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신문 요즘것들

네 눈앞의 내가 청소년일 가능성

2018.10.01 20:49 - 요즘것들 아수나로

네 눈앞의 내가 청소년일 가능성


개봉도 하지 않은 영화 예고편을 보고 ‘와, 대박이다’ 하고 생각했던 것은 내가 만 14세, 중학교 2학년일 때였다. 모든 요소가 내 취향을 관통했던 그 영화를 덕질하기 위해 나는 헐레벌떡 트위터로 팬 계정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계정에서 활동하며 더없이 잘 맞고 유쾌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땐 그 사람들과 평생 함께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서로의 일상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나누던 사이에서 툭 터놓고 말할 수 없던 것은 오직 한 가지, 내가 15살이라는 것이었다.

당시엔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아무도 내게 ‘너 나이 꼭 숨겨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 사명감이 그 영화가 15금[각주:1]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만약 당시의 나에게 마이크를 갖다 대며 “왜 나이를 숨기려 하나요?” 하고 묻는다면, 나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고 답했을 것이다.

이유 모를 사명감으로, 나는 나이를 유추할 수 있는 일말의 단서조차 제공치 않기로 했다. 트윗 하나를 쓸 때도 단어 하나하나를 검열했다. 중학생임을 숨기기 위해서, 청소년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서, 비청소년으로 보이기 위해서, 부디 한 살이라도 더 많아 보이기 위해서. 숙제는 과제로, 급식은 밥으로, 교복은 옷으로 바꿨다. 과목 얘기를 할 때면 역사는 한국사 또는 세계사로, 과학은 화학이나 물리, 생물로 세분화했다. 결과는 대성공으로, 누구도 내가 중학생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나를 비청소년으로 착각하고 있으면, 깊은 안도감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런 강박적 행위의 원동력이 된 판단을 나는 지금 이렇게 정의한다. 청소년으로 사는 내 직관이 내린 판단이었다고. 그래야만 할 것 같았던 건 무의식중에 경험을 토대로 학습된 것이라고. ‘친구 신청은 XX년생부터 받아요’, ‘XX년생 이하는 가입 불가’와 같은 문장들로 뇌리에 박힌, 한국에서 자라면 한국어를 하듯 청소년으로 살며 자연스레 얻은 직관이었다고.

나이를 감추려 했던 건, 15살임이 알려지면 벌어질 일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돌아올 말이, 행동이, 태도가 결코 좋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던 거다. 청소년이라는 게 멋대로 나를 낮춰 볼 근거가 될 것을, “○○님 그러면 중딩이세요??” 같은 말들로 표면적으론 혐오적이지 않은 듯하지만 지금껏 내가 중학생일 가능성은 철저히 배제되었음이 증명될 것을, 이 팬덤 내에서 나는 없는 존재였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을 직관했기 때문이었다.

행복을 위해 시작한 팬 계정에서 나는 아등바등 청소년임을 감추었다. 경시되지 않으려 자신을 지우고, 안도감을 위해 나임을 포기했다. 필사적으로 나를 숨기고, 다른 이의 탈을 뒤집어썼다. 청소년은 죄인이 아닌데도 꼭 죄인처럼 행동했다. 언젠가, 청소년임이 죄인처럼 느껴지지 않는 때가 올까. 언제쯤 당당하게 나이를 말할 수 있을까. 가끔씩, 프로필 사진에 커다랗게 내 나이를 박고 싶을 때가 있다. 네가 없다고 생각한 청소년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 힐데

  1. 15세 이상 관람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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