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신문 요즘것들

성미산에 론레가 산다 - 굶어죽지는 않을 거라는 근자감

2016.09.09 20:27 - 요즘것들 아수나로

학교를 넘어 마을에서


지역에 청소년이 산다 연속 인터뷰 (1) 성미산에 론레가 산다

요즘것들은 지역의 주민으로서 참여하며 살아가는 청소년들을 만났다.

관련기사 : YOSM SPECIAL 지역에 청소년이 산다

제보 : yosmpress@asunaro.or.kr



치이즈 (이하 치) : 어떤 계기로 성미산 마을에 살게 되었나?


론레 (이하 론) : 어린이집을 공동육아로 다니다가 일반 초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이후 담임선생님이 학생들을 체벌하는 문제가 드러나면서 부모와 상의해 이곳에 오게 되었다. 동생도 일반학교에 가는 것보다 대안학교에 가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전학을 왔고, 성미산학교의 구성원이 되자 자연스럽게 마을의 구성원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치 : 성미산마을이 다른 곳과 어떤 점이 다르다고 생각하나?


론 : 십분 정도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아는 사람 다섯 명은 꼭 만나게 되는 것, 그들과 반갑게 인사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아무래도 같은 동네에 살고 있기 때문에 가치관만을 공유하는 공동체보다는 더 물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은 것 같다. 마을에서 살면 굶을 일은 없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갖게 되기도 한다.



치 : 성미산마을에서 어떤 활동들을 하고 있나?


론 : 저는 노래하고 춤추는 걸 좋아해서 이곳저곳 행사 있을 때마다 공연을 하곤 했다. 대개는 학교 안에서 활동을 하는데 요즘은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하는 모임도 만들었다. 생태적인 삶을 위해 마을 안에 화덕을 보급하는 일도 하고 있다.


또 사회적으로 불합리한 일들이 벌어질 때마다 마을 주민들은 함께 사안에 대해 논의하고, 의견을 표명하고, 행동한다. 홍익재단이 성미산에 학교를 지으려고 했을 때 함께 투쟁했던 것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매일 사거리에서 문화제를 열었던 일, 마을 주민 100명이 모여서 성미산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합창단을 만들어 공연을 올렸던 일이 아직도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뿐만 아니라 세월호 기억문화제도 주기적으로 열고, 탈핵에 관한 영화를 함께 보는 등 마을 주민들과 가치관을 공유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론레는 지난달 망원역 앞에서 세월호 인양 관련 서명을 받으며 노래를 불렀다. 

그는 말한다. "노래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어요" 



치 : 청소년들도 마을 활동에 참여하는 분위기인가?


론 : 마을사람인 청소년(마을에 살고 있지만 마을구성원이 아닌 사람들도 있다)은 대부분 성미산학교에 다니고 있다. 청소년 개인적으로보다는 성미산학교 구성원으로서 마을 일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마을축제나 마을 카페 앞에서 하는 작은 공연에 참여하는 등 예술활동을 주로 한다. 가끔 최근 이슈가 되는 사안에 대한 스터디도 열리는데 관심 있는 청소년이 참여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주 열리지는 않고 참여율이 높은 편은 아니다. 청소년이 직접 마을 일을 기획하는 일도 드물다. 그래서 성미산학교에서는 학교를 넘어 마을에서 일을 기획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성미산학교와 성미산마을의 생태적 전환을 위해 생태기술로 만든 화덕과 태양광 발전기를 보급하는 사업이 진행중이다. 또 마을에 있는 헌옷, 헌물건 가게를 학생들이 직접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마을에 보급할 화덕을 만들고 있는 론레 (2013)

그는 마을의 일꾼으로서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것을 꿈꾼다.



치 : 성미산 지키기 운동에 대해 듣고 싶다.


론 : 2002-2003년에는 서울시가 성미산에 배수지를 건설하려고 해 투쟁이 있었고, 2009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성미산지키기 운동은 홍익재단이 부속 초, , 고를 건설하려고 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미 성미산에는 학교가 들어왔다. 게다가 녹지화 시킨다고 했던 공간에는 외국인기숙사가 지어지고 있다.


나는 2006년에 이사를 왔는데, 당시에는 너무 어릴 때라 무엇이 구체적으로 잘못되었는지, 어떤 이해관계가 얽혀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내가 놀던 공간이 없어지는 거구나싶어 산에 올라갔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공연도 하고, 발언도 하곤 했다. 처음에 모두들 이제 더 이상 산을 지키는 건 무리겠다고 이야기했을 때 많이 속상했고 이해도 안됐다. '왜 끝까지 안 하는 거지?' 하고.


그러다가 2013년에 영화 춤추는 숲을 보니 왜 이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당연히 산에 학교가 들어서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안 되는 일은 없다고 믿었다. 그런데 산에 거대한 건물이 들어섰고, 그래서 저를 비롯한 많은 친구들은 마음 한 켠에 실패에 대한 아픔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돌아보니 투쟁 자체는 상당히 의미 있었던 것 같다. 문화, 예술적 요소들을 사용해 더 풍요로워졌고, 마을 주민들이 그렇게까지 힘을 합쳐 무언가를 하려고 노력했던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 같다. 어떻게 어린이집 학부모와 성미산학교 졸업생이 만나서 긴 시간 대화를 나누고 같은 목표를 공유할 수 있었겠나.

 


치 : 성미산 마을이라는 공간이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론 : 그냥 다른 청소년들과 다를 거 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아이돌 좋아하고, 노래방 가고. 그런데 무슨 일을 하든지 어떤 생각을 하든지 마을과 연결시켜 해볼 수 있는 것들을 찾으려는 생각습관(?) 같은 것이 생긴 것 같다. 앞서 말했듯이 굶을 것 같지는 않고, 졸업 이후 무언가 마을 안에서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도 있다.


, 또 아무래도 돌아다니다 보면 마을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도 하고 소문도 빠르게 퍼져서, 연애를 소심하게 하게 되는 것도 마을이 저에게 미치는 영향 중 하나인 것 같다.


 

치 : 지역 문제에 청소년이 더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또 그러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론 : 더더욱 열심히 참여해야할 것 같다. 아무래도 성미산마을은 어린이부터 청소년까지의 교육을 위한 교육공동체로 시작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마을의 주체가 30-50대 부모인 경향이 있다. 아이러니컬하다. 청소년이 마을 안에서 사업을 하려고 하면 이용자가 아닌 학부모의 입장으로 이것저것 알려주려는 분들도 간혹 계시. 또 성미산학교에 고등과정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청년들이 일할 거리가 마땅히 있지 않다. 깊게 고민하고 개척해나가야 할 것 같다.


다음기사 : 밀양에 긁적이 산다 - 모두가 제 할 말을 하는 세상 =>


- 치이즈 기자


댓글 로드 중…

트랙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URL을 배껴둬서 트랙백을 보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