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경제적 권리는 볼모다

2017. 7. 30. 22:24극한직업청소년


청소년의 경제적 권리는 볼모다

 

 

 최근 친구를 통해 ‘청소년 빈곤‘이라는 개념을 접하게 되었다. 청소년 빈곤은 나도 겪어왔던 것이지만 정의된 단어로 접하니 약간은 생소하기도 하고 내가 엄마로 인해 겪었던 일이 당연한 것이 아니구나 하고 느꼈다.

 

 엄마는 항상 나를 혼낼 때 통장을 뺏곤 했다. 혼날 땐 내게서 뺏은 통장의 내역을 보고 내가 이체를 한 사람이 누구인지 무얼 샀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불어야만 했다. 엄마는 내역 중에서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내역이 있다면 항상 화를 내곤 했다. 통장을 뺏고 자기 분을 못 이겨 통장을 갈기갈기 찢어 쓰레기통에 버린 적도 있다. (이 때문에 아직도 통장이 없다.) 체크카드를 만든 후론 체크카드도 뺏겼다. 뺏고 금방 돌려주긴 했지만, 그 행동과 함께 날아오는 날 향한 비난이 부당하다고 느껴 이의제기할 땐 ’가만히 있더니 카드 달랬다고 이러냐‘라며 마치 단지 카드를 뺏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화난 사람처럼 날 몰아세웠다.

 

 평소 용돈을 자주 타 쓰진 않는 편인데, 어쩌다 돈이 생기면 조금씩 아껴 그 돈으로 스스로 옷 사는 걸 좋아했다. 엄마랑 옷을 사러 가면 내가 입는 옷임에도 엄마의 취향에도 맞춰야 하고 옷을 사기 위해 입어 볼 때마다 쏟아지는 내 다리와 엉덩이에 대한 인신공격에 가까운 품평이 싫은 이유도 한몫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내 옷을 직접 골라서 사는 걸 좋아했는데 엄마는 이걸 극도로 싫어했다. 옷은 엄마가 사주니까 거지 같은 싸구려 옷 사지 말고 돈은 다른 쓰고 싶은 데에 쓰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돈을 옷을 사는 데 쓰고 싶었기 때문에 갖가지 핑계와 택배를 숨기기에 급급하며 옷을 샀었다. 어쩌다 몰래 산 것을 들키면 엄마는 옷을 또 새로 샀냐며 다 갖다 버리겠다고도 했다.

 

 맘에 들던 분홍색 맨투맨을 산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난 당시에 엄마에게 꾸중을 듣고 있었다. 옷과 전혀 상관없는 이유임은 분명했으나 엄마는 갑자기 그때 산 옷을 가져오라고 했다. 강압적인 명령에 못 이겨 옷을 가져다주자 그 옷을 입지 못하게 가위로 목 부분을 자르고 잘 잘리지 않자 손으로 찢다가 방 한구석에 내동댕이쳐버렸다. 비싼 옷도 아니고 자주 입은 옷도 아니었지만, 엄마의 이런 폭력적인 행동은 다른 나쁜 기억들과 더불어 내 머릿속에 오래도록 남아있다.

 

고등학교 1학년 무렵이었다. 한창 미술로 진로를 정하고 미술학원에 다닐 때였다. 뜬금없이 엄마 아는 사람이 가게를 하는데 거기서 알바 해 볼 생각이 없냐고 연락이 왔었다. 나는 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 반, 약간의 귀찮음 반으로 거절했다. 그리고 얼마 후 돈이 조금 궁해져서 다시 물어봤을 때 엄마는 알바 하라고 강요한 게 아니라 그냥 경험을 쌓아보는 게 어떻겠냐는 의미에서 물었다고 하며 제안을 번복했다. 결국 알바는 하지 않게 되었다. 이 일 이후로 청소년은 정식으로 일을 하기엔 미성숙한 존재이고 그냥 ‘경험’을 쌓기 위한 목적으로만 알바를 해야 하는지 약간 의문이 들기도 했다.


 얼마 전부터 늦은 새벽까지 자지 않다가 들키면 엄마는 아직까지 자지 않느냐며 마치 큰일이라도 난 양, 온갖 난리법석을 떨었다. 엄마는 아직도 내가 ‘애’라 주장하며(참고로 나는 19살이다.) 잘 시간에 자야 한다고 핀잔을 하는데, “알바 한다고 늦게까지 깨어있는 것도 아니고”라는 말을 꼭 넣었다. 그 속에는 나를 ‘애’라고 지칭하면서 돈을 벌어오는 것도 아니면 전기나 쓰며 늦게까지 깨어있지 말고 일찍 자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가 펼쳐져 있다. 설령 늦게까지 깨어있는 이유가 공부한다거나 그림을 그린다는, ‘어른’들이 생각하기에 ‘합리’적인 이유라도 말이다. 몇 년에 걸쳐서 겪어온 일상생활의 사소한 일이었는데 모아서 적어 보니 꽤 폭력적인 이야기도 있고, 남들이 보기엔 약간 심하다고 생각할 만한 이야기도 있는 것 같다. 나야 항상 당해서 무뎌지기도 했고 요즘은 정도가 약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렸을 때 당했던 일이 정당하거나 없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 다들 말은 하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꽤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워낙 가정폭력을 가볍게 여기는 사회이기도 한 것이 한몫하는 것 같기도 하다.) 청소년이 보호라는 명목하에 가정이나, 학교, 사회의 규율로부터 감시당하지 않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바라며 글을 끝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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