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할 거면 차라리 돈을 줘 - 청소년에게 만연한 봉사페이, 문상페이

2017. 6. 30. 18:31기타

동원할 거면 차라리 돈을 줘
- 청소년에게 만연한 봉사페이, 문상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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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610 6.10 기념행사에서 학생인권법 제정, 청소년 참정권 보장 촉구 피켓팅



  2017년 6월 10일 오전 10시, 6.10 민주화운동 공식 기념식이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렸다. 나는 ‘인권친화적학교+너머운동본부’에 소속된 사람들과 함께 기념식에 참석했다. “87년 노동자들의 외침 두발자유, 2017년 학생들의 외침 두발자유”, “87년의 외침 ‘대통령부터 반장까지 직선제로!’, 2017년의 외침 ‘청와대부터 교실까지 민주주의를!’”, “학생인권법 임기 초반 제정, 문 대통령님 잊지 않으셨죠?”와 같은 내용의 피켓을 들고 있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행사 시작 직전까지 입구에서 피케팅을 진행했고, 행사 마무리 단계 때도 문재인 대통령이 퇴장하는 길목에서 피켓을 들고 있었다. 피케팅은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소통 행보’라는 식으로 편집되어 전달된 면은 있었지만 어쨌건 학생인권법 등의 이슈를 알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행사가 끝나고 퇴장하는 사람들이 잘 볼 수 있게 계속 피케팅을 진행하고 있던 중, 이상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청소년으로 보이는 참가자들은 대부분이 바로 퇴장하지 않고 운영 본부가 있는 천막 앞에 길게 줄을 서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방송이 들려 왔다. “봉사하러 온 학생들은 확인 서류를 받아가기 바랍니다.”, “학생들은 이후 이어지는 공연 끝까지 착석해 있어야 봉사시간이 인정됩니다.” 등.

 어쩐지 행사 시작할 때부터 예상외로 청소년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싶었다. 입구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촛불 집회 이후 청소년들 사이에서 민주주의와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했다. 뭐, 그런 영향도 있었을 테지만, 그것이 그 많은 사람들이 토요일 아침부터 기념식을 보러 온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던 것이다. 나중에 듣자 하니, 오전에 한 기념식과 오후에 교육청 주관으로 행사를 묶어서 학교 현장에서 안내를 했다고 한다.

 


청소년도 돈이 필요하다

 

 나는 행사를 주최하는데 자리를 채울 사람이나 일손이 필요하다면 대가를 지급하고 동원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자발적으로 모인 거라고 속이지만 않는다면, 동원 자체가 해선 안 될 일까지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동원을 할 거라면 알바비, 임금이라도 주어야 한다. 청소년, 특히 초·중·고등학생에게는 돈은 주지 않고는 봉사시간 확인증이나 발급해 주고 끝인 경우가 많다. 이 봉사시간 인증제도 자체가 공교육기관인 학교가 운영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건 국가가 봉사시간을 평가에 반영하게 만들어 놓고는 행사에 동원되면 그 봉사시간 인증을 해줌으로써 무급으로 사람을 쓰는 착취라고밖에는 볼 수 없다. 그러한 착취 위에서 민주화운동 30주년 기념식을 했다고 생각하니 참 씁쓸한 현실이었다.

 봉사 아닌 봉사를 하게 동원하고 봉사시간 확인증으로 때우는 일이 비일비재하긴 한데, 사실 우리 사회는 청소년이 돈을 버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는 것 아닐까 싶을 때가 많다. 얼마 전 접한 어떤 토론 행사에서는 비청소년 발표자에게는 현금으로 발제비를 지급했지만, 청소년 발표자에게는 문화상품권을 지급한다고 공지했다. 정부기관의 회계 처리 규정에서 ‘미성년자’나 학생에게는 돈을 지급하는 데 제한을 두었다는 경우도 접해 보았다. 청소년은 돈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그렇게 청소년은 돈을 벌면 낭비하거나 잘못된 곳에 쓸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청년들에게 열정을 가지고 일하라고 하며 대가를 후려치는 것을 ‘열정페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청소년들에게는 이게 일이 아닌 봉사라고 하면서 돈을 안 주고 봉사시간 확인증을 주는 ‘봉사페이’, 청소년이니까 공부하고 책이나 사라고 주는 ‘문상페이’가 존재한다. (물론 나도 그랬지만 다수의 청소년은 문화상품권을 벌면 게임이나 영화 등에 쓰는 경우가 더 많긴 할 테지만.) 그리고 그런 관행은 우리 사회가 노동을 어떻게 대우하는지, 그리고 청소년을 어떻게 대우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청소년도 돈을 받을 줄도 알고 돈이 필요한 곳도 많다. 봉사시간 제도를 통해서 인성교육을 한다고? 자기 시간을 내서 자리를 채우고 일을 하면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게 당연하며, 일하고 돈을 받는 건 민망한 일도 부끄러운 일도 잘못된 일도 아니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훨씬 더 중요한 교육 아닐지.


- 공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