오늘날 학교의 현실이 담겨 있다.
[공현 도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