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가족’은 없다

2016. 11. 14. 22:10Yosm Special

“저같이 폭력 당하는지 모르고 살지 말았음 좋겠어요” O(17,여)


한국의 법이 ‘부모를 비롯한 보호자가 아동에게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를 학대로 규정하고 처벌하기 시작한 것이 작년 9월이다. 부모도 자녀에게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된다는 인식을 확산하는 일보의 발전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체벌과 감금 등 심한 사례만을 가정폭력으로 인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생활통제, 즉 외출금지, 강제학습, 용돈 끊기, 종교 강요, 대인관계 간섭, 핸드폰 규제 등은 여전히 훈육법으로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실상 생활통제는 육체적 및 언어적 폭력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 사회에서 문화적으로 용인되고 경제적으로 설계되어 있다.


요즘것들은 인터넷 설문조사와 개별 인터뷰를 통해, 사회적으로 인정되지 못한 폭력 경험을 조명하고, 피해자들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조사했다. 그 내용을 싣는다.

 <설문조사 中, 가족에게 하고 싶은 한마디>


우리 가족이 아이돌 그룹이라면 좋겠습니다. 어서 해체해버리게. 

날 사랑한다고 하지 말아요. 그게 나에게 더 상처가 돼요. 방에 도어락 걸고 싶어. 

당신들 집이 아니라 내 집이기도 해요. 

신고는 내 자유입니다. 


“아들이기 전에 사람으로 살고 싶은데”


H씨(18,남)는 15살 즈음부터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자 부모는 H씨를 강제로 학원에 보냈다.외출을 늘 허락받아야 하고, 용돈을 주기적으로 받지 못하는 한편,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허락받지 못했다. 어느 날 H씨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너무 갑갑하다. 나에게 자유를 조금만 달라.’ 그러자 부모는‘내가 못 해준 게 뭐가 있어?’, ‘돈은 네가 벌어 오냐?’라며 화를 냈다.


H씨는 말한다. “그래서 눈을 마주치면서 차라리 나가서 살면 안되냐고 물었을 때는, 순간 저를 죽이려고 하더라고요. 제가 생각하는 스스로의 권리와 부모님이 생각하는 ‘아들’의 권리는 색깔이 너무 달라요.저는 아들이기 이전에 사람으로 살고 싶은데, 부모님은 아들이 사람이 아니어도, 자신들의 정의에 부합하면 문제가 없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내가 못나서 이렇게 사는 구나”


J씨(18,여)는 비만인 몸에 대해 가족으로부터 오랫동안 비난을 받아왔다. “먹을 때마다 걸신들린 듯이 먹는다고, 돼지 같다는 말을 했어요.” 외출금지와 강제학습은 J씨의 건강을 더욱 해쳤다. “살찐다고 4시에 저녁을 주고, 6시 이후 집 밖에 나가면 눈치를 주곤 했어요. 운동할 시간이 없었죠. 초등학교 고학년 때는 학원 때문에 나갈 수도 없었어요.”


시간이 흐를수록 살이 쪘고, 때문에 부모는 새 옷을 사주지 않았다. 부모의 경제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던 중학생 시절의 그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계속 입어야 했다. “옷을 입을 때마다 비참했습니다. ‘내가 못나서 이렇게 사는구나’라고 생각했죠. 자신을 꾸미고 가꾸는 건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난 아마 평생 이런 모습으로 살 거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어요. 뭘 해도 지속적인 기쁨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내 못생긴 몸을 좋아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잘되라고? 나는 지금 행복하고 싶다.”


K씨(17,남)는 오랫동안 성적이 100점에 가까워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려왔다. 중학교 입학 후 처음 치른 시험에서 총 5문제를 틀리자 K씨의 부모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반응했다. “저는 제가 뭔가를 잘못한 줄 알았고, 더 완벽해지려고 노력했습니다.” 


중학교에 다닐 때, K씨는 빈곤한 지역에 거주하며 성적이 낮은 학생들에게 편견을 가지고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곧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림 그리는 것에 몰입하다가 성적이 떨어지자 부모는 화를 내고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은 K씨를 멀리했다.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돌변한 주변 사람들의 모습에, 예전 자신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이후 K씨는 다양한 사람들을 사귀려 했다. 하지만 부모는 K씨가 친구를 사귈 때마다 사는 곳을 물어보고, 그 답에 따라 교제를 금지시켰다. ‘나중에 네가 잘되라고 그런다’는 말에, K씨는 남의 통제가 아닌 스스로 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응답한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먹고 싶은 게 뭔지, 억지로 하고 있는 게 뭔지 본인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응답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만이 정말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폰 함부로 뺏지 마라 한번이라도 폰만큼..


Z씨(13,여)는 지속적으로 스마트폰을 압수당했다. 스마트폰을 많이 보며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부친이 강제로 Z씨의 스마트폰에 통제앱을 깔기도 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지 감시하기 위해 수시로 Z씨의 방문을 ‘벌컥벌컥’ 열었다. 길거리에서 스마트폰을 본 것을 들키자 빼앗아 부숴버리는 일도 있었다.


그밖에도 Z씨는 생활통제와 언어적 육체적 폭력을 여러 차례 복합적으로 경험했다. 친구에게 장난으로 툭툭 맞으면 아빠가 생각난다는 Z씨는 “현실도피용으로 핸드폰을 많이 보게 된 것 같다.”고 말한다. 스마트폰은 폭력 경험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요긴한 물건이지만, 부모는 그것을 빌미로 그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욕심을 부리는 능력이 결여된 사람”


I씨(20,여)는 청소년기 수년간 ‘모태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종교를 강요당했다. 하지만 I씨는 납득할 수 없는 교리도, 자신을 한 개인이 아닌 ‘예수님의 제자’로 보는 분위기도 싫었다. 교회에 가지 않으려 꾀병을 부리기도 했지만 모친은 ‘너 따위가 뭘 아느냐’며 I씨에게 언어적 육체적 폭력을 행사했다. I씨는 자신의 존재가 짓밟히고 인정되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


I씨는 외출금지와 복장 규제 등의 생활통제로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었다. 연애를 할 때마다 모친이 훼방을 놓고 생활통제를 강화했다. 평소 핸드폰 검사를 하니 들키지 않을 수 없었다. 일기장 검사나 서랍 뒤지기 등은 너무 흔해서 폭력으로 생각하지도 못했다. I씨는 그러한 경험을 통해 ‘욕심을 부리는 능력이 결여된 사람’이 되었다고 느낀다. 부모와 떨어져 살며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이처럼 가정에서 생활통제 폭력을 겪은 피해생존자들은 정서적 괴로움을 호소한다. C씨(21, 여)는 말한다. “내 돈을 쓰는 걸 허락받고 써야 한다는 것. 내 집인데 쫓겨날 수도 있다는 것. 나는 내 몸으로 자위도 못 한다는 것. 엄청난 수치심과 불안감을 겪었어요.” C씨는 비청소년이 되자 통제가 사라져 오히려 혼란스러웠다고 말한다. “누구에게 허락을 받거나 날 감시하는 사람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내 삶에 대한 주도권이 나에게 없는 거죠.”



‘안전한 가정’은 가정을 탈출할 권리로부터 시작한다


“내 삶을 내가 살고 있다는 마음이 안 드니까”


생활통제를 겪다 탈가정한 Y씨(19,퀴어)는 생활통제가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데 큰 걸림돌이라고 말한다. “통제가 들어오는 순간부터 마음이 불안해지는 것 같아요. 무기력해지고요. 내가 내 삶을 컨트롤하고 있어야 뭘 자발적으로 할 마음이 들텐데, 내가 뭘 하려고 해도 어차피 못 하게 하거나 돕는다는 명목으로 간섭할 걸 아니까 뭘 시작하기 전부터 의욕이 꺾여요.”


“다른 의견을 내기가 두려워요”


생활통제를 포함해 가정폭력을 경험한 응답자들은 공통적으로 ‘남의 눈치를 살피 게 됨’, ‘상대와 다른 의견을 주장하기가 어려움’을 호소했다. 또 가정폭력 가해자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 특히 비청소년 남성 앞에서 위축된다는 답변이 자주 있었다. 가정에서 맺은 폭력적 관계가 외부의 관계를 수평적으로 맺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다. 가해자와의 주거 분리 이후 호전되었다는 답변이 간혹 등장했다. 특히 현재 청소년이며 가정폭력의 위험에 여전히 노출되어 있는 응답자 중에서는 우울과 불안을 호소하는 답변이 잦았다.


“가정에서 행복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어디서나 행복해야 해” T(24, 여)


청소년이 가정에서 안전하려면, 가정을 벗어나더라도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가정 밖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없는 사회에서, 청소년들은 가정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청소년의 탈가정을 위해 필요한 것을 묻자 압도적으로 하나의 답이 쏟아졌다. 바로 ‘돈’. 먹고 입고 살려면 돈이 필수적인데, 청소년은 돈을 얻기가 비청소년에 비해 훨씬 어렵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대안으로는 최저임금 인상, 청소년 노동 차별 금지, 안정적인 일자리 제공, 기본소득, 주거지원 등이 꼽혔다. 또한 청소년이 경제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제도도 함께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청소년은 근로(만 18세 미만)와 주거에 관련된 계약을 할 때 친권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친권은 피친권자가 살 곳을 지정할 권리(거소지정권)를 포함 한다. 일부 금융기관은 계좌 개설 및 해지 시에도 친권자의 동의를 필요로 하며, 친권자가 당사자의 동의 없이 출금 및 해지할 수 있다.


“가족이기 전에 타인이다”


Y씨는 탈가정 이후 원가정 구성원이 찾아오는 걸 ‘주거침입’ 혹은 ‘스토킹’으로 신고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타인을 추적하고 집에 허락없이 침입하는 행동은 범죄인데, 원가정 구성원이라고 해서 용인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지적이다. 탈가정청소년에게는 그러한 제도가 더욱 절실하다. 지금은 오히려 반대다.


“원가정 구성원이 가출청소년으로 신고하면 경찰이 청소년을 추적하고 집으로 돌려보내는 역할을 하잖아요. 저는 그게 청소년을 소유물로 보는 거라고 생각해요. 길을 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자발적으로, 그리고 많은 경우 불가피하게 탈가정을 한 거잖아요. 그러니 경찰이 할 역할은 오히려 탈가정청소년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라고 Y씨는 말한다.



화목한 가정이라는 허구와 가족애의 강박을 깨고


가정은 응당 서로 사랑한다는 관념이 오히려 폭력을 은폐하는 사회문화적 배경이 된다는 지적도 있었다. F씨(17, 여)는 학교에 가정폭력 피해를 밝히고 도움을 요구하자 ‘너는 경제적 지원만 받는다면 아빠가 감옥을 가도 상관없겠다는 뜻이냐’ 는 반문을 받았다. 처벌이 잘못에 대한 ‘교정’이 아닌 개인에 대한 ‘복수’라는 잘못된 인식과 가족애에 대한 강박이 만들어낸 2차 가해다.


설문조사 응답자 N씨(20,여)는 “가족은 혈연으로 이뤄진 공동체 그 이상도 이하 도 아니다.”라며 가정이 숭고하고 완전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가정 구성원 사이에서도 갈등 및 폭력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화목한 가정이라는 허구와 가족애의 강박을 깨고, 언제든 누구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신뢰가 형성될 때, 피친권자에게도 탈가정이 ‘벼랑 끝’이 아닌 선택할 수 있는 ‘해법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때, 안전한 가정은 비로소 형체를 뚜렷이 하는 것 아닐까.



- 밀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