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4. 27. 19:52ㆍ칼럼-청소년의 눈으로
우리는 여전히 학교 안에 갇혀 있다
관악구 중고등학교 학생인권 실태조사, 그리고 학생이 직접 말하는 이곳의 학교.
편집자 : 이 글은 관악청소년연대 여유 활동가 김도헌씨가 요즘것들에 기고해주신 글입니다. 지난 2월 발표된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는 관악청소년연대 여유 카페의 이 글에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그래도 요즘 학교는 다닐 만하다’, ‘청소년이 무슨 인권침해를 당하냐’, ‘내가 학교 다닐 때는 교사들이 발바닥도 때렸다’. 학교를 다니면서 줄기차게 들었던 말이다. 이제 학생인권조례도 생기고, 뉴스에서는 ‘교권추락’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으니 그런 말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에서 생각하는 학교의 모습과, 내가 직접 다니고 있는 학교의 모습은 많이 다르다. 매질을 하는 교사는 아직까지 존재하며, 긴 머리는 싹둑 잘려버렸고, 수많은 감시와 규제 아래서 학생들은 살아간다. 씁쓸하지만, 2015년의 중고등학교는 이러했다.
학생의 존엄과 가치를 위한 서울학생인권조례가 공포가 되고 4년이 흘렀다. 그러나 여전히 학교의 반인권적인 행동으로 학생들의 숨통이 옥죄이고 있다. 4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그대로이다.
학생인권조례 공포 4년 차, 완벽히 무시하는 서울 관악 지역 학교들
내가 작년까지 다녔던 관악구의 모 학교 역시 마찬가지다. 매일 아침 화장을 한 학생들을 잡으려 대기하고 있는 교사들의 눈치를 보았다. 체육시간은 무언가를 배우는 시간이 아닌 그저 체력단련을 가장한 간접체벌만 있었다. 하루 7시간씩 학교에 머물면서 나를 비롯한 모든 학생들에게는 피로감만 몰려왔다. 각종 수행평가 점수가 칠판에 붙여지면 경쟁에 대한 압박은 배가 되었다. 학생인권조례를 완벽히 무시한 학교의 규정 아래 교사들은 우리들의 자유를 점점 지워갔다.
△ 2015 관악구 중고등학교 학생인권 실태조사 당시의 사진 제공 : 관악청소년연대 여유
나는 작년까지 관악구에 소재한 중학교를 다녔고 동시에 관악청소년연대 여유에서 활동하고 있다. 2015년 여름, 여유에서는 관악구 중고등학생의 학생인권이 얼마나 보장되고 있는 지 알아보기 위해 <관악구 중고등학교 학생인권 실태조사>를 진행하게 됐고, 나 역시 이 실태조사를 함께 받으러 관악구의 중고등학교 앞을 찾았다. 관악구의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으로서 설문조사 응답을 하기도 했다.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을 때, 나는 내가 다니는 중학교만 문제인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지역의 모든 중고등학교의 학생인권 실태는 심각했다.
관악 학생 43.8% 직접 체벌을 경험한 적 있다
△ 2015 관악구 중고등학교 학생인권 실태조사 결과보고서 일부 제공 : 관악청소년연대 여유
설문조사와 면접조사를 통해 학생들이 응답한 결과에 따르면, 학교 안에서의 체벌은 법적으로는 금지됐지만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내가 다닌 중학교에서도 교사들이 직접 손으로 등을 내려치기도 하며, 긴 막대기를 들고 다니며 학생들의 손바닥을 때리는 체벌도 아직까지 남아있다. 뿐만 아니라 장난스럽게 학생들의 머리에 꿀밤을 먹이는 교사들까지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사회에서는 학생에게 치명상을 입히지 않는 체벌만 아니라면 괜찮다는 반응을 보이고는 한다. 체벌의 옳고 그름을 그 강도에 맞추기 보다는, 교사가 행하는 일방적 폭력에 대해 문제를 제시해야 하지 않을 까 싶은 데 말이다.
체벌은 신체적인 고통을 주는 징계이다. 때문에 위에 제시한 직접적인 체벌뿐만 아닌 오리걸음이나 엎드려뻗쳐 등 간접적인 징계 또한 체벌이다. 안타깝지만 학생들도 이미 이런 체벌에 적응을 했는지 잠시 짜증만 낼 뿐 개의치 않아 하고 있다. 이 외에도 교사가 학생들에게 폭언을 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욕설을 할 뿐만도 아니라, 심지어 성적과 외모를 가지고 학생들을 비하하기도 한다.
서울학생인권조례 "학생은 두발 복장 등 개성을 실현할 자유 가져" 현실은 관악 학생 77% '규제 당한다'
△ 2015 관악구 중고등학교 학생인권 실태조사 결과보고서 일부 제공 : 관악청소년연대 여유
학생들의 가장 기본적인 자유를 완전히 차단해버리는 것이 두발과 복장규제이다. 관악구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사소한 모든 것을 규제하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학생다움’ 과 ‘학업에 집중하기 위함’ 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당당하게 학생들을 단속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기준은 너무나도 모호하다. 화장을 하지 않는 게 학생다운 것인가? 까만 머리가 학업 향상에 도움이 될까?
특히 학생과 교사 사이의 색조화장 단속은 굉장히 날카롭다. 교사들은 화장을 자주 하는 학생들을 위주로 집중 단속을 하기도 하고, 또한 소지품(화장품) 압수로 까지 이어진다. 특히나 압수를 할 경우에는 다시 돌려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 외에도 관악구의 중고등학교에서는 강제 방과후수업, 야자 등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또한 학생들을 차별하는 우열반 수업도 흔히 볼 수가 있었다. 더 넓게는 종교 강요, 연애 금지 등의 예민한 부분 까지 학교가 규제하고 있다. 예상컨대, 이것은 단지 서울 관악구의 학교들에만 해당되는 현실은 아닐 것이다.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깊이 스민 인권침해, 하지만...
실태조사의 결과는 나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보다 마음이 아팠던 것은, 내가 직접 보았던 학생들의 모습이었다. 모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인데, 실태조사에 참여해 달라 말을 했는데 “저 고3이라서…….” 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 외에도 내가 내민 전단지들을 뿌리치고 지나가는 학생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어쩌면 ‘학생인권침해’가 우리 청소년들이 인식하지도 못할 정도로 생활에 녹아버린 걸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학교는 당연하다는 듯이 학생들을 규제하고, 가두고 있다. 당연한 권리를 침해받았다는 생각을 할 틈이 없을 정도로 학생의 삶은 빡빡하지 않은가 싶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희망은 있었다. 당시 내가 직접 실태조사 설문지를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돌렸었다. 그 덕분에 학생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자세하게 볼 수가 있었다. 설문지가 돌고 돌았던 이 날, 이 학교에서는 '인권열풍‘이 불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의 반응은 대체로 이러했다. 이런 것도 있냐며 신기해하고, 또 누군가는 이 학생인권을 옹호한다며 외쳤다. 결국에는 학생 한 명 한 명의 목소리가 모여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학교 안에서의 청소년들은 아직 까지 힘을 내지 못하고 있다. 얼토당토않은 체벌과 규제, 상상할 수도 없는 학습시간, 그리고 억압받는 자치적인 활동. 학생들이 언제 쯤 ‘학교의 주인은 학생’ 이라는 말을 되찾을 수 있을 까. 서울학생인권조례 공포 4년,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학교 안에서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 그래도 언젠가는, ‘다닐 만한 학교’가 생겨날 수 있지 않을까 조금의 기대를 해본다.
김도헌
관악청소년연대 여유 활동가
관악구의 학교를 다녔었던, 그리고 관악청소년연대 여유에서 활동하는 청소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