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신문 요즘것들

영화 <4등> - 체벌이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2016.07.13 20:32 - 요즘것들 아수나로

"광수가 준호에게 분식을 사 먹이는 것은 그가 하는 체벌 행위와 전혀 관련이 없다.

호의를 보이므로 폭력을 저질러도 괜찮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영화 <4등>은 청소년과 폭력에 관한 영화다. 주인공인 준호는 수영 성적이 4등이라는 이유로 폭력적인 코치를 마주해야 하는 현실에 처했고, 이는 극성스럽게 비춰지는 준호의 엄마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많은 이들이 한국 사회의 문제로 지적하듯이, 메달과 같은 성과 아래 사람이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취급받는 것이 이러한 폭력의 한 원인이다.

   하지만 그것 외에도, 폭력은 사회적으로 강한 사람이 아닌 약한 사람에게만 일삼아진다는 것 또한 기억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힘이 약한 사람은 폭력을 휘두르는 입장이 아닌 당하는 입장에 서기 쉽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성별, 나이, 학벌, 수입과 직함으로 촘촘히 서열화된 한국 사회에서는 누군가에게 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자신보다 아래에 있는 누군가에게 또 폭력을 휘두르는 일이 다반사다. 그렇게 하는 것이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과 당한 사람 모두에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비청소년보다 권력적으로 아래에 있는 청소년이 폭력에 더 노출되기 쉽다는 사실은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진다. 청소년인 준호가 어떤 이유들을 근거로 폭력을 당했는지, 그 속에 숨겨진 권력 관계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폭력을 정당화하는 몇가지 변명



'맞을 짓을 했으니 때린다'라는 말


  먼저, 준호를 때린 광수는 ‘맞을 짓을 했으니 때린다‘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체벌이라는 폭력을 저지른 자신이 아닌 ’맞을 짓을 한‘ 피해자를 비난한다. 체벌을 가하는 행동의 인권 침해 여부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반면 ’맞을 짓을 한‘ 행동은 체벌 가해자의 눈에 큰 문제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피해자보다 더 높은 권력적 위치에 있는 가해자는 피해자의 행동을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고 손가락질할 수 있지만 피해자는 가해자의 행동을 그렇게 하지 못한다. 마치 성폭력 피해자들이 ’그런 옷을 입고 밤에 돌아다녔으니 그런 일을 당했다‘고 듣는 것처럼, 가해자의 행동 그 자체보다 가해자의 행동을 ’유발한‘ 피해자의 행동에 더 초점을 맞추고 흠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준호가 수영 연습을 하는 동안 레인을 벗어나는 행동을 했던 것은, 순위에 연연하지 않고 자유롭게 수영을 하고 싶어 했던 준호의 심리가 반영된 몸짓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코치인 광수의 눈에는 그저 ’정신 못 차리고 제멋대로 한 짓‘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 행동은 곧 ’맞을 짓‘이 되었다.


 

'너를 위해서 때린다'라는 말


  두 번째로, 광수는 체벌을 하고 나서 그것을 달래는 호의를 보이면서 ’너를 위해서 때린다‘는 핑계를 댄다. 많은 사람이 착각하고 있지만 폭력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악마‘가 아니다. 이 영화에서 준호를 때려놓고 분식집에 데려가 분식을 사 먹이는 광수처럼, 많은 ’교육자‘들이 체벌 후 그것을 무마하는 호의를 보인다. 그런 호의를 보인다 해서 체벌을 했다는 사실이 지워지는 것도 아닐뿐더러, ’호의‘를 베푸는 것 또한 권력을 더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호의‘의 기준을 내리는 것이 높은 권력적 위치에 있는 사람 일방적이며 권력적 위치가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떤 체벌 가해자는 발바닥을 때리는 체벌이 ’호의‘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어떤 성폭력 가해자는 슬쩍 어깨를 감싸거나 손을 잡는 것을 ’호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광수가 준호에게 분식을 사 먹이거나 재능을 칭찬하는 것은 그가 하는 체벌 행위와 전혀 관련이 없으며 호의를 보이기 때문에 폭력을 저질러도 괜찮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유독 청소년에게 체벌이 허용되는 이유는 체벌이 그 사람의 정신력을 키우고, 더 발전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믿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체벌을 하지 않는 것을 과잉보호한다고 일컬으며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당근과 채찍‘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당근과 채찍‘의 수법은 분명 짐승을 길들이는 데 쓰였던 것인데도, 청소년이 비청소년에 의해 길들여지는 것을 스스로 성장한 것으로 오해하기 때문에 이런 수법이 비판 없이 통용된다. 이런 사회적 배경 속에서 감독이 내놓은 결말은 제법 통쾌하다.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체벌이 필요하다는 이 시대 수많은 부모와 교사와 꼰대들의 판타지를 깨트리는 직구다.


- 치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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