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벌은 없다, 그것은 폭력이다

2018. 5. 21. 18:36Yosm Special

체벌은 없다, 그것은 폭력이다

 



 “친딸을 성폭행했다는 사실만으로 부모의 부담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지난 46, 제주지방법원은 18세 딸을 때리고 위협한 혐의로 아동학대로 기소된 김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김 씨는 작년 9월 자신의 집에서 딸이 문신한 모습을 보고 욕설을 하며 주먹으로 이마를 때렸다. 그해 10월에는 집 화장실에서 딸이 담배를 피우자 욕설을 하며 물건을 들어 때릴 듯이 위협하는 등 정서적 학대행위를 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 왔다. 김 씨는 이와 별개로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세 차례 딸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아동복지법은 성인이 아동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 정신적 성적 폭력이나 가혹행위를 하는 것을 아동학대로 규정하여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미성년자가 몸에 문신을 하거나 담배를 피우는 행위는 사회의 건전한 통념상 허용될 수 없다, 김 씨의 폭행과 정서적 학대 행위를 적절한 교양과 훈육으로 간주했다. ‘딸의 잘못을 묵과하고 모른 채 방임하는 것이 오히려 학대행위가 될 수 있다고 했다.[각주:1]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면 명확하다. 김 씨는 의지할 수 있는 보호자가 아닌, 학대 가해자이다. 재판부는 성폭행 가해자라고 해도 부모로서 훈육을 할 의무가 있다고 해석했지만, 자식의 입장에서는 성폭행을 저지르고 은폐할 수 있었던 억압자가 다른 폭력들을 동시에 저지른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해당 판결은 체벌이 법으로 금지된 지금도, 사법부가 가해자의 입장에 이입하는 등 인권의식이 정체되어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제 체벌 없어지지 않았나?”


 23년 이상 지속된 체벌 금지 운동 끝에 초중등교육법과 아동복지법이 개정되어 체벌은 전면 금지됐다. 서울, 경기, 광주, 전북에서는 학생인권조례를 공포했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체벌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2017 경기도 학생인권실태조사에 따르면, 한 해 동안 체벌을 경험한 학생은 13.9%. 특히 중학생 중 9.2%1달에 1회 이상 체벌을 경험한다고 응답했다. 중학생 응답자 중 47(1%)은 한 주에 3회 이상 체벌을 겪었다. 오늘 학교에 가면 체벌을 당할지 동전 던지기로 내기를 할 수 있는 수준이다. 체벌을 목격함으로써 정신적 피해를 입은 경우는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학생인권교육센터에 따르면, 2017년도 학생인권 상담 및 권리구제 항목 중 가장 자주 제보된 건은 체벌 사건(210)이다. 교육청에 신고했다가 학교나 교사로부터 불이익을 받을까 봐 신고를 꺼리게 되는 학생의 입장을 고려하면 실제 일어난 체벌 사건은 더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체벌의 빈도와 경각심은 과거에 비해 나아졌지만, 무시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체벌을 청소년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청소년을 보호하거나 훈육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하더라도, 체벌을 정당화하거나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피해 청소년이 겪은 감정과 고통에 집중하는 것이, 체벌이 폭력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첫 걸음이다. 다음은 영국 세이브더칠드런이 기록한, 체벌을 겪은 아동청소년들이 상담을 받으며 체벌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묘사한 형용사들이다. “상처받음, 무서움, 속상함, 사랑받지 못함, 걱정됨, 외로움, 슬픔, 버려진 것 같음, 놀람, 혐오스러움, 불행함, 창피함, 당황스러움, 무시당함, 제압당함, 실망스러움, 주눅듦, 방치됨, 환영받지 못함, 우울함어떤 이도 체벌로 인해 미안함이나 반성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체벌이 교육적 효과가 아닌 정서적 고통을 야기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1996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서 체벌금지를 처음 권고한 이래, 체벌에 반대하는 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그 결실로서 실제 초중등교육법, 아동복지법, 학생인권조례 등에서 체벌 금지가 명문화되었다. 이에 일각에서는 소위 학교폭력으로 일컬어지는 청소년 간 폭력이 기승을 부리는 원인으로 체벌 금지 등의 학생인권 증진을 지목했다. 청소년이 더 약한 청소년에게 폭력을 저지르는 걸 막기 위해서 강력한 처벌의 수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강한 자가 군림해서 가해자를 제압하기를 바라는 한, 평화는 오지 않는다. 오히려 힘의 서열이 공고해지고, 괴롭힘은 강자의 눈을 피해 교묘하게 이루어진다.


 중요한 것은 내 행동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갖는 일이다. 또한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힘의 차이를 예민하게 인식하고, 그 힘의 차이를 타인을 밟고 올라서는 데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감수성이다.[각주:2] 그러한 감수성은 상호 지지하는 평등한 관계에서만 길러질 수 있다. 본인의 일상에 폭력이 만연한데, 타인이 겪는 폭력에 민감하고 평화와 평등을 지향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때리지는 않잖아.”


 오랫동안 체벌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짐에 따라 현장에서는 직접 신체적 고통을 주는 벌이 아닌 다양한 벌이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정신적인 고통이나 모욕감을 주는 벌 또한 학대로 보아 금지하는 것이 국제적 추세다. 다음은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제시한 기준이다. "위원회는 물리적인 힘이 사용되고, 아무리 가볍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고통 혹은 불편함을 유발하도록 의도되는 모든 처벌을 체벌로 정의한다. 위원회의 관점에서 체벌은 예외 없이 모멸적이다. 덧붙여 비신체적 형태의 처벌 역시 잔인하고 모멸적이며, 아동권리협약과 양립할 수 없다. 이러한 처벌에는 예를 들면 무시하기, 창피주기, 비난하기, 책임 전가하기, 협박하기, 겁주기, 조롱하기 등이 포함된다."


 강제학습, 허락 없이 화장실에 갈 수 없음, 외출금지, 내쫓음, 휴대폰 등 특정 물건의 소지 금지 및 압수, 생활기록부 기재 내용에 대한 협박, 강제 종교 수업, 자유와 개성을 말살하는 생활규제 등이 가정, 학교, 시설 등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벌로서 활용되는 경우도 있고, 벌이 아닌 일상적 규칙으로서 고통을 주는 경우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당하는 사람을 무력하게 하고, 권력자의 기준으로 스스로 검열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 있다.

 


 청소년에 대한 폭력에 반대한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무엇이 폭력인지 알기는 어렵다. 뺨을 때리는 것과 생활기록부 협박 사이, 청소년이 겪는 무력감과 굴욕감의 정도는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난 421일 경남청소년행동준비위는 교문지도, 소지품 검사, 생활기록부 협박에 반대하는 것을 주요 요구안으로 삼아 집회를 열었다. 체벌을 넘어, 일상 속의 폭력에 문제제기하는 청소년의 목소리를 바르게 듣기 위해서는 사회가 청소년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꾸준한 고민이 필요하다.



체벌은 없다캠페인의 상징이 돌멩이인 이유


 어느 날 엄마는 어린 아들이 말을 듣지 않자 매로 가르치려고 아들에게 회초리를 가져오라고 시킨다. 그런데 아들은 회초리를 찾으러 나갔다가 한참 만에 울면서 돌아왔다. 아들은 엄마에게 작은 돌멩이를 내밀었다.


 “회초리로 쓸 만한 나뭇가지를 찾을 수 없었어요. 대신에 이 돌을 저한테 던지세요.”


 아들은 엄마가 나를 아프게 하길 원하니까 회초리 대신 돌을 써도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엄마는 비로소 아들의 시선을 통해 사건을 돌아보았다. 자신이 아들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깨달은 엄마는 아들을 끌어안고 한참 울었다.


 그 순간 엄마는 서약했다. 앞으로 절대로 아이를 때리지 않겠노라고. 그는 서약을 잊지 않기 위해 아들이 주워 온 돌을 버리는 대신 부엌 선반 위에 올려두었다.



 이 이야기는 스웨덴에서 부모의 체벌을 금지하는 법이 통과되기 1년 전인 1978, <삐삐 롱스타킹>의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폭력에 반대합니다 Never Violence>라는 연설에서 언급한 일화이다. 린드그렌은 폭력을 겪은 아동들이 '폭력은 자연스러운 상태'라고 믿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며, 평화를 바란다면 가정에서부터 폭력을 제거할 것을 제안한다.[각주:3]


 

밀루/권리모




  1. 〈친딸 성폭행한 아버지, 아동학대는 '무죄'〉, 《제주의소리》 2018.04.06 [본문으로]
  2. 공현 외, 〈인권 교문을 넘다〉, 한겨레에듀, 2011. [본문으로]
  3. 김희경, 〈이상한 정상가족〉, 동아시아, 2017.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