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01 :: '아래로' 가해지는, 가정 안에서의 폭력들

2015. 9. 30. 13:40Yosm Special

Special 01 

:: '아래로' 가해지는, 가정 안에서의 폭력들

윤미 씨와 그밖의 경우들



 윤미(가명) 씨는 가정에서 다종다양한 폭력을 당해봤다. “중학교 2학년 때 아침에, 아빠가 갑자기 ‘이제부터 학원 다녀라. O등 해서는 서울의 대학에 못 간다’라고 말했다. 그 말도 어이가 없었지만, 아빠가 말한 등수가 1년쯤 전 등수였다. 지금 내 등수도 모를 정도로 관심도 없으면서 훈계질 하는게 어이가 없어서 ‘나 O등 아니고 X등이다. 제대로 알고 말해라’하고 대답했더니, 씩씩거리면서 머리를 내리쳤고 계속 때리려 들었다.” 윤미 씨가 얘기해준 사례이다. 


 그밖에도 윤미 씨는 1년에 두세 번씩 크게 맞곤 했다고 회상했다. “예닐곱 살 때는 집에 빗자루, 여덟 살쯤부터는 얇은 죽도 비슷한 거, 그게 부러지니까 열한 살쯤 아빠가 각목을 가져왔다. 열세 살 때 엄마가 골프를 치기 시작했는데......”우발적 폭력은 도구를 가리지 않았다.


 윤미 씨의 오빠는 부모에게 폭력을 당하는 피해자인 동시에 윤미 씨에 대한 가해자였다. 그는 윤미 씨에게 때리거나, 모욕을 가하거나, 남 몰래 성폭력을 가했다. 윤미씨는 그에 대해 이런 해석을 했다. “오빠라는 사람은 학교에서도 같은 반 장애 학생 등 약자들을 괴롭혀서 학교에서 연락이 오곤 했다. 그 사람도 폭력의 피해자였는데 부모나 교사에게 복수하거나 맞서 싸우기는 힘드니까 당한 스트레스를 만만한 대상들에게 풀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윤미 씨는 폭력을 당할 때마다 억울함과 분노를 느꼈지만,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았기에 무력감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만만하니까, 약하니까 


 윤미 씨는 오빠와 마찬가지로, 부모들도 ‘만만하니까’자기를 때렸다고 생각한다. 가정에서 윤미 씨에게 폭력이 일어나는 이유는 다양했다. 때로는 창틀 위에 올라갔다는 이유로, 때로는 늦게 들어왔다는 이유로, 때로는 욕을 했다는 이유로, 때로는 공부 때문에, 때로는 성소수자라고 쓴 SNS 프로필을 지우라며, 폭행이 가해졌다. 


 청소년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대개 비교적 사소한 것을 이유로 하곤 한다. 만 6세의 자식을 머리가 찢어지게 때린 아버지는 ‘밥을 먹는데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제로 학원에 보낸 것에 반발하여 학원을 빠지고 PC방에 갔다는 이유로 한 어머니는 중학생인 자식을 허리띠로 때리고 가위로 손을 찔렀다. 서울특별시아동복지센터가 펴낸 아동학대사례연구집(2012)에 소개된 내용들이다.


“부모에게는 나를 때릴 명분이 얼마든지 있었다. 내가 가장 만만했던 거다. 친권자(부모)는 내가 자기들 입맛대로 크길 바랐고, 날 소유물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내가 힘이 약해서 제압하고 때리기도 쉬웠고. 엄마는 내가 키가 커지고 힘이 엇비슷해지니까 더 이상 때리지 못했다. 아빠는 (여전히 나보다 힘이 세니까) 한결같이 나를 때렸다.”윤미 씨의 말이다. 


 다른 폭력들도 그렇듯, 가정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친권자의 기분에 좌우되곤 한다. 자식이나 청소년, 나이가 어린 사람은 때려서라도 말을 듣게 만들어도 된다는 사회적 통념이 이를 부추긴다. 부모가 자식이 말을 듣게 만들려고 회초리로 때리든, 부모가 기분이 나쁘고 눈에 거슬리는 일이 있다고 해서 손발로 마구 구타를 하든, 그 밑에 있는 구도는 다르지 않다. 힘이 약하고 ‘때려도 되는’ 상대에게 힘이 센 사람의 뜻대로 물리적 힘을 휘두르는 것이다.



해결은 ‘복불복’


 청소년들이 가정에서 일어나는 폭력에서 벗어나는 일은 아직은 ‘복불복’, 즉 운에 맡겨져 있는 면이 있다. 탈출의 시도는 최악의 경우엔 더 심각한 폭력으로 돌아오거나, 목숨을 위협받거나 큰 상처를 입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물론 경찰이나 국가에 도움을 요청하면 가해자가 처벌을 받거나, 보호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꼭 잘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가 펴낸 사례연구집에는 가정폭력 등으로 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했으나, 담당형사는 가정 안의 문제라 내키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이며 가해자가 부모로서 훈계를 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편을 들었다는 사례도 있다.


 한국 사회는 청소년에게 가해지는 폭력,특히 가정 안에서 부모가 자식에게 가하는 폭력에 대해 둔감하다. 이 때문에 경찰이나 판사 등도, 때로는 피해자 본인도, 폭력을 심각한 문제라고 인식하지 않거나 가해자를 옹호하거나 정상참작을 하곤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작년 9월부터 아동학대처벌특례법이 시행되는 등,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청소년이 가정에서 폭력을 당하고 있으면 이를 우선 격리시키고 보호할 수 있는 등 제도 개선이 이루어졌다. 최근 개정된 아동복지법에도 “아동의 보호자는 아동에게 신체적 고통이나 폭언 등의 정신적 고통을 가해서는 안된다.”라고 명시되었다. 가정에서 체벌 등이 금지된 것이다. 하지만 충분히 정착이 되었다고 하긴 어렵다. 아동학대처벌특례법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서 피해자가 죽은 사건이 올해도 일어났다.



“최소한 도망 나올 수 있어야”




 윤미 씨는 부모의 폭력을 벗어나기 위해 열다섯 살 때 집을 나왔다. 주변의 도움을 받고 나이를 속여가며 알바를 해서 살다가 너무 힘들어서 9개월 뒤 집에 돌아갔다. 하지만 변한 것은 없었고, 결국 다시 가출해서 만 18세가 된 지금까지도 부모로부터 떨어져서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집을 나오는 선택을 한 청소년들은 대개 불안한 주거와 빈곤에 시달리게 되고, 윤미 씨의 경우는 그나마 안정적인 생활 터전을 잡은 편이다. 


 윤미 씨는 “최소한 청소년이 폭력을 당하는 상황에서 도망 나올 수 있어야 한다. 친권자(부모)에게 연락하는 것이 금지된 쉼터라든지, 자립해서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생활비 지원이라든지, 임금이나 태도에서 청소년을 무시하지 않고 제대로 대하는 일자리라든지, 그런 안전망들이 생겨야 한다. 그리고 청소년들이 받을 수 있는 지원이 뭐가 있는지 몰라서 도망갈 엄두도 못내고 폭력을 당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홍보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라고 당장의 대안을 주문했다. 그리고 “청소년을 ‘남들보다 미성숙한 존재’, ‘아직 인간이 아닌 존재’로 규정짓고 누구는 ‘맞아야 되는’, ‘맞아도 되는’인간으로 분류하는 것 자체가 문제 아닐까. 집에서는 모든 권리를 친권자에게, 학교에서는 모든 권리를 교사에게 맡겨 놓아야 하는 ‘청소년’이라는 존재부터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공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