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신문 요즘것들

감추고 부끄러워할수록 안전할 수 없다

2017.12.03 22:32 - 요즘것들 아수나로




감추고 부끄러워할수록 안전할 수 없다


 내 인생의 절반을 생리하면서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달에 4분의 1을 피를 흘리며 살아왔고, 또한 당당하지 못하게 살아왔다. 생리자를 입에 담기도 어려운 분위기에서 어찌 당당하게 나의 생리를 외치겠는가. 사회 전반에서 생리라는 말을 입에 담는 것조차 기피하는데, 생리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일어날 리 없다. 그런 의미에서 생리대 파동은 예견된 미래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렇게나 생리대 성분을 규제하는 법규가 없다는 사실에 허탈한 심경마저 들었다.

 

 

여성청소년이 마주한 생리대 파동 : 변함없는 시선

 

 청소년으로서 느끼는 생리대 파동은 그 무게가 좀 더 무거웠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한국사회는 젊은 여성이 산부인과를 가는 것에 비난하는 듯한 시선을 보낸다. 하물며 그 대상이 청소년이면 그 시선이 더하면 더했지 못하진 않을 것이다. 교복을 입고 있거나, 접수처에서 청소년임을 말하는 순간 시선이 꽂힌다. 출산할 수 있는 장소가 있는 병원이면 더욱 심하다. 보며 혀를 차는 것은 물론이고 위아래로 훑어보는 시선도 종종 느낀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이제 나는 교복을 입고 산부인과를 가는 것을 고민하게 되었다. 아마 대부분 이럴 것이다. 많은 청소년이 산부인과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고작 약국 언저리를 배회한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여성청소년이 몇 명이나 당당히 산부인과에 진료를 받으러 갈 수 있을까?


 친권자에게 산부인과를 가겠다고 말하는 것부터 고난이다. “왜 가느냐. 그러게 네가 네 몸을 잘 관리했어야지.”라는 말이 제일 먼저 날아온다. 그걸 이겨내고 병원에 가도 또 시선이 꽂힌다. 이런 상황의 반복은 여성청소년의 산부인과 기피를 심화시킨다.


 생리대 파동 이후 나는 산부인과에 진료를 더 자주 받으러 가게 되었다. 하지만 청소년인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사람들은 편견어린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곤 한다. 생리대 파동 전에는 그게 싫어서 안 갔지만, 파동 후에는 그래도 살아야지하는 마음으로 산부인과에 가고 있다. 산부인과 방문에 대한 내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과 별개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히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여성청소년이 생리컵을 쓰기 위해 넘어야 할 산들

 

 우리 사회는 여성이 자신의 신체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것을 아니꼽게 본다. 여성의 몸은 쉽게 국가의 것 혹은 남성의 것으로 여겨진다. 여성의 몸을 여성 자신의 것이기 때문에 소중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낳을 몸이니까소중히 해야 한다고 말한다거나, 생리컵을 사용하면 그런 거 쓰면 남자들이 안 좋아해.”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이때 여성청소년은 여기에 더해 너는 아직 어리니까 잘 몰라서 그래.” 또는 나중에 크게 되면 분명 후회할 거야.”라는 이야기까지 듣게 된다. 여성청소년이 자기 신체에 관한 결정을 내리고자 하면 그것은 매우 어리석고 성급한, 잘못된 결정으로 치부된다. 내가 청소년이고 학생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은 나의 성 지식, 생리용품에 대한 지식을 생리 무경험자인 일반 남성의 말보다 근거 없는 것으로 여기기까지 한다.


 생리대 파동 이후 나는 생리컵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내가 생리컵을 사기 위해 돈을 받으려고 하자 어머니는 그런 거 하다가 몸 다 상한다.”, “어떻게 임신이나 성관계도 해보지 않았으면서 그런 걸 끼겠냐.”라고 말했다. 나는 전에 부모에게 노브라로 다닌다고 맞았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 이것도 어련할까 싶어 그냥 내 돈을 모아서 생리컵을 샀다. 내 주위의 많은 여성청소년이 이런 이유로 생리컵 구매를 포기한다. 생리컵의 가격은 3만 원대에서 7만 원대 사이로 친권자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혼자서 구매하기에는 그렇게 가볍지는 않기 때문이다.


 또, 청소년이 그런 걸 쓰다가 처녀막이 손상되면 어찌하느냐는 식의 말을 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내가 청소년인 것과 처녀막에는 어떠한 연관관계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처녀막은 꼭 성관계를 통해서만 손상되어야 한다는 식의 언행은 정말 사람을 불쾌하게 만든다. 나는 이걸 산부인과 원장에게 듣고 마음이 너무 처참했다. 이런 식으로 여성청소년은 자기 신체에 관한 결정을 내릴 때 주변 사람들에게 간섭을 받고 불쾌한 언행을 듣기 쉽다. 그것은 아마 사회가 여성청소년을 자립된 존재로 보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시선은 생리용품 사용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여성청소년이 생리용품을 선택하고 구매하기를 힘들게 만든다. 결국 어른의 허락을 구해야 하고 어른의 도움이 없으면 구매조차 어려운 환경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런 환경은 또 그런 식의 무례한 언행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게 하고, 그 언행을 들은 여성청소년은 자신의 신체에 관한 결정을 꺼리게 되거나 자신의 생리에 대하여 부끄럽게 생각하게 되는 악순환으로 반복된다. 여성청소년의 안전하고 편안한 생리를 위해서는 이러한 악순환을 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여성청소년의 몸이 여성청소년의 것이기 위해서는

 

 일단 학교 보건실에서 종종 듣는 어떻게 여자애가 생리대를 안 챙겨 다닐 수 있어.”부터 없어져야 할 것이다. 여성청소년에게 보건실은 고나리질의 온상이다. 그래서 잘 찾아가지 않으려 하지만 생리대를 빌리기가 여의치 않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찾아가게 된다. 그때마다 매번 듣는 너는 여자애가~’로 시작하는 핀잔은 학교에 생리에 대한 요구를 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는 생리를 공적인 장소에서 말하는 것이 금기시되는 환경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주변 청소년의 사례 중에는 남성인 담임교사에게 생리통이 심해 학교행사에 참여하지 못하겠다고 이야기하자 담임교사가 학부모에게 여학생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선생님에게 생리 이야기를 막 하느냐라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는 것도 있었다. 학교에서는 우선 이런 무례한 언행을 숨 쉬듯이 하는 교사들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한 언행이 없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여성청소년이 학교에서 당당히 생리에 대한 요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가정에서의 시선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 산부인과를 간다거나 생리용품을 선택하려 할 때 여성청소년의 선택을 무시하는 언행을 삼가고 그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스스로 선택하는 경험이 늘어날수록 여성청소년이 자신의 몸을 보다 존중하는 선택을 더욱 당당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학교와 가정에서의 무례한 언행은 결국 사회문화에서 시작된다. 한국사회의 문화는 여성에 대한 모든 것에 폐쇄적인 경향이 있는데, 이는 생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생리라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 금기시하고 생리를 부끄러워야 하는 것으로 만든다. 여성이 당당히 생리를 생리라 말하고, 생리에 대해 사회적으로 당당히 요구할 수 있을 때 여성청소년 또한 안전하고 편안하게 생리할 수 있을 것이다. 생리를 생리라 말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나의 생리생활에 대하여 남에게 허락받을 이유는 더더욱 없다. 여성청소년이 당당히 자신의 생리에 대해 말하고, 스스로의 생리에 대한 결정을 내리고 또한 그것을 존중받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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