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타의 체벌거부선언문

2018. 12. 7. 15:53특별 연재/체벌거부선언



초등학교 저학년, 나는 아직도 당시 일을 생생히 기억한다. 난방이 틀어지지 않아 시리도록 추웠던 강당, 바닥에 옹기종기 앉은 같은 반 친구들, 그 앞에 선 키 작은 남자아이, 인상 쓴 표정으로 남자아이를 마주 보고 선 교사, 빈 공간을 가득 채운 정적까지. 고작 해봐야 30초 남짓 되는 시간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교사가, 장난을 치며 떠들썩하게 웃고 있던 애들 중 한 명을 불러 ‘웃었다’는 이유로 뺨을 때린 것이.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어 체벌이 금지되기 전, 내가 다녔던 초중등학교 교사들은 입을 모아 나를 ‘착한 학생’이라고 말했다. 성적 좋고, 얌전하고, 조용하고, 말 잘 듣고. 교사가 말하는 ‘착한 학생’이라는 말엔 대개 이런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착한 학생이면 무엇하랴. 그 ‘착한 학생’에게도 체벌은 여전했는데. 언제부턴가, 초중등 시절 기억을 되새기면 항상 체벌만이 떠올랐다. 지각을 했다는 이유로 맞고 숙제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 시간 동안 독수리자세를 했던 경험, 시험 성적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매를 맞은 후 깜지, 반성문을 썼던 일. 수업시간에 떠들었다며 복도에 무릎을 꿇은 채 손을 들었던 것,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는 이유로 머리를 맞은 적도 있으며 그 외에도 다양한 이유로 오리걸음, 엎드려뻗쳐 자세를 하거나 단소, 당구채, 드럼 스틱 등 갖가지 도구로 맞았던. 하도 많이 맞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자연스레, 어떠한 행동 하나를 할 때마다 매번 교사를 떠올렸다. 이거 하면 맞을 것 같은데. 이건 혼나지 않을까? 안 되겠지. 벌 받겠다. 무서워. 잘못되면 어떡해? 학교생활은 언제나 불안과 걱정, 안도의 줄타기였다. 교사들이 말하는 ‘착한 학생’은 사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어느 날, 무슨 이유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교사가 내 손바닥을 회초리로 30대 넘게 때린 적이 있다. 그날 저녁, 엄마는 내게 잔뜩 멍든 손바닥을 보며 손이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맞아서.” “누구한테? 선생님?” “응.” “아프겠네.” “왜인지 안 물어봐?” “맞을 짓 했겠지.” 나는 조용히 내 방으로 들어와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맞을 짓’은 대체 뭐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교사가 나를 때리는 이유는 너무도 다양했다. 교사 별로 ‘맞을 짓’의 기준도 달랐다. 어떤 교사가 나를 때렸던 이유가, 다른 교사에게는 때릴 이유가 아니기도 했던 것이다. ‘맞을 짓’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나는 ‘맞을 짓’을 하면 맞아도 되는 존재로서 살아왔다. 때때로 어떤 사람들은 체벌의 교육적 효과를 이야기하며 체벌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그들의 말처럼 정말로 체벌은 교육적 효과가 있을까? 나는 자라면서 점점 체벌에 익숙해졌다. ‘또 맞는구나’, ‘벌 주나 보다.’, ‘그까짓 매, 좀 맞고 말지.’, ‘벌 좀 받으면 돼.’. 체벌에 무감각해진 나는 내 멋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교사나 교사와 비슷한 사람을 보면 흠칫 놀라 겁먹기 다반사였다. 체벌이 나를 스쳐 지나가는 잠깐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체벌 및 체벌과 관련된 기억, 교사는 여전히 무섭고 두려웠다.

학교 외 공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저 멀리 교사나 그 유사한 사람이 눈에 띄면 마주칠까 무서워 일부러 길을 돌아가기도 했다. 나를 안 때릴 걸 알지만, 내 몸과 무의식은 이미 체벌로부터 많은 것을 학습한 상태였다. 비청소년이 된 지금도 이 점은 여전하다. 웃었다는 이유로 뺨을 때렸던 교사의 이름, 얼굴, 목소리, 폭력을 행사하던 손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 교사의 한 부분, 한 부분이 전부 생생하게 기억난다. 나에게 ‘교사’라는 존재는 이미 ‘공포’로 정의되어 있다. 내 행동 하나하나가 교사의 마음에 들지 안 들지 생각하며 조마조마 지내야 하고, 체벌을 두려워하며 ‘착한 아이’가 되는 것. 교사를 보고 몸을 떠는 것. 도대체 어디를 보아 교육적 효과란 말인가. 오히려 공포와 고통을 통해 대상을 억누르고 길들이는 쪽에 가깝지 않은가. 나는 A-초등학교 저학년 때 웃었다는 이유로 교사에게 뺨을 맞았던 남자아이-가 뺨을 맞았던 당시 강당에 흐르던 침묵이란 이름의 공포를 똑똑히 기억한다. 이후 누구도 해당 교사의 수업시간에 웃지 않았다. 모두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수업이 끝난 후에야 안도한 듯 숨을 내쉬었다. 잘 웃다가도 그 교사의 수업시간이 다가오면 절로 울상이 지어졌다. 나는 내가 왜 그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또한, 교사가 우리를 자신과 동등한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교사가 우리를 인간 이하의 존재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까지. 그해 나는 어서 빨리 방학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소망하며, 반년 내내 우울한 한 학기를 보냈다. 결국,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체벌은 절대 교육이 될 수 없고 그저 폭력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폭력을 ‘벌’이라는 단어로 포장해봤자 폭력은 폭력일 뿐이다. 나는 체벌로부터,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끔찍했던 과거, 현재의 나에게도 영향을 끼치는 과거로부터 자유롭길 원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나와 같은 경험을 하지 않길 바란다. “에이, 요즘 누가 체벌을 해?” 그러게나 말이다. 하지만 체벌은 아직까지도,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다. 학교든 학교 바깥에서든. 나는 체벌을 거부한다.


- 베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