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대학입시거부선언에 함께한다

2018. 11. 13. 19:36특별 연재/2018 나의 대학입시거부

2018 대학입시거부선언에 함께한다




 수능 시험을 약 한 달 남기고 고3 교실은 긴장감이 흐른다. 나는 그 안에 있는 1명이지만, 대학 입시를 치르지 않을 생각이기에 좀 붕 떠 있는 듯한 기분이다. 일반고 3학년 교실에서 대학에 가지 않는 학생이란 때로는 투명인간 같고 때로는 불편함을 유발하는 이방인 같다. 본래 나도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대학에 갈 생각이었다. 하고 싶은 것도 있었고 가고 싶은 학교도 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다닐수록 바라는 만큼 성적이 좋게 나오진 않았고, 내가 가고 싶은 대학은 점점 멀어져 가는 것만 같았다. 자책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또 다른 의문이 싹텄다. 어째서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으면, 뭘 하든 성적이 좋아야 하고 대학을 나와야 하는 걸까? 생각할수록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 화도 났고, 대학에 갈 마음은 점점 사라졌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중에 성적 문제로 부모님과 마찰이 있었고 그때 나는 화가 나서 대학을 안 가겠다고 덜컥 말해버렸다. 그때는 홧김에 내뱉은 말이었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이 나의 본심이었다. 나의 대학을 안 가겠다는 선택은 부모님에게 전혀 존중받지도 환영받지도 못했다. 부모님은 내가 과거에 희망하는 진로로 이야기했던 적이 있던 청소 노동자와 우편 집배원에 대해 비하하는 말까지 하면서 나의 선택을 폄하했다. 학교에서도 나의 선택은 존중받거나 이해받지 못하긴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대학에 안 간다고 정하고 나니 마음이 후련해지기는 했다. 하지만 그러고 나니 앞으로 어떻게 살지가 막막했다. 내 주변에는 이런 고민을 함께 나눌 사람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나는 과거에 대학입시를 거부한다고 선언하고 다른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올해에도 대학입시거부선언 등을 준비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내가 가진 고민과 불안에 대해 공감하고 같이 이야기 나눌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고 《우리는 대학을 거부한다》라는 책도 읽어보면서, 대학입시거부선언을 하자고 마음먹게 되었다. 



불순한 거부선언은 없다


대학입시거부를 결심하면서 나는 '내가 과연 거부선언을 해도 될까?' 하고 고민했다. 성적이 안 나오고 좋은 대학을 못 갈 것 같은 상황에서 '있어 보이려고' 대학을 거부한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동기가 불순하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대학입시거부선언을 하는 것이 결코 불순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성적으로 내가 받을 수 있는 교육이 정해지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정해지고, 내 삶의 질이 정해지는 게 얼마나 불공평하고 화나는 일인가. 우리나라가 정말 좋은 나라라면, 성적이 낮아도 대학을 가지 않아도 안정적이고 행복한 삶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은가.


 우리 사회는 대부분의 초중고 학생들이 대학을 간다는 전제하에 입시 위주의 교육을 하고 있다. 사람들도 대학을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고 대학을 가지 않는 사람들을 이상한 사람, 어딘가 부족한 사람, 불행한 사람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이런 사회적 시선과 억압이 청소년들로 하여금 대학이라는 길밖에 보지 못하게 한다. 생각해보면 사람들의 삶은 저마다 다 다르고 앞으로 살 인생도 다 다를 텐데, 대학을 가는 것이 당연하고 더 나은 길이라고 하며 다양한 길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대학과 입시를 거부한다는 것은 대학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학교교육과 모든 청소년이 대학을 가야 한다는 한국 사회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위한 선언이다. 그리고 대학을 가지 않는 청소년이 존재하니 우리를 사회에서 배제시키지 말라는 목소리이기도 하다. 대학입시거부는 특별한 사람이 내는 거창한 목소리가 아니다. 대학이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지금 교육 제도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낼 수 있는 목소리라고 생각한다.


 대학에 가지 않을 사람, 대학 진학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전하고 싶다. “나는 대학을 가지 않는 것이 틀린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짜로 틀린 것은 무조건 대학을 가게 만드는 이 사회이다. 가끔은 나도 대학을 가지 않는 내가 뭔가 이상한 사람 같고 이 길을 가는 것이 나 혼자뿐인 것 같을 떄가 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 비슷한 길을 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면 더 외롭지 않고 서로에게 힘이 되고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학력·학벌 차별을 없애기를 바라고,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분들은 대학입시거부선언에 함께하면 좋겠다.


- 이알, 고등학교 3학년



투명가방끈은 수능시험이 치뤄지는 11월15일 목요일,

'2018대학입시거부선언' 공동선언문을 발표하는 <멈춘자들의행진>을 개최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투명가방끈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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