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신문 요즘것들

Special 02 :: 청소년에게 삶의 정치를

2016.05.05 22:40 - 요즘것들 아수나로

Special 02

:: 청소년에게 삶의 정치를

 학교와 가정에서 주체가 될 권리





 청소년에게는 참정권이 없다. 이 단순한 말은 청소년에게 선거권이 없고, 선거 운동을 할 수 없다는 말에서 그치지 않는다. 참정권은 '정치에 참여할 권리'이고, 정치는 '선거'에만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는 사람들 사이의 의견 차이나 이해 관계를 둘러싼 다툼을 해결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청소년들의 정치는 진지하게 고려되지 못하고, 그저 '싸우면 안 된다'는 도덕적인 차원의 말들로 부정 당한다. 부모나 교사의 결정에 의해 일방적으로 다툼이 마무리되고, 그렇기 때문에 토론과 협상을 통해 의견 차이를 좁혀 나가는 경험이 부족하다.

 정치 자체에 다가갈 수 없는 청소년들에게, 민주주의나 그것을 실현시킬 방법에 대해 논하는 것은 사치나 다름없다. 민주주의는 어떤 집단 안에 있는 구성원들이 주인으로서 스스로 권력을 행사하는 제도이지만, 청소년들은 학교와 가정 등 자신이 가장 밀접하게 소속된 집단에서도 의견을 제시하거나 결정권을 행사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각 집단에서는 비청소년이 청소년에 비해 훨씬 더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치우친 권력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청소년과 비청소년 사이의 의사소통을 막는다는 것이다. 시작할 때부터 기울어진 토대 아래서 비청소년과 정치를 시도하는 학교와 가정의 청소년들은 항상 여러 문제들을 마주친다.


학생회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학교 안에서 자신들의 문제를 학내 정치를 통해 해결하려고 나서는 대표적인 조직은 학생회다. 하지만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회를 운영하고 있는 ㅂ씨는 ‘학생회가 학교의 운영과 규칙 제정에 대해서 관여할 수 있는 바는 전혀 없다’고 말한다. 현재 학생회장인 ㅂ씨는 출마할 때 ‘두발 자유’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학교가 두발에 대해 규제하는 것은 학생의 신체의 자유를 규제하는 일이고, 많은 학생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 학교 측은 ‘비현실적인 공약’이라며 압박을 가했다. 선거 기간 동안 학생들 앞에서 ㅂ씨의 포스터를 보고 '저 공약이 지켜지겠나', '저 공약은 안 된다' 고 말했고, 당선 이후에도 비꼬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 학생회 회의 도중 교사가 들어와서 건의사항에 대한 제재를 가하고 회의 진행을 방해시키는 일도 잦았다. 학생회에 배정되는 예산은 많지만 정작 그 예산을 학생회에서 직접 관리하지 못하고 학교가 관리하기 때문에 학생회는 필요한 일에 비용을 지출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학생회 자체에서 사업을 진행하거나 학생회에 속해있지 않은 남은 학생들을 모아 집단으로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학교가 요구하는 역할은

학생 대표가 아닌 모범생


 학교에서는 학생회를 어떤 조직으로 보고 있기에 사업 진행도, 집단 행동도 허용하지 않는 걸까? 학생회장인 ㅂ씨는 학칙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교사들에게 ‘학생회장이 그래도 되나’ 등의 말을 듣는다고 한다. 실제로 학교 안에서 학생회장은 ‘번듯한 모범생’과 같은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학생회장이라는 위치가 ‘리더십’이라는 측면에서 부각되면서 대입을 위한 ‘스펙’ 중 하나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생회, 그리고 학생회장이라는 ‘학칙을 가장 잘 지키는’ 자리가 아니라 학생들을 대변해 ‘학칙을 바꾸어나가는’ 자리이다.

 또한 학생회의 목적이자 기본 원리인 학교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학생회에게 학교 운영에 참여할 권한, 학교 예산 사용을 승인할 권한 등 지금보다 더 많은 권한들이 주어져야 한다. 학생이 교육의 주체라면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장소인 학교의 운영과 행정에도 주체적으로 관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학생회장에게 모범생의 위치를 강요하는 학교의 실태는 학생회를 학교의 구성원으로 존중하는 척, 실상 모든 것이 소수의 관리자에 의해 운영되는 독재적인 구조를 입증하는 꼴이다.


가족이니까 괜찮아?

가정에 절실한 평등과 민주주의


 가정 안에서도 권력의 불평등으로 인해 청소년과 친권자 사이에 설득과 협상, 즉 정치는 매우 어렵다. 약 2주간 탈가정을 했던 ㅈ씨는 부모/친권자와의 대화를 ‘대본을 읽는 듯’ 했다고 말한다. 부모와의 대화는 일방적인 부모의 요구의 연속에 지나지 않았고, 부모가 원하는 대답을 하기 전까지는 그러한 ‘대화’를 끝낼 수 없었다. 집을 나가기 전 날, ㅈ씨는 대학 진학과 진로, 불평등한 가족관계에 대해 부모와 대화를 시도했지만 부모는 ㅈ씨를 나쁜 사람에게 물든 것처럼 취급했고, 정신과 치료를 받아보라고 권했다. 이처럼 부모는 ㅈ씨에게 ‘부모의 명령을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수동적인 아들’의 역할을 요구했고, 이에 반기를 드는 것을 비정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소 극단적으로 보이는 이러한 사례는 사실 한국의 대부분의 가정에서 적용이 가능하다. 친권자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을 때 청소년 자녀가 그것을 조정하려고 하면 ‘말대꾸’를 한다고 비난 받고, 청소년 자녀의 행동을 결정지을 때에도 당사자의 권리보다 친권자의 요구가 더 중요하게 고려되는 것을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나이와 경제적 능력 등의 이유로 친권자가 청소년 자녀보다 권력적으로 우위에 있고,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권한을 가지는 것이 정상으로 여겨지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독립할 수 있어야 평등할 수 있다


 학교 민주주의라는 말은 형식적으로나마 자리를 잡고 있는 반면에 반면에 청소년 자녀의 입장에서 제기하는 가정에서의 평등과 민주주의의 문제는 잘 드러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청소년 자녀가 실질적인 가족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가족 내에서 친권자/부모와 청소년 자녀 사이의 불평등한 권력 관계가 깨지고, 합리적인 정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청소년 자녀가 비청소년인 친권자와 완전히 평등한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청소년의 경제적 독립이 사회적으로 가능해야 하고, 법적으로 거주지를 선택할 권리도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모든 것들이 아직은 이루어지기 힘들다 해도, 최소한 청소년 자녀에게 직접 해당되는 일을 결정하는 때만이라도 당사자의 의견이 충분히 존중되고 반영될 수 있도록 민주적인 문화가 가정 안에 스며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지금껏 드러나지 않았던, 가정 내 약자로서 겪었던 청소년 자녀들의 고통이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끄럽게 문제를 터트릴 권리


 ‘가출 여자청소년 공간 이용 및 폭력 피해 실태’(가출여자청소년실태자료)에 따르면 탈가정 청소년들은 주로 가족 폭력이나 폭언(63.8%) 때문에 집을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갈등과 문제 상황을 정치의 과정을 거쳐 완만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강제적인 복종 뒤에 꾹꾹 참아왔다가 터뜨리면서 불안정한 탈가정 상태까지 가게 되는 것이다.

참정권이 없는 청소년은 학교와 가정 안에서도 정치적 주체성을 인정받지 못 한다. 의회 안에서의 정치 참여도 물론 청소년 인권의 토대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겠지만, 지금 당장 학교와 가정에서 비합리적인 규칙들에 의해 통제를 받고 있는 청소년들은 삶의 터전인 학교와 가정에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먼저 보장 받아야 한다. 행복한 학교, 화목한 가정은 어떤 온정의 베풂이 아닌, 학생과 자녀가 정치의 주체가 될 때 가능하다.



- 치이즈 기자

쓰면서도 가정 민주주의는 참 황홀하네요. 

가정 폭력에 시달렸던 청소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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