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신문 요즘것들

검정머리는 날라리인가요, 아닌가요?

2017.09.19 19:04 - 요즘것들 아수나로




검정머리는 날라리인가요, 아닌가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폐쇄적인 두 곳 중 하나에 꼽힌다는 ‘학교’에 대자보가 붙었다. 한 장짜리 대자보는 1학년과 2학년 건물에만, 좀 더 긴 4장짜리 대자보는 학년을 가리지 않고 모든 건물에 하나씩 붙었다. 긴 글이었음에도 사람들은 복도에서 글을 읽어 내려갔다. 그 글은 학생 염색에 관한 대자보였고, 내가 쓴 글이었다. 지금까지 쓴 대자보만 4개, 나는 아마 “프로 대자보러”이다.

 대자보를 쓰게 된 상황은 이러하다. 내 친구 A가 탈색을 해서 학교에 왔고, 사람들의 뜨거운 시선을 비롯하여 따가운 말을 여러 번 듣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 학교의 교칙은 원색의 염색을 불허할 뿐이다. 사람 머리에서 완전한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초록색이 나올 수는 없으므로, 이는 효력이 거의 없는 교칙이다. A의 머리는 교칙에 위반되지 않는 선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긴 시간 동안 여러 수모를 당했다. 나 또한 옆에서 그 현장을 몇 번이고 목격했다. 분명 법과 정치 과목에서 사회 고정관념과 같이 관습적으로 내려온 법보다 헌법처럼 문자로 표현된 법이 더 먼저라고 배웠는데, 이건 너무하지 않나 싶었다. 부당함을 알리고 싶어 이틀을 잡아 글을 썼다. 고심하여 고른 제목은 ‘안녕하세요. 검정 머리입니다. 저는 날라리일까요, 아닐까요?’였다. 일찍 학교에 가서 붙인 글은 생각보다 파장이 컸다. 그 와중에 B라는 친구도 염색하고 왔는데, 그는 자신의 동아리 선생님께 검은색으로 염색할 것을 무섭게 권유받았다. 동아리 예산 지원이 인질이었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학생다움이 무엇인지’ 의문이 들었다. 검은색 머리에 무릎 아래 길이의 치마를 입고 머리는 단정하게 묶는 것? 선생님께 순종하고, 교우 관계가 원만하며 성적까지 잘 나오는 것? 학교에 물음표를 던지지 않고 그저 따라오라는 대로 따라가는 것?

 대자보를 하나 더 써야겠다고 생각할 무렵 인문학 동아리 방에서 ‘인권, 교문을 넘다’라는 책을 발견했다. 문장 하나하나가 다 맞는 말이었다. 책의 말마따나 거리의 많은 사람이 염색을 하고 파마를 하고 다녀도 그들이 위험한 사람으로 취급받지도 않고, 도를 넘는 행동이라는 수군거림 또한 듣지 않는다. 왜 학교는 ‘학생의 머리를 규정할 수 있다.’는 권리 아닌 권리를 가지게 된 걸까? 사회에서 학교 말고도 두발 규제를 하는 대표적인 곳은 바로 군대이다. 머리를 짧게 깎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입영을 새삼스레 실감하며 마음을 굳게 먹게 된다. 나는 학교도 같은 원리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머리를 규제당한 학생은 온종일 학교에 있으면서 무의식적으로 ‘다 똑같네. 이게 맞는 건가 봐.’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제한한다. 그렇게 여기고 있던 와중에 다른 머리카락 색이 시야에 들어오면? 학생의 적은 학생이 되어버린다. 이번 일을 진행하며 참 많은 얘기가 오갔다. 그깟 하찮은 문제를 가지고 학교 분위기를 뒤숭숭하게 만들었어야 했냐는 말까지 들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서, 위 책의 한 구절처럼 이렇게 하찮은 염색의 자유 하나 누릴 수 없다는 건 “그보다 더 중요한 다른 자유도 누릴 수 없다는” 말이 아닐까?

 우리 중 그 누구도 타인의 자유를 침해할 권리는 없다. 우리는 모두 ‘3년 후에 해방’이 아니라 그 3년 동안에도 자유를 만끽할 수 있어야 한다. 일은 학교 내에서 마무리됐다. A는 여전히 염색한 머리이다. 요즘 SNS로 많은 학생인권침해 사례가 공론화된 것을 알고 있다. 부당함을 용기 내어 세상에 알린 그들에게 정말 연대와 지지를 보내며 글을 마무리한다. 우리의 작은 행동이 모여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의 자유를 온전하게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박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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