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신문 요즘것들

빨간 모자 이야기 비틀어 읽기 - <연애와 사랑에 대한 십대들의 이야기> 리뷰

2017.04.29 19:33 - 요즘것들 아수나로


빨간 모자 이야기 비틀어 읽기

<연애와 사랑에 대한 십대들의 이야기> 리뷰






 <빨간 모자> 이야기를 아시는지? 한 소녀가 모친의 심부름으로 도시락 바구니를 들고 숲을 지나 할머니의 병문안을 가는 동화 말이다. 이 이야기는 으레 모친이 소녀에게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 걱정은 짐작하자면 이런 것일 테다. 눈에 번쩍 띄는 빨간 모자를 쓴, 누구나 쉽게 시선을 내리꽂을 수 있는 이 아이가 늑대에게 잡아 먹히지는 않을까, 넘어져 도시락을 쏟고 양말을 더럽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좀 더 현실적으로는 도시락을 할머니에게 온전히 건네지 않고 까먹어 버리거나, 몰래 친구 집으로 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있지 않을까?


 <빨간 모자>를 처음 책에 실은 샤를 페로는 이야기 말미에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잘 자란 매력적인 소녀가 늑대와 같이 길에서 맞부딪힌 수상한 자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늑대의 저녁거리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란 점을 배울 수 있다.” 이 동화가 어떤 목적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을지 짐작하게 하는 매우 지루한 교훈이다.


 조금 다른 상상을 해보았다. 빨간 모자는 가족을 비롯한 타자들과 관계를 맺고 갈등을 빚기 시작한 ‘청소년’이다. 그리고 그가 숲을 건너 운반하는 도시락은 그의 섹슈얼리티다. 그의 모친(보호자)은 도시락을 보존해서 무사히 숲을 지나가면 할머니(또 다른 보호자 혹은 동반자)와 함께 안전하게 도시락을 향유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여기에서 숲은 보호자가 통제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들이 빨간 모자와 만나게 되는 장소이다. 다시 말하면 보호자가 빨간 모자의 행동과 관계 맺기에 일체 관여할 수 없는 자유로운 장소다.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과 그의 섹슈얼리티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는 ‘집’과 ‘숲’ 모든 곳에서 그를 통제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청소년을 감시하기 위한 장치와 더욱 충격적인 교훈을 고안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머리를 쥐어짜고 있다. 페로가 그랬듯이, 욕망에 넘어가면 인생이 송두리째 집어 삼켜질 것이라는 협박도 마다치 않는다. 


 <연애와 사랑에 대한 십대들의 이야기>(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바다출판사, 2016)는 오늘날 빨간 모자들이 도시락을 향유하며 살아가는 이야기의 모음이다. 이야기들은 전문가들이 그려온 밝고 건전한 모습, 혹은 늑대에게 속아 넘어간 추하고 불행한 모습으로 잘라 나누어지지 않는다. 또한, 보호를 목적으로 장치한 통제의 수단들이 어떻게 청소년을 더욱 위험하게 하는지에 대한 분석을 읽을 수 있다.


 빨간 모자 이야기를 앞과 같이 해석한다면, 사실 ‘도시락’에 섹슈얼리티를 비유하는 것은 몹시 부적절하다. 섹슈얼리티는 도시락처럼 향유하면 닳거나 사라지는 유한한 것이 아니고, 넘어진다고 해서 쓸 수 없게 되어버리는 연약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가지 연관 짓고 싶다고 생각한 점은, 나이와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욕망할 수 있고 또 그 욕망이 결코 부도덕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길을 걷다가 가지고 있는 음식을 먹거나 그 음식을 통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더욱이 그 음식이 화수분처럼 무한히 쏟아지는 바구니에 담겨있다면, 남을 위한 몫을 남기기 위한 고민을 조금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늑대가 빨간 모자를 착취하고 그의 삶을 집어 삼킬 것을 우려한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십대이야기>는 이렇게 짚고 있다.


 “성폭력의 본질 자체가 그러하듯 어린이 성범죄도 지극히 권력적이다. 그래서 성범죄, 즉 권력의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해서는 어린이가 권력을 지니거나 권력을 필요로 할 때 바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고안되어야 한다. 그러나 (중략) 어린이의 무력한 상태는 어떠한 변화도 없이 지속되고 있으며 그에 대한 변화는 고려되지 않고 있다.” -101p, 「어린이의 성, 보호인가 박탈 인가?」, 진냥


 그렇다면 왜 청소년에게 권력을 부여하는 명쾌한 방법은 고민되지 않고 있는가? <십대이야기>는 한국의 사회제도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이러한 가족제도 안에서는 보호자가 청소년의 양육과 생계를 책임지면서 청소년에 대한 통제의 권한도 쥐게 된다. 청소년은 보호자에게 먹고사는 문제를 의존하면서 교육제도를 통해 사회적 성공을 이루고 가족을 부양할 준비를 한다. (중략) 이처럼 핵가족, 학교, 그리고 18~20세 정도를 기준으로 한 ‘성인’과 ‘미성년자’의 구별은 자본주의 사회를 유지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중략) 결국 청소년의 성적 행 동이 ‘비윤리적’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그것이 보편적인 인류의 윤리를 해친다는 뜻이 아니다. 특정 시대, 특정 사회의 구조와 관습에 균열을 낸다는 의미다.” -81p, 「‘성性’이 ‘성인물 成人物’ 취급받는 이유」, 공현


 아무리 애써 참고 섹슈얼리티를 ‘순수’, ‘건전’한 상태로 성인 이후로 ‘보존’한다 한들, 기다리는 것은 안전하고 따사로운 공간(관계)이 아닐 수 있다. 노동력과 후세대를 생산할 효율적인 가족 체계를 꾸릴 것을 요구하고, 그것이 바로 오랜 시간을 인내해 온 목적이었노라고 믿게 하는 이데올로기가 할머니의 포근한 잠옷을 입고 침대에 누워 입맛을 다시고 있지는 않은가. 


 혹자는 ‘그래서 보호를 그만두고 청소년들을 내버려 두라는 말이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십대이야기>가 말하는 바는 현실을 직시한 후 보호 방법을 논하라는 것이다.


 <십대이야기>는 청소년의 혹은 지나온 청소년기의 섹슈얼리티에 관련된 사연을 기록했다. 사연들을 ‘연애, 성’, ‘성소수자’, ‘가족’, ‘임신/출산/피임/낙태’, ‘성폭력’의 다섯 가지 꼭지로 나누어 싣고, 그들의 경험을 읽을 인권적 관점을 제시하는 분석 글이나 세밀한 수기를 잇는 형식이다. 피임법과 임신/출산/낙태에 관한 정보, 성폭력 대처 매뉴얼도 부록으로 싣고 있다. 


 “내가 겪었던 네 번의 성폭력 피해를 쉽게 남에게 말하지 못한 까닭도 ‘너는 해서는 안 될 것을 한 나쁜 청소년이다.’라는 낙인이 찍힐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야한 옷 입었네’하는 성희롱을 들었을 때도 그러게 왜 청소년이 야한 옷을 입었냐고 할까봐, 술을 마시다 모텔에 끌려갔을 때도 그러게 왜 청소년이 술을 마셨냐고 할까봐, 밤늦은 길거리에서 추행당했을 때도 그러게 왜 청소년이 밤늦게 돌아다녔냐고 할까봐 두려웠다.” -382p, 「청소년 성폭력 피해자, 나의 이야기」, 강민진


 지금껏 청소년 보호 정책은 미숙하면서도 유혹적이며 연약한 존재로 청소년을 정의하고, 그러한 청소년의 특성을 성폭력과 임신/출산/낙태 등 청소년 성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해 왔다. 그러나 <십대이야기>는 수많은 청소년의 실재하는 삶을 통해 문제 제기를 되받고 있다. 문제는 빨간 모자에게 있는가, 또는 빨간 모자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사회에 있는가? 이 책은 한 페이지 글에 다 담을 수 없는 풍부한 이야기로 말하고 있다. 빨간색 모자가 아니라 가려진 우리의 얼굴을 동등한 눈높이에서 바라볼 것을.


[ 밀루 도움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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