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삶을 정말로 바꾸려면? : 청소년혐오를 넘어

2018. 8. 2. 18:47칼럼-청소년의 눈으로

청소년의 삶을 정말로 바꿀 수 있으려면? : 청소년혐오를 넘어


출처 : KTV NEWS


 지난 6월에서 7월, 나는 학교생활기록부(이하 학생부) 신뢰도 재고 방안 마련을 위한 정책 숙려제에 청소년단체 대표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학생부에 기재되는 항목을 조정하기 위한 숙려제였다.  정책 숙려제에 참여한 시민정책참여단은 교육부의 주관 아래 두 번의 숙박 토의를 했고, 그 결과 새로운 학생부의 개선 방안을 마련했다.


 이 자리에는 청소년들이 참여했다. 나는 청소년의 삶과 맞닿은 주제인 만큼, 청소년의 참여가 청소년에게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지난 과정을 돌아보면서,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 원인을 살펴보았다. 



청소년은 들러리가 될 수밖에 없던 참여단의 구성


 시민정책참여단 100명은 학생, 학부모, 교사, 대학 관계자, 일반 시민 각 20명으로 이루어졌다. 시민정책참여단을 구성한 리서치 단체는 토의의 공평성을 위해 학생부 문제와 관련된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모두 일정한 비율로 포함시켰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청소년 20명과 비청소년 80명의 구성 비율이 과연 공정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비청소년은 직업과 신분에 따라 학부모, 교사, 대학 관계자 등으로 세분화되었지만 청소년들은 단지 19세 이하라는 나이만을 기준으로 묶였다. 학생인지 비학생인지, 인문계 학교 재학생인지 특성화계 학교 재학생인지 등 이들의 개별적인 정체성은 카테고리를 나눌 만큼 충분히 고려되지 못했다.


 수적으로 매우 적었던 만큼, 학생들은 토의 자리에서 존재를 드러낼 때마다 불필요한 주목과 관심을 받았다. 사회자는 툭하면 “우리 학생들이 아주 대견합니다.”라고 말하면서 학생들만 일으켜 세워 박수를 받게 했다. 겉으로는 청소년을 치켜세우는 것 같았지만, 20:80의 구성에서 청소년들의 주장은 힘을 얻기 어려웠다. 청소년들의 참여는 이 토의가 민주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구색 맞추기’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비청소년의 시각에서 접근한 문제 설정


 참여단의 구성 외에도, 가장 기본적인 문제 설정에서부터 비청소년 중심의 시각으로만 접근한 것이 문제적이었다. 교육부는 학생부 개선을 위한 정책숙려제의 취지를 기존의 학생부가 과도하게 사교육을 유발하고 입시에서의 공평성을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래전부터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과 그로 인한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은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곤 했지만, 학생들의 늘어난 학습량이나 학습 부담은 문제로 주목받지 못했다.이번 학생부 논의에서도 역시, 학생부로 인한 학생들의 부담은 학생부를 개선해야 할 주요 원인로 지적되지 않았다. 교육부를 포함한 대부분의 비청소년 참여자들은 학생들이 학생부 때문에 내신 성적 외에도 수상 경력이나 봉사 활동 내용을 채우느라 힘들어하고 있다는 점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설사 학생부에 기재하는 항목들이 줄어야 한다고 해도, 그것은 교사의 기재 부담이 크고 기재 과정에서 남용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되었다. 학생부로 인한 학생들의 고통과 부담은 ‘(입시를 위해) 당연히 극복해내야 할 것’으로 여겨지면서 문제로 설정되지 조차 못했다.


 학생부의 공평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학생과 학부모의 압력으로 학생부가 과장되고, 부풀려서 기입되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그러한 사례들에 비해, 교사들이 학생부를 통해 학생들을 압박하는 문제는 부각되지 않았다. 지난 6월에 있었던 경남청소년행동의 청소년 인권 집회 요구안 중 하나는 ‘생기부(학생부) 협박을 중단하라’였다. 그만큼 교사들이 학교 현장에서 학생부 기록을 빌미로 학생들에게 자율 학습 등을 강제하거나,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비청소년의 관점에서 문제가 편향되게 설정되다 보니 청소년의 실제 삶을 나아지게 하는 것과 동떨어진 논의가 될 수밖에 없었다.


청소년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청소년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 해결 과정이 청소년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어려웠던 이유는 근본적으로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전혀 우호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학생 인권의 관점에서 학생부에 대한 논의는 ‘교사가 학생의 학교생활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이 합당한가’에 대한 질문 없이 제대로 논의될 수 없다. 실제로 학생부와 같은 요소를 통해 학생들은 학교에서 과도하게 관찰된다. 이러한 관찰은 청소년에 대한 통제와 평가를 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청소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전에, 이처럼 학교와 가정에서 평가 대상으로 존재하는 청소년의 처지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게 아닐까?  


 비청소년들은 청소년을 끊임없이 평가함으로써 모범 청소년과 불량 청소년을 구분하고, 불량 청소년을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어떤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어떤 책을 읽었는지를 기입해 평가할 수 있게 하는 것에는 어떤 동아리와 독서 활동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비청소년의 고정관념이 전제되어 있다. 그 틀을 벗어난 청소년은 고스란히 차별과 억압을 견뎌야 한다. 봉사활동과 모범상 등으로 자신의 인성이 모범적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것 또한 청소년에게 씌워진 억압이다.


 청소년은 특정한 상황에서만 평가되는 것이 아니다. 이번 토론장에서 사회자에 의해 ‘대견하다’고 평가받은 청소년들은 주체적인 토론자로서가 아닌, 어른들에 의해 평가 받는 대상으로 그 자리에 존재했다. 따라서 청소년 참여자들은 혹여나 자신의 발언이 ‘기특하고 대견한’ 학생의 그것에서 벗어나지 않았을까 신경 써야 했을 것이다. 요컨대, “봉사활동을 생활기록부에 기재해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건 힘들고 부당하니 빼야 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열심히 봉사활동을 해서 좋은 인성을 갖춘 학생이 되겠습니다.”라고 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비판적으로 성찰하지 않고는 청소년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문제 해결 과정에 청소년이 참여하게 된 점은 바람직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청소년에게 우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청소년의 의사 표현이 더 많은 효과를 가질 수 있도록, 결과적으로 청소년이 더욱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사회의 청소년혐오적인 인식을 타파해 나가야 한다.


- 치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