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5. 13. 22:13ㆍ인터뷰
21년 외쳐 온 체벌 근절, 촛불청소년인권법으로 한 걸음 더
21년째 청소년운동을 하고 있는 인권활동가 배경내(개굴) 씨를 만났다. 배경내 씨는 인권교육센터 들의 상임활동가이고, 작년 9월부터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아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의 활동에서 ‘체벌’은 말하고 또 말하지만 해결되지 않는 한편 “이제 체벌 없어지지 않았어?”라는 질문 역시 끊임없이 받게 되는, 그래서 ‘말하는 로봇’을 발명했으면 하는 주제다.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1992년 대선 때 결국 독재정권과 야합한 김영삼 후보가 당선되는 모습을 보니 절망적이었다. 돌아보니 20년 동안, 짧게는 학교 다니던 12년 동안 정치와 사회에 무관심하도록 강요받고 내 삶을 설명할 언어를 하나도 교육받지 못해 억울했다. 교육을 바꾸고 싶었다.
인권, 페미니즘 관련 책을 접하면서 아버지의 폭력과 우리 집의 가난을 설명할 언어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거구나!’ 그래서 인권교육으로 운동을 하고 싶었다. 인권을 가르쳐 주는 교육이 아니라, 인권을 외치는 교육이 되려면 교사-학생간 권력관계를 뒤흔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내게 인권교육과 학생/청소년 인권은 사실상 같은 말이었다.
체벌 근절 활동 중 기억에 남는 일화는?
2006년 즈음, 경기도에 있는 한 학교에서 네트워크로 제보가 왔다. 소위 ‘입시명문사립학교’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체벌, 강제이발 장면이 담긴 사진을 전시하는 인권침해 사진전을 열었다. 학교 측에서 저지하려고 해서 고성을 주고받으면서 싸웠다. 그때 한 남성 학부모가 와서 이렇게 말하는 거다. “뭐가 문제냐. 우리 아들 때려서라도 공부 시키라고 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어머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 학교에 체벌이 있다는 걸 공식적으로 인정해 주셨네요.”
그때 ‘체벌을 방조했다는 말을 자기에게 불리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고 할 수 있는 사회구나.’ 하고 생각했다. 또, 누가 나를 때릴지 모른다는 공포가 여전히 일상적인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저씨 앞에 서있는 나도 무서웠지만, 학생이라는 신분에서는 저항하기가 더 어렵지 않겠나.
어느 학교에 항의 방문을 간 적이 있다. 새 학기에 두발규정이 강화되어 학생들이 대거 두발규정에 걸리고 체벌을 당한 학교였다. 점심시간에 활동가들이 항의 방문을 가면 학생들이 피켓을 들고 운동장으로 쏟아져 나오기로 했다. 두 가지가 인상적이었다.
학생들이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쏟아져 나오는데 생활지도부 교사 한 명이 현관에 서서 몽둥이를 치켜들고 “이 새끼들 안 들어가?” 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러자 학생들이 혼비백산해서 교실로 들어갔다. 이 학교에서 얼마나 체벌이 만연했는지, 그리고 체벌이라는 것이 사람의 힘을 실제 갖고 있는 것보다 훨씬 축소시키는지를 그 장면에서 알게 되었다. 학생들이 떼로 나오니까 그냥 밀고 나갈 수도 있지 않나. 그런데 한 사람의 몽둥이 든 교사를 지나갈 수 없었다.
그래도 소수의 학생들이 밖으로 나와서 피켓시위를 했다. 그 학생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을 막으려고 점심시간에 생활지도부실에 방문했다. 생활지도부실에 원형테이블이 있고 주위에 의자가 있었다. 그런데 테이블은 비어있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린 채로 여학생 세 명이 반성문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 옆에서 교사 두 명이 태연하게 수다를 떨며 양치질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잊을 수 없다.
2010년 서울에서 곽노현 교육감이 취임하자마자 체벌금지 조치를 했다. 이때 학생인권에 우호적인 교사들 사이에서도 ‘자존심 상한다'는 반응이 퍼졌었다. 그런데 교사가 학생을 때릴 때 다른 교사들이 그 상황에 쉽게 개입해서 체벌을 저지할 수 있나? 모든 남편이 아내를 때려서 가정폭력방지법이 필요한 게 아니다. 체벌도 마찬가지다. 체벌이 문제적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그것을 구조적으로 막기 위해서, 교사들이 폭력 상황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을 갖기 위해서라도 제도적 체벌금지는 꼭 필요하다.
꾸준히 이어진 운동의 결실로 2008년에는 초중등교육법에 학생인권보호 조항이 추가되었다. 2010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서울, 광주, 전북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다. 2015년에는 아동복지법이 개정되어, 교사, 부모, 고용인을 포함한 ‘보호자’에 의한 체벌을 전면 금지하였다. 그러나 현실에서 체벌이 사라지기까지는 아직 먼 길이 남은 상황이다.
촛불청소년인권법이 제정된다면 체벌이 사라질까?
솔직히, 많은 것이 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유아가 당하는 체벌에는 “그 어린애 때릴 데가 어디 있다고!”라는 식으로 민감하게 분노하면서도 청소년이 당하는 체벌에는 “어른에게 도전(반항)을 했겠지.”라며 이중적으로 반응한다. 그러나 청소년의 입장에서 보면 다르다. 어려서부터 가정, 어린이집, 초등학교에서 체벌을 경험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중고등학생 연령대가 되면 맞을 짓을 피하거나, 갈등이 일어나 된통 당하거나, 집이나 학교를 탈출한다.
현행법상으로도 체벌은 아동학대에 해당한다. 그러나 소송한 사례를 보면, 나이가 중고등학생 정도로 비교적 많으면 아동학대로 인정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법원에서 교육적 목적의 체벌이므로 사회상규상 타당하다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반면 어린이 피해자는 직접 소송까지 이르기가 더욱 어렵다. 법이 개정된다고 해도 이러한 이중적인 인식과 관행이 눈에 띄게 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는 있을 것이다. 현행 초중등교육법의 체벌 관련 조항을 ‘직접 때리는 체벌’만 금지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교육부의 해석이 바뀔 것이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인권침해에 대한 간접적 제지 효과가 있을 것이다. 어린이청소년인권법은 가정과 일터에서의 폭력도 규제한다. 학대는 나쁘지만 체벌은 괜찮다는 모순적인 이분법을 깨고 둘을 아울러 폭력으로 규정하는, 법원에서 참고할 법률 조항이 생기는 것이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에서 작년 말에 시행한 실태조사에서 청소년이 겪은 폭력, 폭언 가해자 1순위가 교사, 4순위가 낯선 사람이었다. 청소년이 얼마나 일상적으로 함부로 대해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청소년에게 참정권이 생긴다는 것은, 함부로 대해도 괜찮은 존재로 분류될 가능성이 낮아지는 것이다.
3월 22일, 선거연령 하향을 위해 청소년인권활동가들이 삭발과 함께 국회 앞 농성을 시작했다. 그중 한 명인 청소년 김윤송 씨는 “의견을 냈을 뿐인데 어린 것이 말대꾸한다며 맞은 적이 많다.”라며 “참정권이 없다는 건 투표를 못 하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한다.
이날 삭발식에서 배경내 씨는 사회를 맡았다. 듣는 사람이 없어 삭발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안타까워서였을까, 그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삭발식이 끝난 후 어린이책시민연대 이정화 활동가는 부모에게 알리지 않고 삭발을 하러 온 권리모 씨를 언급하며 “삭발을 결심하기 위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지 알고 있다. 부디 집에 돌아갔을 때 어떤 일도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같은 날, 한 교사는 청소년들을 지지하며 삭발을 하고 사진과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배후가 아니라, ‘든든한 연대자’인 비청소년 청소년인권활동가들의 면면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기를 바란다.
- 배경내 / 정리: 밀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