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의 체벌거부선언

2018. 12. 7. 16:36특별 연재/체벌거부선언



‘적당한 체벌’이란 없습니다. 모든 체벌을 거부합니다.


9살 때였습니다. 겨우 학교에 적응하고 두 번째 학년을 맞이한 저는, 학교가 너무 무서웠습니다. 선생님은 반 친구들이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소리를 질렀고, ‘문제행동’을 하는 학생은 자가 부러질 때까지 때렸습니다. 교실은 언제든 폭력상황이 일어날 수 있는 긴장 상태의 공간이었습니다.


선행학습을 하지 않았던 저는 구구단에 대해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다음날까지 바로 구구단을 다 외워오라 했고, 하교 후 눈물이 자꾸 나는 스트레스 상황 속에서도 구구단을 계속 외웠습니다. 다음 날 혼나는 것이 너무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 구구단을 겨우 겨우 외워 갔지만, 더듬더듬 외운다는 이유로 팔뚝에 빨간 자국이 남도록 맞았습니다. 매일 맞는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짝꿍이랑 교실의 화분에 대해 이야기하다 ‘너는 요주의 인물이다! 이 문제아야!’라는 호통을 듣기도 했고, 가방을 의자 밑에 넣어두지 낳으면 멸시의 눈초리를 받으며 곧바로 가방을 의자 밑으로 밀어넣어야 했습니다.


매일 가는 학교라는 공간에 ‘나’는 없었습니다. 존중받지 못하는 ‘나’라는 존재는 자꾸만 지워졌습니다. 나에게 어려운 것일지라도 다른 친구들과 똑같이 해내야했고, ‘정상적으로’ 해내지 못하면 자로 맞거나 말로 맞거나 눈빛으로 맞거나 분위기로 맞았습니다. 꼭 물리적인 행위가 아니더라도, 학생이란 ‘언제든 무엇으로든 맞을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맞지 않기 위해 몸과 마음을 웅크려갔고, 위축이란 감정은 무시무시하게 커져만 갔습니다.


신체검사날 선생님이 상의를 다 벗으라고 했습니다. 잘은 몰랐지만 우리는 민망해 서로 키득키득 수다를 했고, 왜 있었는지 모르지만 같이 있었던 옆 반 천사선생님은 난처한 듯 어색한 미소를 띠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떠올릴때면, ‘천사 선생님도 어쩔 수 없었을 거야.’라는 생각 뒤에는 ‘천사 선생님은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짐했습니다. ‘나는 교실의 그 어떤 폭력 상황도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아야지.’하고 말입니다.


12년이 흐르고 학교에서의 체벌이 금지된 지금은, ‘오히려 교사들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라며 ‘애들 혼낼 수가 없어서 교권이 무시된다.’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때리는 행위가 많이 줄었을 뿐이지, 말로 눈빛으로 분위기로 교실 속 존재들을 너무도 쉽게 '혼쭐'내고 ‘통제’하는 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교생실습을 가서 아플만큼 명확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수업 시간 복도에서 큰 소리가 들리자 담임교사가 교실문을 벌컥 열고 ‘야!’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너무 놀라 몸이 굳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저를 보며, 반 학생들은 키득키득 웃으며 ‘순진한 교생’을 걱정했습니다.


누가 들어도 놀랄 것 같은 무섭고 큰 소리에도 학생들은 단 한 명도 놀라지 않는 상황이 아팠습니다. 폭력에 무뎌졌다는 것, 폭력이 폭력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이 느껴져서 몸이 떨리고 눈물이 나올 것 같았습니다.


샌드위치를 만드는 수업 중, 한 어린이가 실수로 물을 쏟아서 짝꿍의 바지가 젖자 담임교사는 '야 000! 니 옷 벗어서 쟤 줘!'라고 소리쳤습니다.


실수였습니다. 미안한 표정이 가득하게 사과도 했고, 바지가 젖은 학생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이 가득한 모습을 보며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일부러 한 거 아니고 사과도 했으니까 괜찮아요. 00도 괜찮다고 했구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당황한 학생 옆에 가서 조용히 괜찮다 말하는데, 9살 유림이가 봤던 난처하게 웃던 천사선생님이 생각났습니다. 나도 다르지 않구나, 옆에서 아무 말 못하고 난처한 표정을 짓던 그 선생님과 똑같구나, 라는 생각이 들자 죄책감이 들고 부끄러워 교실을 뛰쳐나가고 싶었습니다. ‘나는 그러지 않아야지’하고 다짐 했던 마음들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가슴이 꽉 막히는 기분이었습니다.


이 글을 적는 지금부터, 다시 다짐하고, 이번에는 꼭 무너뜨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해도 되는, 적당한 체벌이란 없습니다. 그 어떤 이유로도 ‘통제할 권리’가 ‘나로서 자유로울 권리’보다 위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함께 있는 공간에서 발생하는 체벌과 폭력을 방관하는 것도 거부합니다. 제가 존재하는 모든 상황에서 ‘NO체벌’의 행동을 할 것입니다.


이 선언은 9살의 저에게 건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모든 형태의 그리고 모든 이유의 체벌을 거부할 것을 선언합니다.


- 유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