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신문 요즘것들

남학교 청소년이 바라본 여성혐오

2016.12.28 17:27 - 요즘것들 아수나로

고의 풍경, “아 맞다, 얘 페미니스트다이가

 

 한 친구가 있다. 이 친구와 평소에 페미니즘 이슈나 여성혐오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종종 논리적으로는 납득하지만, 그는 결국엔 그런 이야기들을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던가 어쩔 수 없는 것”, “해결되기 어려운 것등으로 치부해 버리고는 한다. 그리고 끝내는 여성혐오의 심각성이나 페미니즘 운동을 농담으로 즐길 거리로 삼고는 한다. 자신이 하는 이야기 중에 여성이 언급되기라도 하면 이것도 여성혐오가?”라며 여성혐오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을 놀리곤 하는 식이다.

 

 또 한 번은 바로 뒷자리에 앉은 친구가 나에게 SNS로 여성의 몸매를 품평하고 조롱하는 짤방을 보여 주며 웃기지 않느냐고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웃기지도 않아서 정색을 하였더니, 나의 얼굴색을 눈치 챈 그 친구는 가만히 분위기를 읽다가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이 한 마디를 던졌다. “아 맞다, 얘 페미니스트다이가.” 그리고 곧 옆에 있던 친구도 그 소리를 듣더니 뭔가 이해를 했다는 듯이 아 그랬네, 하는 것이었다.


  그 친구들은 내가 평소 SNS에서나 학급에서 여성혐오나 페미니즘에 대해 잦은 언급을 했기 때문에, 무엇이 여성혐오인지 그리고 페미니즘을 말하는 사람들이 어떤 부분에서 불편해 하는지 대충은 눈치를 채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들에게 페미니즘은 별로 중요한 가치가 아니다. 설령 그들이 생각하기에도 페미니즘이 논리적으로 옳더라도, 그들에게는 여성혐오적인 사고관이 1’, ‘정상적인’, 그리고 그들이 오락을 즐기기엔 제일 안정적인사고관인 것이다.


  교사들도 별로 문제의식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남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심하게 떠들거나 수다를 길게 떨면 교사가 가시나들도 아니고라는 말을 하고는 한다. 여학생들이 말이 많고 시끄럽다는, 전형적으로 성차별적이고 여성혐오적인 고정관념을 담은 말이다.


  남학교인데도 욕으로는 보다도 소리를 더 많이 듣게 된다. 그 이유를 물어봤더니, “이 입에 더 잘 감긴다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여자를 욕하는 것이 이미 학생들의 입에 익숙해진 것일까? 두 번째로 들은 답변은 저 새끼는 꼬추를 달고 있을 가치가 없어서그렇게 욕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가 남학생들이 공유하고 있는 여성혐오의 중요한 한 성격을 드러내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10대 남성의 여성혐오

 

 노혜경은 여성혐오를 남성 지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모든 전략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노혜경(2016), "메갈리아로부터 떠날 때 - [메갈리아 해방전쟁] "젠더 사회의 진정한 적과 맞서야 할 때"". 〈레디앙〉, 2016년 9월 12일.) 여성의 개인으로서의 주체성을 지워버린 채 그 성적 이미지만을 물화·대상화하는 등 여성을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모든 것이 여성혐오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남성의 삶에 관한 기초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설문 결과 남자 청소년 응

답자의 66.7%가 우리 사회에서 널리 쓰이는 된장녀’, ‘김치녀등의 여성혐오 표현에 공감한다고 응답했다. 대학생, 직장인을 포함한 전체 남성 응답자보다도 10% 이상 높은 수치다. 이 수치는 남성 청소년들의 여성혐오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들이 공유하는 여성혐오의 구조는, ‘김치녀등 여성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와 비하가 담긴 표현들을 사용하거나 거기에 공감하는 것만으로 설명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는 않다.


  우리와 같이 학업에 열중해야 할것을 요구받는 고등학생 시기에 이성 교제는 일종의 금기처럼 여겨진다. 남고생들은 한나절을 여성이 거의 없는 학교에서 보내는 일상을 3년간 반복한다. 그들은, 여성과 격리된 남성만의 일상생활에 익숙해지며 자연히 비성소수자/남성/비장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공유하고, 상대적 주류로서의 우위를 서로 확인함으로써 그들 사이의 유대감을 형성한다. 비성소수자/남성/비장애인으로서의 우월한 지위를 서로 승인한 이들 남성간의 연대는, 신체적 장애나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 등으로 인해 진정한 남성으로 인정받지 못한 이들과 여성을 배제하고 타자화함으로써 견고해진다. 여성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우에노 치즈코는, 주류 성(性)으로서의 남성 간 연대호모소셜(homosocial)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호모소셜한 남자가 자신의 성적 주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이용하는 장치가 바로 여성을 성적 객체화하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여성의 성적 객체화를 서로 승인함으로써 성적 주체 간 상호 승인과 연대가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 여자를 (적어도 한 명 이상) 소유하는 것이 성적 주체가 되기 위한 조건인 것이다. (……) 서로를 남성으로 인정한 이들의 연대는, 남성이 되지 못한 이들과 여성을 배제하고 차별화함으로써 성립한다.

- 우에노 치즈코 씀, 나일등 옮김(2012),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36~37

 

  곧, 이성애자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규정되는 남성, “성적 객체로서의 여자를 소유하는 성적 주체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남성 중심적으로 조직된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자로서 인정받기 위해선 자기 여자를 소유할 만한, ‘남자다움을 증명해야 하는 셈이다. ‘남자다움을 갖추지 못한, 신체적·정서적 결함이 있는 이들, ‘나약한이들은 동등한 주체로서 인정하지 않는 남성 중심 공동체의 내적 논리이다.


  장애인이나 동성애자가 차별이나 혐오의 대상이 되는 건, 남성 중심 사회의 이와 같은 내적 논리와 무관하지 않다. ‘남성으로 자격 미달인 신체적 장애를 가지거나 동성애자인 이들을 놀림의 대상으로 삼고 즐기는 행위를 공유하며, 그들은 남자다움’, 주체성을 상호 승인한다. 장애인 급우를 은따하거나, 동성애적 모습을 익살스럽게 흉내 내는 남학생들의 모습도 남성 중심의 호모소셜리티에 의해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행위의 한 양태라고 말할 수 있다.


  ‘여자 이야기역시 남학생들의 일상적 대화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이것 역시 호모소셜리티의 확립, 유지를 위해 여성의 성적 객체화를 서로 승인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남학생들은 여성을 대상화하는 성적 농담, 또는 노골적으로 여성을 경멸하는 농담을 통해 자기 여자를 소유할 예비 남성으로서의 지위, 여성보다 우월한 남성으로서의 지위를 확인한다.


  누구를 따먹고싶은지, 어떻게 박고싶은지 이 년몇 컵인지, “걸레인지 아닌지, “김치녀/된장녀인지 아닌지, “자연 미인인지 ()()”인지, “꽃뱀들이 얼마나 나쁜지, “메갈련들이 얼마나 악독한 들인지……. 이들이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여성은 노골적 증오나 조롱의 대상(김치녀/된장녀, 꽃뱀, 메갈련)이거나, 대상화된 성적 이미지만으로 상징되는 타자(“따먹고”, “박고”, “몇 컵”)이다. 전자와 같은 여성에 대한 증오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주로 제공하는 것은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나 페이스북 등 SNS 등에 전파되는 여성혐오 담화들이다.


  그래서 우리가 다니는 고등학교의 남학생들은 온라인을 통해 접한 여성혐오적 이야기들을 자주 옮겨 오고, 이는 허구적인 여성혐오의 경험을 공유하게 한다. ‘김치녀’, ‘된장녀에 열 올리는 남자들이 문제 삼는 데이트 비용 문제가 대표적이다. 데이트 경험이 많지도 않고 큰 돈을 쓸 만한 경제력도 없는 고등학교 남학생들이 남녀의 데이트 비용 격차에 대해 자세히 꿰고 있는 이유는 온라인에서 공유하는 여성혐오 담론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그렇게 남성들은 온라인을 통해 공간과 세대를 넘어 이른바 김치녀에 대한 적개심과 여성혐오의 논리를 공유한다.


  앞서 인용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남성들에게 여성혐오가 생기게 된 이유를 꼽아 달라고 하자 여성가족부 때문이라는 응답이 가장 높았다고 한다. 우리들이 재학 중인 남고에서도 역시 여성부를 까는 말들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주요 논거는 역시 여성의 성기와 닮았다는 이유로 조리퐁을 판매금지 하려 한다따위의,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허위로 전해지거나 과장된 이야기들이 상당수였다. 최근 몇 개월 사이에 이들의 타깃은 메갈리아로 옮겨 갔다. ‘메갈리아진정한 페미니즘이 아니라는, 메갈리아 사냥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나무위키 유저 등에 의해 발명된 익숙한 논리 역시 학생들의 입을 통해 곧잘 들을 수 있었다. 최근 온라인 공간을 통해 만들어진 언어들과 논리들이, 그들의 호모소셜을 견고히 하기 위해 공유되는 인식체계와 이야기의 주요한 재료를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이다.

 


성적 도구로 소비되는 여성

 

 이들이 여성에 대해 나누는 대화의 또 한 가지 부류는, 여성의 성적 매력에 대해 등급을 매기며 품평하거나, “따먹다”, “박는다따위의 말들로 성관계를 지칭하는 등, 주체성이 소거된 여성의 성적 이미지를 만들고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것이다. 사람은 사람을 먹을 수 없으며, “박는다라는 말도 벽에 못을 박는다와 같이 주로 사물에 대해 행해지는 동작을 지칭한다. “먹는다거나 박는다라는 표현은,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며 성관계를 남성이 주체가 되고 여성은 대상이 되는 일방적인 행위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렇게도 폭력성이 짙은 말이지만, 이들이 즐겨 소비하는 포르노에서 여성이 보여지는 방식을 살펴보면, “따먹는다”, “박는다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포르노가 그리는 여성은, “여성을 나타내는 기호(우에노 치즈코, 앞의 책)들의 집합체일 뿐이다. 포르노 속에서 여성은 철저히 남성의 욕망에 종속된 물건으로 그려진다. 그런 이미지들을 반복적으로 학습한 남학생들 사이의 대화에서, 비하의 대상이나 성적 도구로서의 여성이 아닌, 동등한 주체로서의 여자를 찾기란 어렵다.


  그래서, 그들은 피시방 엘리베이터를 여성과 같이 타게 된다면 나랑 섹스할지 물어 보고, 수락한다면 엘리베이터에서 바로 강간하고, 거부하면 문이 열리자마자 도망을 가면 되는 것이라는 식의, 흡사 강간모의와 같은 말들을 농담으로 내뱉을 수가 있다. 물론 누군가 이 농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이에 찬동하는 것이 그들 간의 유대를 굳건히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성적 욕망을 투영하는 대상, 기호들의 집합체로서만 존재하는 여성만이 존재하는 이들의 상징 체계 속에서 강간은 한낱 농담거리에 불과한 것이다.


  반 학생들이 모이는 카톡방, 반톡은 여성 연예인들의 노출 화보와 직캠사진, 여성에 대한 외모 품평, 성희롱으로 종종 도배되고는 한다. 고려대 카톡방 사건은 결코 단순히 철없고 못된 일부 남대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긴 시간 이어져 온 호모소셜 문화 중 일부가 공론화된 것일 뿐이다.


  남학생들은 여성 교사가 사소한 일에 흥분한다는 생각이 들면, ‘생리한다라는 말을 내뱉는다. 오죽하면, 남성 교사의 경우에도 그 행동이 신경질적이라고 느껴지면 생리가 된다. 그들에게 월경은 여성의 고충으로 이해되지 않으며, 그들을 짜증나고 거슬리게 하는 이들에 대한 조롱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그들의 대화 속에서는 여성의 고충을 이해할 만큼 여성을 동등한 주체로 대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학교에서의 성교육은 하지 말아야 할 것과 억제해야 할 것의 목록들이나, 성폭력 피해자가 되지 않는 법 따위를 가르칠 뿐, 다른 성별을 갖고 있는 이들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가르치지 않는다.


  여성혐오적 대화들은, 평소 수직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남학생과 남교사 간의 관계에 윤활유로 기능하기도 한다. 남교사가 분위기 전환을 위해 섹드립('섹스'와 '애드립'을 합친 말. 즉흥적으로 하는 성적인 농담이나 이야기 등)을 한다거나, ‘개념 없는 여자들을 까며 공감대를 형성하거나 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 사이에도 호모소셜이 형성된다. 한 남교사는 자신이 여고에 근무했을 때 여학생들 사이에 퍼졌다고 하는, 자신이 여학생과 교제한다는 유언비어를 겪은 경험을 말하며, “여자애들에 대한 환상을 가지면 안 된다고 열변했다. 그는 여성은 속이 좁고 비겁하다는 인식을 내비치고, 여성은 조신하고 검소해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여학생들 뒷담 까기가 그가 수업시간에 분위기 전환을 위해 꺼내는 사담의 단골 소재다.


  여학생들이 행사 참여로 학교에 방문하게 되는 일이 간혹 있다. 이럴 때는 보는 주체와 보여지는 객체의 관계가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남학생들은 학교를 방문하는 여학생들의 모습이 보일 때마다 교실 창문에 달라붙어서는 다같이 우우우우우우!!!!”거린다. 또 가령 여학교 댄스부가 무대 복장으로 걸 그룹 안무를 한다면, 공연 장소인 강당에서는 수십 명의 남학생들이 종횡이 가지런했던 의자를 극렬한 몸짓과 함께 무대 가까이로 끌고 가, 고함 수준의 함성으로 공연장을 가득 채운다. 그 함성은 공연자를 응원하는 함성이 아니다. 발정 난 남근들의 폭음이다. 흡사 걸 그룹이 군 부대 위문 공연을 가면 볼 수 있을 법한 광경이다. 긴장하며 무대에 올라선 학생들은, 웬 남자들이 떼를 지어 의자를 무대 가까이로 끌고 오며 소리 지르는 모습을 보게 된다. 거기에 공연자에 대한 배려나 매너 따윈 없다. 남성이나 비청소년 공연자들에 대해서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행위의 의미는 뚜렷하다. 나이로 보나, 젠더 위계로 보나, 머릿수로 보나 꿀릴것 없는 이들이 우위에 서서 마음껏 시선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학교 시스템 변화가 필요

 

 남성 청소년에게 청소년기란, 남성성을 학습하고 남성 집단의 일원으로서의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해나가는 시기일 테다. 그리고 그들은 뿌리 깊은 가부장제와 젠더 간 불균형의 산물인 여성혐오를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학습한다.


  학교에서 형성되는 호모소셜과 여성혐오 문화는, 이후에 군대나 직장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 여성을 향한 대상화와 타자화는 물론 남녀공학에서도 일어나지만 남학교에서 더 심하게 일어나고 공유된다. 성별을 분리시키는 학교교육이 과연 바람직한지, 이런 현상들까지 고려가 되고 있는 건지 의문스럽다.


  남학교에서 학생들 개개인이 문제 제기를 통해 여성혐오의 심각성을 환기하는 것도 물론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문제 제기가 힘을 갖기 위해서는 분위기 조성이 중요하다. 문제 제기를 한 사람들이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인권 감수성이나 여성혐오에 대한 문제의식 등이 어느 정도 공유되고 자리를 잡고 있어야만 한다. 개인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학교 시스템이 서로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과 인권에 대한 감수성을 함양시키기 보다는, 입시 위주의 지식을 암기하고 근면 성실한 규율 순응형의 인간을 길러내는 데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하지만, 남성들의 연대와 정체성이 여성혐오에 의해 성립되고 호모포비아에 의해 유지된다는 사실은, 실은 사회적 남성의 존재 근거가 남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비남성’, ‘여성에 대한 배제와 차별, 타자화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들의 정체성이 다른 누군가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에 근거한다는 것은 더 이상은 자연스러워서는 안 될 일이다.



이승엽

부산의 고등학생입니다.

 

조행하

부산에 거주하는 그림쟁이,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부산지부 활동회원



*오늘의 교육 35호 '페미니즘과 교육' 기획코너에 실린 글을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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