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 청소년이 산다

2016. 9. 9. 20:03Yosm Special

하지만 청소년도 주민이다


그림 : 조행하


청소년 참정권에 대한 논의가 있었을 때, 누군가는 교육감 선거만이라도 청소년이 할 수 있게 하자고 했다. 교육에 관한 결정들은 청소년에게 크게 영향을 미치는 일이기 때문에 청소년이 간접적으로 교육감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하자는 주장이었다. 지역 의원 또는 국회의원 선거까지 확장해서 투표 가능한 나이를 낮추자고 주장하는 것보다 교육감 선거만을 이야기했을 때 사람들은 비교적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청소년과 교육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탓이었다.

 

일상적으로 학생이라는 말이 청소년과 구분 없이 쓰이고 있는 것처럼, 사회는 교육이라는 범위 밖에 있는 청소년을 쉽게 상상하지 못한다. 하지만 청소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건 교육뿐일까? 청소년이 지역 의원 결정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청소년을 지역 주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지역에 사는 청소년은 옆집의 비청소년에 비해 어떤 차별을 받고 있을까?

 


지역 주민에 청소년은 없다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르면 일정 규모 이상의 아파트에는 모두 입주자 대표 회의가 설치된다. 입주자 대표 회의는 선거를 통해 뽑힌 동별 대표자로 구성되며 아파트 단지 내에서 결정해야 하는 모든 것들을 결정한다. 결정 사항들은 대부분 주민의 삶에 직접 연관된 있는 것들이 많은데 예를 들어 단지 내에 공사해야 하는 것이 있으면 어떤 사업자에게 공사를 맡길지, 방범용 CCTV를 설치하거나 주민운동시설에 어떤 기구를 설치할지 등 세세한 것들이 모두 포함된다.


하지만 동별 대표자로 출마할 수 있는 자격에 청소년은 제외된다. 동별 대표자로 출마할 자격이 미성년자가 아닌 소유자, 소유자의 배우자 또는 직계존비속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청소년은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 입주자 대표 회의가 있는지도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거주 환경이나 아파트 내 청소년 시설에 대해서 불편한 사항이 있어도 그것을 제대로 표출하고 해소하기가 쉽지 않다. 전남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청소년 구 씨는 아파트의 청소노동자, 경비노동자를 대부분 해고하고 근무 시간을 연장하기로 했을 때나 아파트 재건축을 결정할 때 의견을 낼 수도 없었고, 진행 과정이 어떻게 되어가는지도 뚜렷하게 알 수 없었다. 집 근처 편의점 점장님이 말씀해주셔서 알았다. 내 집에서 벌어지는 일을 내가 결정할 수 없어서 무기력하다.”고 말했다.



청소년의 의사 결정 제한은 청소년이 살기 힘든 곳 만들어


청소년의 의견이 실질적으로 닿지 않기 때문에 청소년이 살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들이 거주지 곳곳에 위치하기도 한다. 구 씨는 야자나 학원을 마치고 돌아오면 10시에서 11시 정도인데, 지금 있는 가로등은 너무 어둡고 센서 등도 항상 누군가 끈다.”고 말했다. 한편 충북의 아파트에서 사는 청소년 장 씨는 우리 아파트에는 공부방이 없어서 항상 다른 아파트의 공부방에 가야 한다. 가끔 눈치 보일 때가 있다.”고 말했다. 어린이들이 이용하는 놀이터는 낙후된 상태로 방치된 경우도 많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청소년들이 의견을 낼 수 있는 절차가 거의 없으므로 청소년들은 부모나 같이 사는 비청소년 주민을 통해서 의견을 전달해야 한다. 따라서 청소년 관련 시설에 대해서도 청소년 당사자보다는 부모의 의견을 중심으로 반영될 수밖에 없다.



마을공동체 속의 청소년


한편 이처럼 오랫동안 소외당했던 거주지 안에서 스스로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는 청소년들이 있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성미산 마을에서는 청소년들이 마을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에 직접 나서서 참여하고 있다. 성미산 마을은 2000년대 초부터 정부나 사립 재단에 의해 원치 않는 개발을 여러 번 겪었고, 그럴 때마다 마을 주민들은 청소년과 비청소년 가릴 것 없이 개발을 반대하는 투쟁에 함께했다.

 

2007년에 홍익학원이 성미산마을에 부속 초··고등학교를 세우려고 했을 때 주민으로서 반대 투쟁에 참여했던 청소년 론레(가명)모든 이해관계를 알고 있지는 못 했지만 내가 놀던 공간이 없어지는 거구나싶어 산에 올라갔다. 공연도 하고 발언도 했는데 결국엔 건물이 들어섰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많은 친구들은 마음 한 구석에 실패에 대한 아픔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전히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재개발에 맞서는 사람들은 자기 삶의 공간을 빼앗기는 것에 분노한다. 그리고 삶의 공간을 빼앗기는 것은 비청소년 주민들뿐만이 아닐 것이다. 많은 청소년 또한 자신의 지역에서 살고, 친구들과 놀고, 이곳 저곳 추억을 쌓으면서 그 지역을 자기 삶의 공간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그 공간이 훼손될 위기에 처했을 때 나서서 반대 행동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성미산 마을에 있는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에 다니고 있는 론레는 학교에서 마을 일을 함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성미산 마을의 청소년 중 절반 가까이가 성미산학교 교육을 받고 있는데 청소년들이 마을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성미산학교 구성원으로서 참여할 때가 많다. 학교 활동으로 생태기술을 이용한 화덕과 태양광 발전기를 만든 후에 마을에 보급하거나 학교 안에서 만든 예술 동아리로 마을 축제 때 공연을 하는 식이다.

 

론레는 성미산 마을에 살면서 무슨 일을 하든지, 어떤 생각을 하든지 마을과 연결해볼 수 있는 것들을 찾으려고 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졸업 이후 무언가 마을 안에서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성미산 마을에 살면서 맞게 된 삶의 변화다.

 


여전히 마을의 주체는 부모들?


하지만 성미산 마을에서 청소년으로 마을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마냥 순탄치는 않다. 론레는 성미산 마을이 처음에 육아공동체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여전히 마을의 주체는 30대에서 50대의 부모들이라고 말한다. 청소년이 마을 안에서 사업을 하려고 하면 이용자가 아닌 학부모의 입장으로 이런저런 것들을 알려주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다 보니 청소년이 마을 활동을 직접 기획하는 일이 드물고, 청소년과 비청소년이 함께 하는 자리에 청소년이 참여하는 비율도 높지 않다.

 

이처럼 학교를 중심으로 한 여러 마을 공동체들이 청소년을 교육과 양육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문제로 쉽게 빠지는 경향이 있다. 이는 곧 주민으로서 청소년이 존중받는 데에 어려움이 있음을 나타낸다.

 


학생 인권이 전부가 아니야

 

청소년은 학교의 구성원이기도 하지만 또한 지역의 주민이기도 하다. 자신이 사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 사람의 정체성과 삶의 질에도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모두가 관심 두는 거주지 문제에 청소년이라고 예외가 될 수 있을까. 자신이 사는 곳에 관한 결정에 의견을 낼 수 없고, 주민을 위한 공동체에 청소년이 동등한 자격으로 포함되지 않는 현실에서 청소년은 주민이지만 주민이 아니다. 전반적인 청소년의 권리 신장을 얘기할 때 학생 인권만이 전부인 것처럼 취급해서는 안 될 이유다.


 >>관련기사 : (론레 인터뷰 전문) 성미산에 론레가 산다 - 굶어죽지는 않을 거라는 근자감

- 치이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