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침해 문제, 어떻게 공론화되고 있나

2017. 9. 9. 22:40Yosm Special


학생인권침해 문제, 어떻게 공론화되고 있나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A씨는 체육복을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학생들의 머리를 때렸던 체육교사에게 문제를 제기했다. 체벌은 학생의 신체의 자유를 훼손하는 일이고, 어느 누구에게도 하지 말아야 할 비인격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교사는 순순히 잘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에 교사는 반 학생 중 한 명이라도 체육복을 입고 오지 않으면 반 학생 전체에게 오리걸음을 시켰다. 손이나 도구로 때리는 직접체벌을 하지 않아 정당하다는 이유였다.


 체육교사는 부당한 체벌에 대한 A씨의 문제제기를 농락했다. A씨의 요구는 학생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는 것이었지, 형태만 바꾸어서 때리는 대신 오리걸음을 시키라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문제제기는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겨지거나 교사에게 대드는 것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학교에서 수많은 인권침해를 경험하면서도 그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효과가 없다면, 학생들은 어떤 방식으로 학교의 인권침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최근, SNS상에는 ‘ㅇㅇ학교를 도와주세요’, ‘ㅇㅇ학교 학생인권침해’ 등의 이름을 가진 계정 및 페이지가 생겨나고 있다. 이들은 보통 해당 학교의 재학생 또는 졸업생으로, 익명으로 활동하며 학교에서 직접 겪거나 제보 받은 인권침해 사례를 폭로한다. 현재까지 부안여자고등학교(‘부안여고 재학생’, ‘부안여고를 도와주세요’), 내서여자고등학교(‘N여고’, ‘N여자고등학교’), 부산국제외국어고등학교(‘부산국제외고 학생인권침해’), 울산 우신고등학교(‘울산 우신고를 도와주세요’) 등에서 일어난 학생인권침해 사례가 이러한 계정·페이지를 통해 외부에 알려졌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권침해 사례들을 외부에 알려 사회적으로 주목받게 하고, 인권침해를 일삼는 교사의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SNS를 통해 문제를 알린다고 해서 곧바로 학교나 교육청이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언론 기자들이 이러한 계정이나 페이지를 발견하고, 공유된 학생인권침해 문제를 기사로 보도하면서부터 학교나 교육청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내서여고의 경우 학생과 학부모들이 학교와 교육청에 수차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민원을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43일간 어떤 조치도 없다가 언론을 통해 문제가 기사화되면서 뒤늦게 교육청에서 학교에 대한 특별 감사에 들어가기도 했다. 부안여고에서 학내 문제의 공론화를 이끌었던 학생들 또한 “기사가 나지 않았다면 문제가 묻혀버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건이 공론화된 학교는 대부분 이전부터 꾸준히 학생인권침해가 일어나고 있었고, 그에 따라 학생들이 문제제기를 해왔던 경우가 많다. 재학생들에 의하면 교사의 체벌로 인해 학생이 입원을 하거나(부안여고) 급식소의 천장형 에어컨에서 구더기가 떨어져 학생들이 시정을 요구했을 때도(내서여고) 학교 측에서는 짧은 사과의 말뿐 오히려 학생들의 입을 막으려고 했다. 울산 우신고에서는 체벌 행위로 고소를 당한 전력이 있는 교사가 여전히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기도 했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언론의 힘을 빌리지 않는 한, 학내에서 이루어지는 학생들의 문제제기가 학교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언론사를 비롯한 학교 외부자들의 주목이 학생들의 공론화에 필수적인 이유다.


 그러나 학생들의 공론화로 교육청이나 경찰에서 조사를 시작했다 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부안여고에서는 지난 7월, 교사의 학생 성추행 및 폭행 등으로 교육청과 경찰에서 진상 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과정에서 진술을 받는 학생의 이름과 연락처를 말하게 하거나 연락처를 제출하지 않으면 부모에게 연락을 하는 일이 발생했다. 공론화 당사자의 신상이 밝혀지기도 했다. 학교가 문제를 고발한 자신에게 보복할까봐 두려워하는 학생들의 심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였다. 재학생 B씨는 “주로 문제가 되었던 체육교사의 가해 행위, 그 중에서도 성추행과 성희롱에 대해서만 답변할 수 있었고, 다른 교사에 의한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하게 몰아가는 경향이 있었다. 더군다나 시험이 끝나고 학생들이 지쳐있을 때 조사를 하기도 했고, 교육청과 경찰이 따로 조사를 진행하면서 학생들이 두 번씩 진술을 해야 해서 피곤했다. 직접적인 피해 사실이 없다는 학생에게 (공부를 잘하면 교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전교 1등이냐고 물어보기도 했다.”라고 말하며 조사 과정 중 문제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또, 조사가 진행되는 내내 진행 상황이 학생들에게 공유되지 않아 학생들은 기사를 통해 진행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부안여고는 조사 이후 교사 3명에 대한 징계가 이루어지고 내년도 학급 수를 감축하게 되는 등 사건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졌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정작 피해를 입은 학생들에게는 제대로 된 사과 및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6월, 울산 우신고에서 진행되었던 인권침해 관련 전수조사 또한 부실 조사라는 논란이 있다. 울산시 교육청에서 우신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는 첫 번째 질문으로 “귀교는 남녀공학으로 연합고사 이후 품행이 단정하고 바른 인성을 갖춘 학생들이 많으며 학업증진에 노력하는 학교로 인정되어 명문학교로 발돋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귀하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학생들이 학교 문제를 고발하지 못하게끔 학교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강요하는 것이 드러난다. 다른 문항에는 교칙에 인권침해적인 요소가 있는 것이 밝혀졌음에도, “학교규칙은 학생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내용입니다.”라는 문구가 들어있기도 했다. 이 같은 설문조사에도 30명에 가까운 교사로 인한 인권침해 사례가 조사됐지만 교육청은 학교에 구두로 징계를 요구하는 데 그쳤다. 울산 남부경찰서에도 울산 우신고의 문제가 접수되면서 경찰은 교육청에 전수조사 결과를 요청했지만, 교육청은 “수사를 할 만한 사안이 아니”라며 자료 제공에 응하고 있지 않다. 학생들은 어떤 교사가 어떤 징계를 받았는지도 모르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학생인권침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는 매우 힘들다. 학교와 학생이 가지는 권력의 차이는 크고, 거대한 학교를 상대로 소수의 학생이 문제를 제기하는 데에는 상당한 부담이 든다.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건의 고발자인 피해 여성이 ‘꽃뱀’ 소리를 듣는 경우와 같이, 문제를 고발하는 사회적 약자들은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가해자보다 더 사회적인 위협과 낙인에 시달린다. 학생들 또한 공론화를 그만두라는 협박과 위협에 시달린다. 거의 모든 학교에서 최초 고발자를 찾으려고 시도했고, 김포외국어고등학교의 경우에는 학내에서 고발을 시작했던 학생이 학교로부터 심한 괴롭힘을 당하고 있기도 하다. 학교는 문제를 제기한 학생의 행실을 트집 잡으며 학교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사건을 고발한 학생들의 개인적인 문제로 취급했다. 부산국제외국어고등학교의 경우, 올해 초 ‘부산국제외고 학생인권침해’ 계정을 운영하는 C씨가 학교로부터의 압박이 심해 공론화 활동을 포기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학생인권 인식이 낮은 사회에서 학생인권침해가 일어나는 개별 학교의 사정이 모두 주목을 받기도 어렵다. 전국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학교에서 용의복장 규제나 소지품 규제, 과도한 학습 강요, 학생을 향한 모욕, 혐오발언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나마 사회적으로 문제의식이 형성되어 있는 심한 체벌 행위나 성폭력 문제가 제한적으로 공론화되는 형편이다. 그 외에 학교의 용의복장 규정 등을 같이 문제제기하면 ‘본질을 흐린다.’, ‘기회가 생겼다고 싸잡아서 일러바친다.’와 같은 비난을 받기도 한다. 또한, 온갖 가혹행위에도 불구하고 입시 성적만을 이유로 울산 지역 내에서 ‘명문고’로 불리던 울산 우신고처럼 여전히 학생의 훈육을 위해 체벌이 필요하다는 인식도 만연하다.


 학생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구는 지역에 따라 부재하거나 힘이 미약하고, 교육청은 학생인권침해가 발생한 학교에 조치를 취하는 것에 소극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사를 진행하는 교육청이나 경찰 쪽에서 오히려 학교의 문제를 축소하거나 덮으려고 할 때가 많다. 학생들은 이들을 신뢰할 수 없는 경우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좌절한다.


 차별과 폭력에 둔감한 사회에서는 누구나 문제의식 없이 폭력의 행위자가 될 수 있다. 교사 또한 사회 구성원 중 하나로서 기존의 문제적인 사회 통념에 따라 폭력을 휘두른다. 예컨대, 자격 있는 소수에게만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 통념에 따라 교사는 성적이 좋은 소수 학생에게만 차별적으로 혜택을 제공하기도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청소년이 비청소년에게 순종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다고 여겨지는 사회에서 교사는 자연스럽게 학생에게 ‘시키는 대로 하라’고 명령할 수 있다. 소수자에 대한 혐오, 능력에 따른 사람의 서열화 등 사회적 병폐가 그대로 반영되는 학교에서 학생인권침해는 불가피하게 일어난다.


 학교라는 공간은 사회에서 고립되어 있고, 교실 밖에서는 교실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김현경은 〈사람, 장소, 환대〉(2015)에서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남편에 의한 아내 폭력이 은폐되는 이유로 가정이 가부장의 사적 영토로 간주되는 것을 들었다. 국가가 개인의 사유재산을 건드리지 못하는 것처럼, 가부장의 사적 영토로 여겨지는 가정 안에 공공의 힘이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학교 또한 상황에 따라 관리자 또는 교사의 사적 영토로 여겨지는 면이 있다. 헌법에서 모든 인간의 표현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학교 안에서는 학생들의 외모를 규제하고 정치 활동을 금지하는 학칙이 헌법보다 우선이다. 현재는 초중등교육법상 교장만이 학칙을 변경할 수 있다. 더 좁은 범위에서 교실은 교사가 만든 규칙대로 운영된다. 교사는 학생에게 명령하거나 간섭할 수 있으며, 많은 학칙에서 교사의 지침을 불이행하는 학생에게는 불이익을 준다. 사회는 ‘학교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명목으로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 문제를 방관한다. ‘전문성을 갖춘 교사가 학생을 책임지고 있다.’는 인식은 이러한 방관을 정당화한다. 그들이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는지는 관심 갖지 않으면서 말이다.


 이렇게 암울한 현실 속에서 학교의 문제를 공론화하려는 학생들의 시도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힘겨운 땅을 뚫고 겨우 고개를 내민 학생들의 목소리가 또 다시 짓밟힌다면, 학생인권의 현실이 나아질 가능성도 희미해질 것이다.



우신고


 울산에서 ‘서울대를 가장 많이 보내는 학교’로 유 명했던 우신고는 교사들이 몇십 년간 학생들에게 가혹한 체벌과 성폭력 등을 저질렀다. 지난 6월 생 겨난 ‘울산 우신고를 도와주세요’ SNS 계정에 의 하면, 우신고 교사들은 틴트를 가지고 있던 학생에 게서 틴트를 빼앗아 얼굴에 칠하거나 티스푼으로 큰 통에 있는 물을 옮겨 채우도록 시켰고, 뺨을 때 리거나 머리를 발로 차는 등의 비인격적인 체벌을 해 왔다. 교사가 여학생들의 사진을 몰래 찍어 저 장한 행위도 고발되었다.



내서여고


 지난 6월 21일, 내서여고에서는 담임교사가 몰 래 교실에 원격촬영 동영상 카메라를 설치했다가 학생들에게 적발됐다. 이후 생겨난 ‘N여고’, ‘N여 자고등학교’ SNS 계정에 의하면 해당 교사는 수 업 시간에도 성희롱 발언을 해 왔으며, 교장은 좋 은 대학을 가지 못하면 성을 팔게 된다는 내용의 부적절한 훈화를 하기도 했다.



부안여고


 부안여고에서는 한 체육교사가 학생들을 지속적 으로 성추행 한 혐의가 밝혀졌다. 체육교사는 학생 들의 치마를 들추거나 필요 이상으로 학생들에게 밀착하는 행위를 해 왔고, 그 외에도 금품갈취, 협 박 및 폭행을 일삼은 것으로 드러났다. ‘부안여고 재학생’ SNS 계정에 의하면 체육교사 외에도 국 어교사를 포함한 많은 교사가 수업 시간에 소수자 혐오적인 발언을 하고, 학생들을 성추행했다.



부산국제외고


 부산국제외고에서는 지나친 학습 강요와 폭언, 인권침해적인 용의복장 규제가 행해지고 있다. ‘부 산국제외고 학생인권침해’ SNS 계정에 의하면, 많은 학생들이 주말에도 오후 5시까지 강제로 학 습을 해야 하며, 기숙사의 규정 또한 학생들의 사 생활을 지나치게 침해하고 있다.



김포외고


 김포외고에서는 교사가 학생을 각목으로 위협하 고, 대걸레로 때리는 일이 일어났다. 교사는 욕설 을 하고 각목으로 주변 사물함을 내리친 후, 부러 진 각목을 학생의 목에 겨누며 ‘찔러 죽이기 좋다’ 고 위협했다. 학생들이 그를 경찰에 신고했지만, 검찰은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체벌’이라는 명목으로 해당 교사를 불기소 처분했다.



― 치이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