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신문 요즘것들

당연한 것으로부터의 소외

2018.04.09 21:25 - 요즘것들 아수나로



당연한 것으로부터의 소외

 

 청소년이라면 누구든 한 번쯤은 눈앞에서 안 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대상이 물질이든, 행위이든, 표현이든 간에 관계없이 말이다. 나 또한 청소년이라는 꽉 막힌 투명 지붕 아래에 살며 빼앗기고 경고 받고 위협받은 적이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데, 그중 유난히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다.


 나는 당시 18, 집에서는 고함과 욕설을 들었고 학교에서는 교사들의 인서울 입시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의 정신 상태는 당연하게도 건강하지 않았다. 밤에는 기숙사 침대에 누워 아무도 모르게 훌쩍이고 낮에는 끔찍한 두통에 신음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수업시간에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와서 급히 화장실로 뛰어간 적도 있었고, 나날이 배가 되는 생리통에 도저히 걸을 수가 없어 길바닥에 주저앉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위태한 상태의 나를 두고 사람들은 지금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점이며, 이럴 때일수록 더욱 정신을 붙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어딜 가나 힘내라며 응원을 던졌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힘들겠다며 격려를 받았다. 나는 마치 절벽에 몰린 것 같았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생각했다.


 학교 위클래스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부모가 나에게 욕하고 소리 지른다는 둥의 말을 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부모를 불러 대화를 시키려고 들었다. 실제로 부모에게 얻어맞고 도움을 구하려 상담실을 갔을 때에는 나의 생활기록부를 뒤져 부모의 번호를 알아내 전화를 건 적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가장 좋은 방법은 정신과 병원을 직접 찾아가는 것이었다. 내가 좋아했던 많은 미드에서 청소년들이 스스로 정신과에 찾아가 상담을 받는 장면이 심심찮게 등장했다. 어렸을 때부터 줄곧 소아과나 치과 등의 병원을 혼자 가는 것에 익숙하기도 했기에 나는 아무런 걱정 없이 집 근처 정신과 의원을 찾아갔다. 하지만 내가 진료신청서를 작성하려고 데스크 앞에 서자마자 간호사는 미성년자는 부모의 동행 없이는 진료가 불가능하니 돌아가라고 말했다. 나는 조금 벙 찐 상태로 멀뚱히 서서 못 알아들은 척 했다. 간호사는 그 말을 반복하며 나가라고 했다. 다른 환자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쏠리는 것이 느껴졌고 나는 결국 어정쩡한 걸음으로 되돌아 나갈 수밖에 없었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도움이 필요한 환자가 병원에서 쫓겨났다는 사실을 믿기가 힘들었다. 무엇을 근거로, 무엇을 위해 청소년이 혼자 정신과에 가는 것을 금지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집에 돌아가서 정신과 상담이 청소년에게 정말 금지되는 것인지 검색해 봤다. 결과는 놀랍게도 아니었다! 정신과 상담이라는 의료서비스는 수많은 금지의 늪에 포함되지 않았다. 아마 나를 쫓아낸 간호사와 의사들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왜 쫓겨난 것인가? 답은 없었다. 그저 그들이 보기에 나는 한 인간이기보다는 뇌가 완성되지 않아 자신이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는 미성숙하고 불안정한, 교복을 걸친 짐승이었던 건 아닐까.


 어리다는 것은 인간쓰레기라는 뜻이 아니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나이를 근거로 가로막는 것이야말로 권력자의 가장 위험한 횡포이며, 국가는 그에 더욱 긴장하고 그런 일을 규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들이 당연하게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청소년에게는 투명드래곤같은 짱 쎄고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멈추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 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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