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신문 요즘것들

여성이자 청소년으로서, 나는 폭력을 거부할 것이다.

2018.05.05 19:17 - 요즘것들 아수나로



청소년의 체벌거부선언문


여성이자 청소년으로서, 나는 폭력을 거부할 것이다.





나는 청소년이었을 때보다 어린이였을 때에 체벌을 더 많이 받았다. 지금보다 조금 더 작고 어릴 때, 집에 어른이 계시는데도 언니와 큰 소리로 싸웠다고 엄마에게 머리끄덩이를 잡혀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밟혔던 기억이 난다. 반면 청소년이 되고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부모는 대체로 신체에 직접 폭력을 가하지는 않았다.

그때 나는 부모가 이젠 날 잘 때리지 않는다는 것에 묘한 안도감을, 그리고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성장했다는 뿌듯함을 느꼈다. ‘나, 많이 컸구나!’라는 생각이 키와 몸무게를 쟀을 때나 간단한 수학문제들을 열심히 푼 흔적을 보았을 때보다, ‘맞을 것 같다고 직감한 상황에 맞지 않고 넘어갔을 때’ 강하게 느껴졌다. 이제 다 컸으니 때리지 않아도 부모(또는 교사)와 말이 통한다고 인정받았다는 그 뿌듯함, 그것은 체벌과 함께 크며 체벌을 당연하게 여기는 어른들의 논리를 학습한 상태에서 나온 것이었다.

나는 내 안에 학습되어 자리 잡힌 폭력을 인지한 이후부터, 내가 권력관계에 있어 위쪽에 서 있게 되었을 때 무의식적으로 체벌을 당연시하고 폭력을 저지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게 되었다. 가정폭력은 대물림된다는 공익광고 포스터를 보며, 그리고 “지금은 엄청 나아진 거지. 내가 어렸을 때에는~”이라며 폭력을 당한 것을 무용담인 양 얘기하며 폭력을 저지르는 어른들을 보며 나는 두려웠다. 폭력을 당한 나에게 ‘너도 가해자가 될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은 나를 괴롭게 했다. 피해를 받은 것이 아직도 선명한데 내가 가해자가 된다니 무서웠다. 아니, 지금도 무섭다. 옛 담임교사와의 상담에서 '나도 가족을 가지게 되면 나의 아이에게 훈육이랍시고 폭력을 저지를까 봐 가족을 만들고 싶지 않다'고 털어놓으며 울기도 했다.

물론 누구나 권력을 가진 상황에서 나도 모르게 당연하다는 듯 폭력을 저지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피해자에게 ‘너는 피해를 받았으니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피해자를 더욱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이 상처를 숨겨두지 않을 것이며, 그것을 무용담으로 만들지 않을 것이다. 내가 상처받은 것을 스스로 알듯이 다른 이의 상처에 공감할 것이며, 나와 피해자를 그 상처로부터 자유롭게는 못 하더라도 그 안에 가두지는 않을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몸집이 제법 커져 밀어도 쉽게 넘어지지 않고 나름대로 방어할 줄 아니까 신체적인 폭력이 줄었을 뿐, 정신적인 피해는 청소년으로서 받은 것이 더 크다. 말로 건넨 폭력은 나를 더욱 구제불능의 인간으로 만들었고 가슴 속에 더 깊이 새겨졌다. 그 말의 내용들이 말이 안 된다 싶으면서도 나는 세뇌되듯 그 말을 마음속으로 곱씹으며 스스로를 강하게 조롱했다. 가해자는 그 말을 ‘사랑했기에 심하게 꾸짖은 것’이라 포장했다. 가해자에게 그 말은 순간 욱해서, 또는 잘못을 고치게 하기 위해 과장한 말에 지나지 않겠지만, 그 말들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고 스스로를 더 작고 나쁜 인간으로 만들었다.

더 나아가 그들은 말이 안 통한다 싶었을 때 그들은 내게 온갖 '년' 자 들어가는 욕을 했다. '어린 년', '못된 년'부터 '썅년', '씨발년'까지. 이전의 나는 단순히 내가 여자니까, 남자에겐 ‘놈’이 붙고 여자에겐 ‘년’이 붙어서 내가 ‘~년’이 된다 생각했다. 그러나 ‘년’과 ‘놈’은 그저 성별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었다. 확실히 나를 포함한 여자아이가 혼이 날 때 (폭력을 당할 때) 남자 아이들보다 성별이 더 많이 언급되었다. 우리는 ‘년’을 비롯해서 (버르장머리 없는/싸가지 없는/이기적인/말 안 듣는) ‘가시내’, ‘계집애’라 불렸다. 간혹 남자아이들도 그런 상황에서는 ‘년’이 들어간 욕을 들었다. 자연히 ‘년’이 ‘놈’보다 더 심한 욕인 것을 알게 되었으며, 여자를 깎아내릴 때에는 ‘계집애’라고 칭하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한 가지, 전체적으로 봤을 때 당해본 체벌의 강도는 여성 청소년과 남성 청소년이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생각한다. 그러나 여성과 남성이 한 공간에서 체벌을 받는 경우엔 조금 달라진다. 엎드려뻗쳐나 앉았다 일어나기, 무언가를 들고 있게 하는 등의 체벌을 할 때 그것은 더 부각된다. 특히 남성 교사들이 “여자들은 이제 그만 해.”, “여학생들은 빠지고 남학생들 나와.”라고 말하는 순간에 말이다. 체벌을 여학생보다 더 받게 되는 남학생들은 체벌이 끝나고 체벌을 가한 사람에게 화를 내기보다도 여학생들에게 “너희는 얼마 안 했잖아”라고 했다. 체벌이 정당하냐는 논점은 사라지고, 체벌은 어느새 당연시된 채 누구는 책임을 더 지고 누구는 덜 지는 상황으로 인식되는 것이다.(남성들이 여성에게 국가라는 권력이 정한 군대 제도를 내세우며 권력을 휘두르는 것과 거의 유사하다.) 그런 말은 하지 않는 남학생들은 '여자들은 약하니까 남자가 더 강한 체벌을 받는 것이 맞다.'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나중에 그들이 권력을 갖게 되었을 때 “네가 남자였으면 반 죽었어.”, “에휴, 여자라서 봐준다.”라는 식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그들은 같은 맥락에서 반대로 “난 평등하게 여자도 때릴 거야.”라는 말을 교실에서 농담처럼 던지기도 한다.

나는 두렵다. 학교나 집에서 내가 가진 권력은 크지 않으므로 언제든 폭력에 노출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이 너무 시끄럽게 군다는 지인의 얘기에 아빠가 “그런 애들은 죽도록 맞아야 정신 차리지.”라고 말했을 때,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것은 물론 경멸과 두려움을 느꼈다. “여자여도 맞아야지.”라는 친한 남자인 친구의 말에, 그 친구가 장난으로라도 때릴 듯이 손을 들면 나는 자연스럽게 움츠러들었다. 그러나 나는 또한 두렵다. 앞서 말했듯 내가 권력을 갖게 되면 가해자가 될까 봐.

스스로가 가진 권력을 검열하는 것도 중요할 테지만, 우리는 그 전에 폭력으로부터 함께 자유로워져야 한다. 나는 지금까지 나를 괴롭히는 그 상처들에 선언한다. 체벌은 교육이나 내가 잘못하여 얻은 손해가 아닌 ‘폭력’이며, 우리는 앞으로 그것을 수용해선 안 된다고.



- 오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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