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이 말하는 성교육 수다회 : 다른 성교육, 다른 사회를 상상하다

2017. 8. 15. 20:24틴스페미니즘

 교육부가 2015년 발표한 성교육 표준안은 ‘여자는 무드에, 남자는 누드에 약하다’ 등 왜곡된 성인식과 잘못된 성폭력 대처법으로 비판을 받았다. 이에 교육부와 여성가족부는 8월 중으로 성교육 표준안을 재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서울시 위례별초등학교에서는 방과후 페미니즘 동아리를 만들어서 활동한 교사가 온갖 악플에 시달리기도 했다. 여성혐오가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는 사회, 학교 안에서의 성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할까? 이에 대해 학생과 교사가 자신이 경험하거나 진행했던 성교육의 문제점과 어려움에 대해 쓴 기고글 4편을 연재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아수나로 서울지부에서 진행한 <청소년이 말하는 성교육 수다회> 기록을 통해 청소년이 진단하는 왜곡된 성교육의 폐해와 청소년이 진짜 원하고 필요로 하는 성교육은 어떤 것인지 제시한다.



청소년이 말하는 성교육 수다회 : 다른 성교육, 다른 사회를 상상하다 

 

― 일시: 2017716

― 주최: 아수나로 서울지부

― 참여자: 익명(A), 익명(B), 익명(C), 익명(D), 익명(E), 익명(F), 익명(G), 희정, 현우, 해나, 콜비, 모밀, 김하늘, 라라

* 수다회는 모둠을 나눠서 진행되었지만, 이 글은 편의상 각 모둠에서 나온 이야기 중 일부를 발췌, 합쳐서 편집되었습니다.

 


 지난 716, 아수나로 서울지부 여성청소년팀 주최로 여성청소년의 다양한 성교육 경험을 나누는 수다회가 열렸다. 참여자들은 성교육 속에 녹아 있는 여성/청소년/성소수자의 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비판했으며, 나아가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으로 나뉘며 답이 정해져 있는 교육의 틀을 깨기를 기대하며 다른 교육에 대한 상상을 나누었다.

 수다회에서 나온 이야기를 간략히 요약하여 전한다.

 


Q : 내가 겪은 최악의 성교육, 좋았던 성교육은?

 

C : 내가 들은 학교 성교육은 성교육이라고 할 수가 없다. 고작 임신 과정을 알려주고 그걸 외우라고 하는 식이었다. 다른 경로를 통해서 아기 가지는 법은 일찍 알았지만, 진짜 손만 잡고 자면 아기가 생기는 줄 아는 친구들도 있었다. 임신 과정을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뒤 없이 임신과정만 알려주는 건 별로라고 생각한다.

 

해나 : 학교 성교육은 생식에 치중되어 있는 문제가 있다. 지난번에 페미:라고 청소년페미니즘 모임에서 주최한 캠프가 있었다. 거기에서 은하선이라는 섹스토이 숍을 운영하는 페미니스트분이 오셔서 이런저런 성교육을 하셨다. 기존 학교에서 배웠던 생식 위주, 이성애중심적인 성교육이 아니라 퀴어를 위한 섹스토이 종류도 알려주셔서 좋았다. , 이건 바이브레이터라고 부른다, 이건 뭐라고 부른다는 식으로 확실하게 알려줘서 섹스토이에 대해서도 잘 알 수 있었다. 근데 여전히 섹스토이 숍이 청소년 출입 금지인 상황에서 어떻게 내 성적 권리를 지킬 수 있을까 싶다.

 

B : 그분이 쓴 <이기적 섹스>라는 책을 읽어 보니 신세계였다. 어디서 섹스토이에 대해 잘 알려주지 않는다. 성인용품점이 들어가기도 좀 무섭게 빨간색에 '뒷문 있음' 표지가 붙어 있기도 하고. 왠지 남성용만 있을 것 같고.

 

A : 나도 그 강연을 같이 들었다. 내가 애인과 섹스했을 때 애인은 오르가즘을 느꼈는데 나는 이게 오르가즘인지 아닌지 모르겠던 경험이 있었다. ‘내가 느끼는 이게 뭐지? 오르가즘인가? 근데 너무 약한데?’ 하면서. 그때 은하선 씨에게 물어봤는데 사람마다 다르다고 했다. 딱 명확한 답은 아니었지만, '오르가즘'이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닌데 그 자리에서 이야기 나눌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좋았다.

 

현우 : 난 학교에서 하는 성교육은 교육부에서 만든 동영상 보여주고, 선생님도 꼭 들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해서 그냥 자고 그랬다. 기억이 별로 없다. 내 경우엔 학교 선생님 중 한 분이 되게 좋았다. 인권과 페미니즘을 많이 다루는 분이라 남학생들에게는 욕을 많이 먹기도 하는데, 난 그분을 통해서 의식이 많이 바뀌었다. <이갈리아의 딸들>이라는 책을 추천 받았는데, 삽입을 하지 않고 성관계를 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 소설 속에서는 여성이 ''이라고 불리고 현실의 남성과 같은 지위를 갖는데, 움이 생리대를 들고 흔들면서 웃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난 이런 걸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이런 책을 통한 성교육이 좋았다.

 

D : 나는 강의식으로, 공식적으로 했던 성교육 중에는 좋았던 게 하나도 없다. 나도 책을 통해서 봤던 게 가장 좋았던 성교육이다. <여자다운 게 어때서>라는 책이 있다. 그 책을 읽고 깨달은 게 정말 많았다. 여성이나 남성으로 구분될 필요가 없다는 것, '성 스펙트럼'이라는 개념을 거기서 배웠고, 여성이 겪는 불평등도 나와 있었다.

 학교 성교육은 성교육 강사가 한 반에서만 강의를 하고 다른 반에는 그걸 TV로 보여주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니까 학생들이 다들 자기 할 것만 했다. 학생들이 보지도 않는 교육을 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손 잡고 자면 아기가 생기는 거라고밖에 이해를 못했다. 학교에서 그런 피상적인 성교육이 이루어지는 게 정말 안 좋은 것 같다.

 

모밀: 학교는 학생을 관리 대상으로만 보고 사고가 나면 안 된다고 한다. 그게 학생의 인생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관리 책임자로서 사고가 나면 안 된다는 관점으로만 보는 것 같다. 실제 상황을 생각하면 그렇게 교육하면 안 될 텐데도 이를 테면 학부모가 학생 관리에 대해 항의하지 않도록 눈치를 보면서 교육하는 거다.

 

E : 초등학교 때였나, 조심하라는 의미에서 시청각실에 모아두고 '비청소년 남자가 이렇게 하면 잘못된 거라는 맥락의 영상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여자아이의 몸을 보여주고, 비청소년 남자가 그 사람을 만지고, 남자의 숨소리가 들리면서 되게 호기심이 들게 하는 음향과 이미지를 보여주는 거였다. 위험하고 잘못되었다는 것보다도 자극적인 상황이 부각됐다. 예전에는 아무 생각도 없이 침 꼴깍꼴깍 삼키면서 봤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잘못된 것 같다.

 

B : 중학교 기술가정 시간에 '올바른 이성교제 하기'라는 파트가 있었다. 거기에 '단 둘이 만나지 않는다.', '집에 있을 때는 꼭 방문을 열어둔다.' 같은 게 있다. 제일 가관이었던 건, 성욕을 못 참겠으면 운동이나 악기 연주 같은 다른 활동으로 풀라는 거였다. 그런 내용이 학교성교육표준안에도 꾸준히 들어 있는데, 이런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지 궁금하다.

 

해나 : 나는 지금까지 경험한 성교육이 주로 '임신을 위한 성교육'이었다고 기억한다. 스스로의 성욕을 위해 섹스를 해야 한다/해도 된다고 이야기해주는 성교육은 하나도 없었다. , 임신 이후에 여성에게 일어나는 신체적 변화가 배만 나오거나 아이만 크는 게 아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는 일절 말이 없다. 출산을 하고 나면 생리를 하는 것처럼 계속 분비물이 나온다고 하더라. 근데 그런 언급도 하나 없고. 미디어에도 잘 안 나오고 따로 찾아봐야 알 수 있다. 교과서엔 가정교과서 뒤편에 잠시 나오는 수준이어서 알기 어렵다. 나는 알고 나서 충격을 받았다. 학교 가정시간에는 맨날 '결혼은 신성한 것이고 자녀 생산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의무다.'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어떻게 중요한 정보는 숨기고 그렇게 가르칠 수 있나 싶다.

 

B : 사실 먼 나중의 일이 아닐 수도 있는 건데, 당장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인데. 학교에서는 항상 먼 이야기처럼, 교실 안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Q : 앞에서 얘기한 성교육으로 인해 겪었던 어려움이 있나요?

 

F : 피임 기구는 되게 많은데,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예전에 <산부인과>라는 드라마에서 주인공 여자 의사가 콘돔 사용법을 학교에서 알려준다. 그 장면이 엄청 논란이 되었다. 사실 그렇게 알려줘야 효과적인 피임을 할 수 있는데 학교에서는 그런 건 알려주지도 않고, 임신하면 뭐라고 한다.

 

A : 정말 중요한 건 청소년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나는 섹스라고 하기도 싫을 만큼 별로였던 경험이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육체적 접촉을 하기 시작했는데, 혹시 모르실 수 있으니까 알려드리자면, 남자 성기에서 사정하기 전에 쿠퍼액이라는 게 나온다. 여기에 소량의 정자가 있어서 이것으로도 임신할 확률이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친구와 할 때 그건 생각도 못 했다. 사정하기 전까지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 친구가 싸지는 않았는데 쿠퍼액이 조금 나온 거 같다고 얘기를 하는 거다. 나는 하루 종일 산부인과에 가봐야 되나,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정말 무서웠다. 그런 걸 하나도 안 알려주니까 이런 상황이 되는 거다.

 

해나 : 학교에서는 강간을 낯선 사람이 억지로, 폭력적으로, 겁탈하는 거라고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불평등한 권력구조에서 비롯되는 성관계가 분명 존재한다. 나는 그런 섹스를 했을 때 이걸 과연 강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얼떨결에 동의했지만 그 상황이 나에게는 폭력적이어서 강간 혹은 그와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학교에서 보여주는 강간의 이미지는 '묻지마'스러운, 갑자기 확 일어나는 거였기 때문에. 섹스를 하기 전에 접촉할 때 ', 섹스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떠밀려서 하게 되었었다. 하기 싫다고 하면 저에게 돌아올 피해와 상대가 더 이상 나를 만나주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동의 아닌 동의를 해버린 상황이었다. 학교에서는 그럴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는 매뉴얼조차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 놓인 청소년, 특히 여성청소년이 혼란스러워 할 것 같다.

 

A : 책을 봐도 섹스는 청소년기에 올바르지 않은 행동이다.”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섹스는 하면 안 돼. 섹스를 하면 걸레야.'라고 생각했었다. 정작 나에게 그런 상황이 다가오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콘돔 하나 사는 것도 너무 부끄럽고, 아까 말한 상황에서도 산부인과 가는 게 너무 무서웠다.

 

해나 : 학교에서도 그렇고 또래인식도 그렇고 '섹스하는 청소년은 날라리일 것이다.'라는 편견이 되게 강하다. 다들 너는 어리고 어리석으니까 조금 더 참아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페미니즘과 인권 담론을 접하기 전에 청소년이 섹스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 했다. 불법인 줄 알았다.

 

A : 나도다.

 

해나 : 근데 섹스를 해도 되더라. 콘돔도 사도 되고, 임신을 해도 되고, 임신을 해서 학교를 다녀도 된다는 거다. 되게 놀랐다. 근데 모텔 가는 건 또 안 되는 게 웃긴다. 난 어디서 하라고!

 

A : 나는 하도 할 데가 없으니까 교회에서 했다. 다른 사람 중에서는 학교 뒤에서 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억울하다. 법으로 금지되어있는 것도 아닌데.

 

라라: 초등학교는 다 공학인데 굳이 성교육을 할 때 남녀를 분리한다. 그 속에서 여자아이들은 특히 생식과 관련된 이야기, 임신, 출산 같은 정형적인 교육만 받는 것 같은데, 남자아이들은 신체 발달에 따른 자연스러운 행동들발기, 몽정, 사정, 자위얘기를 듣는다. 여자아이들에게 자위를 하지 말라는 얘기는 못 하더라도 여성의 생식기는 매우 중요한 거니까, 아프니까, 손으로 하면 안 된다 식의 얘기를 한다. 여자는 조신해야 되고, 남자는 폭력을 분출해도 된다는 쪽으로 이야기를 한다. 여전히 그런 것 같다.

 

해나 : 학교에서 청소년기에는 성욕이 넘친다고 가르치는데, 주로 남성청소년에 대해서만 그렇게 가르치고 여성청소년이 느끼는 성욕에 대해서는 딱히 언급이 없다. 그래서 나는 포르노를 처음 봤을 때나 섹스를 처음 했을 때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느낌이었다. 학교에서 남자애들 자위하고 야동도 본다고 평소에 편하게 이야기한다. 선생님이 학생에게 너 어젯밤에 뭐 했니? 야동 보고 자위했지?”라고 하기도 하고. 여성청소년이 나는 섹스하고 자위해요.”라고 말하지는 못하게 만들어 놓고서 말이다. 청소년은 성욕이 넘치지만 그걸 섹스로 풀면 안 되고, 남학생은 자위나 하라고 하고, 여학생은 성욕이 없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나는 자위를 할 때 내가 되게 특별한 존재인 줄 알았다.

 

A : 나도다. 난 내가 이걸 하면 더러운 사람이 되는 줄 알았다.

 

해나 : 그래서 나는, '핑거링'이라고 하나? 질에 손가락을 넣는 그 행위 자체가 굉장히 불결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굉장히 무서웠다. 이 세상에서 나 혼자 이럴까 봐.

 

G : 난 인터넷에서 어떤 여성분이 여성 자위를 자세하게 설명한 글을 봤던 게 좋았다. 그걸 보면서 , 이게 인정받아도 되는 거구나.’ 하면서 위안을 받았다. 성욕이 있는데 항상 억제해야 할 것 같고, 어느 선을 넘으면 안 될 것 같다는 걱정 때문에 온전히 즐기지 못했었다.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의 청소년을 위한 진짜 성교육 카드뉴스에도 여성 자위 주제가 있었는데, 좋았다. 앞으로 이런 콘텐츠가 많이 나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