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의 체벌거부선언

2018. 12. 7. 16:02특별 연재/체벌거부선언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체벌은 초등학생 때 구구단을 외우지 못해서 손바닥을 맞은 것이었다. 아빠는 나를 때리기 전에 회초리를 들고 말했다. ‘오늘까지 외우기로 약속한 건데, 지키지 못했으니까 맞아야겠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맞게 될 것을 알고있었다. 아빠는 때리기 전에 ‘(약속을) 지키지 못했으니까, 너가 잘못했으니까, 맞는건 당연한거야’ 같은 말을 자주 했다. 그래서 나는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은 맞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학교에서는 수업시간에 떠들었다가 뒤에 나가서 엎드려뻗쳐 자세를 하고 엉덩이를 회초리를 맞았다. 학원에서는 숙제를 해오지 않아서 복도에 나가 손을 들고 서있어야했고, 집에서는 ‘체벌을 당하지않았다’는 거짓말을 한 것을 들켜서 종아리나 손바닥을 회초리로 맞았다. 나의 인생에 있어 ‘체벌’은 어딜가나 당연한 것이었다. 내가 마주하는 어른들 중 대부분이 나를 때렸고, 그게 당연한 것처럼 굴었다. 그래서 나는 체벌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없었다.

처음으로 ‘잘못한 것에 따른 체벌’을 무슨 기준으로, 누가 정하는건지 궁금해졌을 때가 있었다. 그 날도 아빠에게 체벌이라는 명분으로 얼굴을 주먹으로 두들겨 맞았다. 아빠는 때리는 이유를 ‘내가 도서관을 안가고 집에서 놀고 있어서’ 라고 했다. 근데 나는 도서관을 가서도 책을 읽던 폰을 만지작대던 어찌됐건 노는건 마찬가지인데, 거기에서 놀면 맞지않아도 되고, 집에서 놀면 맞아야한다? 문득 기준이 너무 허술하지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딜가나 할일없이 놀 예정이었던 내가 결국 맞아야했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다 내린 결론은 아주 간단했다. ‘집에는 아빠가 있고, 도서관에는 아빠가 없기 때문’이었다. 조금 다르게 말하자면, 어떤 곳에 나를 언제든 때릴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없고의 차이였다.

돌이켜보면 나는 학교이던, 학원이던, 집이던, 비청소년인 누군가에게 ‘언제든 때릴 수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같은 실수를 한 사람이라도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거나 체격이 큰 사람은 맞지않았다. 결국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가 아니라 ‘때려도 될 사람인지’가 중요한 문제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때려도 될 사람’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공통점은 늘 자신보다 어리고, 작고, (사회적 지위 등이) 낮아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런 기준에서 나는 철저하게 부합하는 사람이었다.

동네북마냥 어딜가나 체벌에 시달리던 내가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원했던 ‘바른 사람’으로 자랐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단순히 나를 언제든 때릴 수 있는 사람의 존재 유무가 체벌의 마땅한 이유라면, 나는 나를 때리는 사람들을 ‘피해’다니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도둑질서부터 벨튀(남의 집 벨을 누르고 도망치기), 물건을 높은 곳에서 던지기 등 각종 범죄를 저지르곤 했다. 이따금씩 걸려 체벌을 당하고 했지만 그냥 ‘재수가 없어서’ 걸린 것 쯤으로만 여기기도 했다. 결국 나에게는 ‘교정의 목적이었던 체벌’들은 전혀 효과가 없었고, 심지어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기분만 상한 채로 넘어갔던 셈이었다. 나날이 체벌을 더 잘 피해갈 수 있을 교묘한 수법이 나날이 발전될 뿐이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촛불집회에 참여하러 나갔다가 집에 돌아와 ‘공부는 안하고 놀러만 다닌다’며 또 맞은 날, 나는 기어코 폭발하게 되었다. 부모의 눈 앞에서 짐을 싸며 ‘더이상 이렇게는 살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나를 언제까지나 맞아도 되는 사람, 폭력으로 다스릴 수 있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사회에서 더 버틸 수 없고, 더 버티지도 않겠다는 나의 결단이었다. 아마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스스로를 ‘비청소년에 가까운 사람이고, 그러므로 나는 맞을 사람이 아니다’, 라는 ‘맞아도 되는 사람’에 대한 인식이 낮게 깔려있었을 것이다. 초등학생 때는 그렇게 말하지 못했던 것, 이제야 그 당연한 분노를 당당히 표출할 수 있게 된 사실이 조금 씁쓸하지만 나는 그 날 나(약자)에게 한없이 폭력적이기만 한 사회에 거부선언을 했고,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체벌’은 그저 약자를 향한 폭력의 허울좋은 다른 말이고 그러한 폭력이 그 사람을 더 ‘나아지게’ 만들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체벌을 거부한다. 더 이상 누군가의 폭력 앞에 머무르지 않을 것이며 또 내가 누군가를 폭력의 상황으로 밀어넣지도 않을 것이다.


- 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