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0. 16. 16:02ㆍ틴스페미니즘
지난 9월 27일, 인터뷰를 하기 위해 정현(가명) 씨의 집에 찾아갔다. 정현 씨는 올해 한국나이 19세가 된 98년생 여성 청소년으로 약 60일 전 출산을 하였다. 현관문을 두드리자 ‘잠깐만 기다리세요!’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3분 정도 지났을까, 정현 씨는 문을 열고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면서, 아기를 목욕시키던 중이었다고 말했다.
서울시 강남구의 어느 빌라 3층에 위치한 집이었다. 작은 부엌과 방 2개, 화장실이 있었고, 방금 목욕을 마친 아기는 그 중 한 방의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이 집은 정현 씨와 그녀의 남편, 아기가 함께 사는 집이다. 열흘 전 이 집에 이사를 왔다고 했다. 인터뷰를 하는 도중 아기가 울면 정현 씨는 젖을 물리거나 아기를 안아 달랬다. 인터뷰 중 아기가 울어 달래야했던 시간과 남편과 남편의 어머니(시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와서 통화를 했던 시간을 모두 합하여 인터뷰는 총 2시간 정도 진행되었다.
쥬리(이하 쥬) : 지금 남편 분이랑 같이 사신다고 하셨는데, 법적으로 혼인신고를 하신 건가요?
정현(이하 정) : 네. 애기 낳고 혼인신고를 해서 법적으로 부부인 상태예요. 결혼식은 따로 하진 않았고요. 혼인을 할 수 있는 연령은 만 18세부터인데 만 19세 미만, 즉 미성년인 경우에는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해요. 전 만 18세이니까 부모 동의 받아서 혼인신고를 했죠. 혼인을 한 미성년자는 성년으로 의제가 되기 때문에 저는 지금 미성년자이지만 민법상 성년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요.
쥬 : 그렇군요. 이 집에 이사 오시기 전에는 원가족과 함께 사셨나요 1?
정 : 아뇨.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탈가정을 총 3번 했고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에는 원가정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했어요. 임신한 사실이 알려지고 나서는 집에서 쫓겨난 후 미혼모 시설에 들어가 살기도 했고요. 출산하고 시설 퇴소한 후에는 시댁에서도 2주 정도 살았어요.
쥬 : 탈가정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나 이유가 혹시 있었나요?
정 : 제 원가족은 저희 엄마와 아빠, 저, 여동생 이렇게 있는데요, 엄마와 아빠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저를 때렸어요. 제가 집을 나오기 전까지는 저만 때리고 여동생은 건드리지 않았는데, 제가 나오고 나서는 여동생도 맞기 시작한 걸로 알고요. 의자를 집어던진다든가 뺨을 때린다든가 그런 심한 폭력은 한 달에 대여섯 번 꼴로 있었고, 꼭 그런 폭력이 일어나는 날이 아니어도 일상적으로 매일 눈치를 보고 숨을 죽이고 살아야 했어요. 주로 때리는 이유는 성적이 낮게 나왔다든가 제가 학원을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든가 그런 별별 이유였고. 첫번째 탈가정은 고등학교 1학년, 제가 빠른 년생이라 제 나이 16살 때였는데, 부모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간 거였죠.
△ 탈가정 : 가정을 탈출하다
“여자에게 끌리는 여자는 청소년 쉼터 입소가 불가능하대요”
쥬 : 그 때 첫 번째로 집을 나오셨을 때는 어디에서 지내셨어요?
정 : 사실 그 첫 번째 탈가정은 1박2일만에 종료되어버렸었어요. 제가 그 때 집 나와서 여성 가출청소년 쉼터에 갔었거든요. 그런데 쉼터에 처음 가면 입소 상담을 하면서 왜 집을 나왔어야만했는지를 이야기해야 해요. 그 입소 상담 때 부모와의 갈등 이야기를 하면서 제 성적 지향에 대한 이야기를 했거든요. 그런데 쉼터 쪽에서 우리는 여성 청소년 쉼터인데 여자에게 성적으로 끌리는 여자는 받을 수 없다고 입소가 불가능하대요. 그래서 경찰에 인계돼서 집으로 끌려왔죠. 집에 끌려오고는 당연히 또 맞았고요.
쥬 : 쉼터에서 성적지향을 이유로 입소 거부를 하다니 정말 심각한 문제네요. 부모와의 갈등 요인 중에 성적지향에 대한 것도 있었나 봐요.
정 : 네.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왕따를 당하긴 했지만 중학교 때는 ‘레즈’라고 소문이 나면서 왕따 괴롭힘이 심해졌어요. 학생들이 축구공 같은 걸로 제 몸을 맞추고, 급식을 저한테 엎기도 하고. 제 옷 속에 커터칼 심을 넣은 채로 계단에서 밀치기도 했어요. 화장실에서 저한테 칼을 주고는 ‘내 앞에서 손목을 그으라’고 강요하기도 했고요. 그러다 누가 제가 맞는 걸 봤나 봐요. 학교폭력 신고함에 제가 학교폭력 당하고 있다고 신고가 들어왔대요. 그래서 담임이 저를 불러냈는데 하는 말이 제가 동성애자라서 저에게 원인이 있다는 거예요. 담임이 엄마에게 연락해서 제가 동성애자이고 학교폭력을 당하고 있다고 말을 했어요. 그래서 엄마가 알게 됐죠. 사실 저는 여자에게만 끌리는 건 아니어서 동성애자는 아닌데.
“제가 겪은 부모는 오히려 저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제가 폭력을 겪을 때 방치하는 부모였어요.”
쥬 : 그래서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린다거나 했나요?
정 : 아뇨. 엄마가 반대해서 안 열렸어요. 저희 아빠가 교육공무원인데 진급을 앞두고 있어서 딸이 학교폭력에 휘말렸다는 소문이 돌면 악영향이 간다고 반대한 거예요. 알고 보니 엄마가 가해자에게 돈도 줬더라고요. 괴롭히지 말라고 돈을 준 건지 왜인지는 모르겠어요. 엄마도 그런 괴롭힘을 당한 건 제 탓이라는 식의 태도였어요. 저는 제가 동성애자가 아니라고 했는데, 엄마는 불 안 땐 굴뚝에 연기 나냐며 제가 뭔가 문제가 있으니까 그런 소문이 나는 거라 했어요. 보통 부모는 자식을 보호한다고 믿잖아요, 하지만 제가 겪은 부모는 오히려 저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제가 폭력을 겪을 때 방치하는 부모였어요. 고등학교는 일부러 멀리 있는 곳을 가서 그때부턴 직접적으로 괴롭히는 학교폭력은 더 이상 없었지만 부모에 의해서는 계속 폭력을 당했죠.
쥬 : 굉장히 힘드셨을 것 같아요. 그 이후에 두 번째 탈가정은 언제였나요?
정 : 첫 번째 탈가정했던 해, 열여섯 살 겨울에 두 번째 탈가정을 했어요. 그 때는 일주일 정도 집 밖에서 지냈는데, 탈가정해서 자취를 하던 친구네 집에 머물렀어요. 다시 시도하게 됐던 이유가, 그 전날 아빠가 저에게 식탁을 엎었거든요. 식탁 위에 유리가 깔려 있었는데 그 유리가 와장창 제 앞에서 깨졌어요. 학교 문제로 말다툼을 하다가 그렇게 됐던 거 같은데 잘 기억은 나지 않아요.
쥬 : 일주일 후에는 어떻게 다시 원가정으로 들어가신 거예요?
정 : 엄마가 장문의 사과 문자를 보냈거든요. 그거에 설득이 돼서 집에 돌아갔는데, 그 이후에도 폭력이 그치지는 않았어요. 세 번째 탈가정한 건 작년, 18살 때였어요. 6개월 동안 탈가정을 했고, 아는 사람 네 집에서 지내다가 고시원 방을 얻어서 살았어요. 그러다 몸이 아프게 돼서 병원을 가야 했는데 병원비가 없어서 다시 원가정으로 돌아갔죠. 그 때 고등학교도 자퇴처리가 됐고, 첫 번째로 임신을 했는데 자궁 외 임신이어서 임신중절을 했어요.
“소위 말하는 ‘다정한 가족’, 내 가족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쥬 : 그 때 자궁 외 임신 하셨을 때는 상대가 누구였어요?
정 : 그 전부터 제가 에세머(SMer) 2라는 자각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에 어떤 남자하고 DS 3관계를 맺었어요. 상대는 멜돔이었고 4, 한 300일 정도 그 관계가 지속됐어요. SM 플레이를 한 거나 DS관계를 맺은 것 자체는 상호동의하에, 제가 자발적으로 한 거였지만 제가 동의하지 않은 일들도 그 관계에서 일어났었어요. 이를테면 저는 피임도구를 쓰기를 원했지만 상대는 거부했고, 제가 원하지 않았는데 동영상이 찍혔고. 그래서였는지 임신한 것을 알게 됐을 때 그 사람에게 알리지 않았어요.
낙태를 할까 낳을까 고민을 하다가, 저는 폭력적인 가족밖에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 소위 말하는 ‘다정한 가족’, 내 가족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낳으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었는데 자궁 외 임신이라는 것을 알게 됐죠. 자궁 외 임신은 어차피 유산되기 때문에 임신중절이 합법이에요. 하지만 당시에 제가 탈가정 상태고 돈도 없고 그 상대에게 임신을 알리고 싶지 않기도 하고 당연히 부모에게 알릴 수도 없고 그래서 비용을 어떻게 마련해야 하나 고민을 했었어요. 그 때 트위터에서 어떤 아저씨가 자신과 성관계를 하는 조건으로 그 비용을 준다고 했었고, 그래서 그렇게 중절을 했어요.
쥬 : 시술을 하고 나서는 어떤 감정이 들었나요?
정 :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저에게 진짜 가족으로 느껴지는 가족을 갖고 싶었고, 그랬기 때문에 한편으로 아쉬운 마음도 들었고, 또 다행이라는 마음도 들었고 그랬죠. 자궁 외 임신 중절은 주사만 맞으면 되는 시술이어서 크게 힘든 시술은 아니었어요.
쥬 : 그러면 그 때 DS관계였던 상대와 처음으로 성적인 관계를 맺었던 건가요?
정 : 제 첫 성경험은 강간이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그 때 처음 혼자서 버스를 타고 어디를 가야 했는데 제가 버스를 타고 다시 그곳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는 탔을 때와 반대편에서 버스를 타야 한다는 걸 몰랐던 거예요. 그래서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다가 어딘가 모르는 곳에 내리게 됐어요. 당시에 휴대폰도 없고 그런데 부모에게 전화를 해야 하니까 전화를 빌려달라고 길에 있던 아저씨에게 이야기를 했거든요. 그랬더니 그 아저씨가 저 옆에 있는 자기 자동차 뒷좌석에 휴대폰이 있으니까 그걸 알아서 꺼내 쓰고 다시 갖다놓으래요. 그래서 저는 그 차로 가서 뒷좌석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순간 문이 닫혔고. 그렇게 강간을 당하고 길에 버려졌어요. 길에서 혼자 헤매고 있다 보니까 어떤 택시가 와서 집이 어디냐고 하고 태워다줬어요.
“얘기를 듣더니 경찰이 부모님을 데리고 오래요. 그래서 신고를 포기했어요.”
쥬 : 당시에 신고를 하거나 도움을 청하지는 않았나요?
정 : 그 때 그게 무슨 일을 당한 건지를 몰랐었어요. 그러다 일 년 정도 후에 그게 성폭력이구나 알게 돼서 집 근처 경찰서를 혼자 찾아갔었어요. 그런데 얘기를 듣더니 경찰이 부모님을 데리고 오래요. 근데 저는 부모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서 그냥 신고를 포기했어요.
쥬 : 집이 워낙 폭력적인 분위기다보니까 알리고 싶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러면 그 이후의 성경험은 언제 있었나요?
정 :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연애를 하고 서로 동의한 성관계를 했어요. 그 이후에도 연애 몇 번 했었고. 세 번째 가출 끝나고 원가정에 들어가고 나서 성노동을 잠깐 했었어요. 가출했을 때 빚을 좀 져서 갚아야 했었거든요. 트위터에 ‘용돈’ 뭐 이런 거 검색하면 성판매 계정이나 성구매 계정이 나오는데, 저도 성판매용으로 계정을 하나 만들어서 트위터로 손님 받고 장소 정해서 하고 돈 받고 그랬죠. 짧은 시간은 4만원 정도, 긴 시간은 8만원 정도 받았고, 처음에는 하고 나서 돈을 받았는데 돈을 안 주고 튀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 이후부턴 선불로 받고 했어요. 총 15번 정도 했던 것 같아요. 그 때 지금 남편을 만났어요.
쥬 : 성노동을 하면서 지금 남편 분을 만나신 거예요?
정 : 네. 그 날이 제가 성노동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하고 나간 날이었거든요. 근데 만나서 하기 전부터 카톡으로 사담도 좀 나누고 그랬는데 만나고 하고 나서도 이 사람이 저한테 계속 만나고 싶다, 연애하고 싶다 그러는 거예요. 처음엔 연애해봤자 한 달도 안 갈 줄 알았어요. 그러다 좀만 더 만날까, 좀만 더 만날까 하다가 계속 만나게 됐죠. 남편은 저보다 여덟 살 많고, 스물일곱 살이에요.
쥬 : 왜 한 달도 안 갈 줄 알았던 거예요?
정 : 좀 데이트폭력 같은 게 있었어요. 저는 길거리나 밖에서 스킨십 하는 걸 안 좋아하는데 밖에서 제 엉덩이를 만진다든지, 피임도구 사용을 거부한다든지, 옷차림을 간섭한다든지 그런 종류로. 콘돔을 안 끼겠다고 해서 제가 그럼 경구피임약을 먹겠다고 했는데, 그것도 먹지 말라는 거예요. 질외사정도 안 했고요. 자기는 ‘사고 쳐서’ 결혼하는 게 꿈이라면서. 그래서 저는 나름대로 생리주기를 계산해서 가임기에는 다른 일 있다고 안 만나는 식으로 조절하기는 했는데. 그런 이유로 중간에 헤어지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헤어졌을 때 자기는 저 없으면 못 산다고 집에도 찾아오고, 뭐 그러다 다시 연애를 했는데 일주일 후에 임신한 걸 알게 됐죠. (2편에서 계속됩니다)
여성청소년인 나의 출산과 육아 이야기 (2) 다른 가정을 꾸리고 싶어서 >>
- 인터뷰/정리 : 쥬리 기자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 이 기사는 청소년신문 요즘것들과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이 공동 기획한
<틴스페미니즘>의 연재 기사입니다.
주로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여성청소년이 겪는 복합차별 등을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