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청소년 다시 돌아보기

2018. 9. 28. 20:36리뷰 ver.청소년

역사 속의 청소년 다시 돌아보기

<우리는 현재다 - 청소년이 만들어온 한국 현대사> 리뷰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에서는 역사 과목을 1년만에 몰아서 배웠다. 진도 나가기 바빴던 역사 시간에, 유관순이 3.1운동에 참가할 당시 청소년이었다거나 4.19혁명에 초등학생도 참가했다는 설명이 눈에 들어왔다. 고등학생부터 초등학생까지 시위에 참가하고 주도하기까지 했다는 건 정말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많은 학생이 시위에 참가한다는 것은 나에겐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특별한 청소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독립운동에 참여한 과거의 청소년들은 지금의 청소년과 달리 정치적 능력을 갖춘, 특별한 청소년인 것처럼 묘사되고 기억되고 있다. 수업시간에 역사 교사는 예전에는 너희 나이 때의 학생들도 독립운동에 많이 참여했다며 질책하듯 이야기했다. 이런 말을 들으며 막연히 교과서에 나오는 청소년은 나와 다르게 뭔가 특별하고 결의에 가득 찬 사람들이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한편 탈핵 운동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에, 지난 촛불정국만 보아도 수많은 청소년이 광장으로 나와 함께 싸우겠다고 나섰다. 어른들은 거기에 대고 ‘우리들이 지켜줄게’, ‘(청소년들이 사회 문제에 걱정 않고 공부나 열심히 할 수 있도록) 어른들이 잘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해결할 테니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청소년의 정치 참여는 동등한 시민으로서의 참여로 여겨지지 않고, 시국의 심각성을 알리는 데 활용되었다. 사람들은 이 ‘기특한 청소년’들을 보라고,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하면 청소년들도 공부를 제쳐두고 나왔겠냐며 이것이 유례없고 특별한 일이라는 듯 유난을 떨었다.

이는 역사 속 청소년의 정치 참여를 다루는 방식과도 만난다. 역사를 왜곡할 순 없으니 기술하기는 하되, 이들을 ‘특별한’ 청소년들로 호명하여 현재 청소년과는 다른 특수한 존재인 것처럼 묘사한다. 마치 현재 청소년들의 정치 참여를 폄하하고 가로막으려는 듯이 말이다.

그래서 내게는 이 책이 갖는 의미가 컸다. <우리는 현재다>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인 사건들에서 지워진 청소년의 참여나, 과거 청소년들의 운동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주장들을 다시 볼 수 있게 해 준다. 저자들은 책을 통해 청소년이 특별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고, 특별한 청소년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단지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청소년도 이 사회를, 민주주의를 함께 만들어온 시민이라는 걸 알게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왜곡되어 알려지는 청소년의 역사

역사 속 청소년들의 정치 참여를 다룰 때, 청소년들의 항쟁의 어떤 부분은 임의로 삭제되어 왔다. 예컨대 교과서는 과거의 학생들이 일제나 정부뿐만 아니라 학교, 즉 어른들을 대상으로 싸웠다는 걸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있다. 지금의 청소년들이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면 들고 일어날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학생들의 주장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운동 중에는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있다. 흔히 알려져 있듯이 광주 학생들은 이날 차별적인 식민지 교육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 외에도 이들은 교우회 자치권과 직원회에 참석할 권리를 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났던 1920년대에는 차별적이고 형편없는 교육환경에 항의하는 동맹휴학이 전국에서 연이어 벌어졌다. 전국의 조선인 학생들은 교사들의 불합리한 행동에 항의하고 조선인 중심의 교육을 펼치라고 요구했고, 세부적으로는 ‘구두는 검은 색이면 어떤 형태의 것이라도 신게 해달라’는 등의, 지금의 학생인권운동에서 요구하는 복장 자유와 관련된 주장도 나왔다. 광주학생항일운동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나왔던 운동이다.

현재 광주학생항일운동을 기념하는 날의 공식 명칭은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이지만, 1950년대에는 ‘학생의 날’이라고 이름 붙였고, 이후 이날은 학생들이 자신의 권리와 사회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날이 되어주곤 했다. 유신독재 시절에는 학생들의 시위를 막기 위해 폐지되었다가 1980년대에 다시 만들어진 학생의 날은 2006년에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명칭이 바뀌었다. 하지만 11월 3일을 ‘학생들에 의한 독립운동이 일어났던 날’이라고만 이름 짓는 것은 당시 학생들이 요구했던 것의 절반만 기억하는 일이다. 광주 학생들의 독립운동을 기념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들이 학생을 억압하는 학교와 교사에 맞서 싸웠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광주학생항일운동 이후 100년이 지난 지금도 학교와 어른들이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학생들의 투쟁을 탄압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과거 학생 운동이 활발했을 당시에 학교에 항의하는 방식 중 하나였던 ‘백지 동맹’과 ‘동맹 휴학’을 처벌하는 교칙이 아직도 많은 학교에 남아 있고, 대자보를 붙였다는 이유만으로 학생을 징계하기도 한다. 학생의 정치적 행동에 대한 규제는 언제쯤 사라질 수 있을까?

청소년도 시민이다

이 글에서는 광주학생항일운동에 대해서만 소개했지만, 4.19혁명, 5.18민주항쟁 등 잘 알려진 운동의 현장에도 청소년은 한 사람의 시민으로, 때론 운동을 앞장서 이끄는 존재로서 함께했다. 역사 속 청소년과 현재 청소년은 꾸준히 스스로가 가진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고 목소리를 내 왔다. 이제는 청소년이 정치에 무관심하고 미성숙하다는 편견을 버리고,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시민임을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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