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고에 다니는 나에게 입시경쟁은 울컥거림이다

2016. 5. 2. 20:06극한직업청소년



"bbang bbang"  그림 : 밀루

 


학교 가는 날이면 해가 뜨는 것을 지하철 창밖으로 본다. 청량리역을 지날 때 즈음 떠오르는 해를 보면 어쩐지 울컥울컥할 때가 있다. 내가 사는 곳은 은평구인데 왜 해는 청량리에서만 뜰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나에게 입시경쟁은 그런 울컥거림이다. 우리 학교는 중랑구 망우동에 위치한 특성화고로 서울, 경기 각지에서 학생들이 온다. 그래서 통학거리도 다들 다양하다. 아침부터 달리기 시작한 지하철이 학교에 가까워질수록 익숙한 얼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와 같은 옷을 입고, 비슷한 것들을 짊어 매고 있는 친구들, 얼굴에는 피곤함이 묻어있는 친구들과 나는 교실이 아닌 이른 시각 지하철에서 첫 인사를 한다. 그날 시험이라도 있으면 웃고 떠들 새도 없이 다들 손에 쥐고 있는 종이로 눈이 간다. 모두들 저마다의 울컥거림을 갖고 그렇게 학교에 도착을 하면, 교문에 들어서기 전에 뒤를 돌아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교문을 들어가면 ‘아! 달이 떠야 다시 나오겠구나!’ 하며 아침에 해를 볼 때와는 다른 울컥거림이 생긴다.

 

혹자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르겠다. “학교에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너희가 뭐가 그렇게 약한 소리냐고” 특성화고 학생들이 아니면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본인이 원하는 분야의 특성화가 된 학교에 갔다고 해서 그 분야의 과목으로 수능을 보는 것은 아니다. 어느 계열의 학교냐에 따라서 직업탐구 과목을 선택한다. (인문계 학생들이 사회탐구 과학탐구를 선택해서 수능을 치루는 것처럼 특성화고 학생들은 직업탐구를 본다.) 나의 학교 같은 경우는 상경계열의 학교이기 때문에 회계원리와 상업경제를 배운다. 이 계열에 따라서 수능을 보는 탐구과목이 정해지는 것이다. 참고로 나는 영상과 학생이다. 그래도 수능에서 보는 직업탐구는 회계와 상업경제이다. 다시 말해 대학을 회계로 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작년 같은 경우는 영상에 관련된 전공과목 시간보다도 상경계열 과목 시수가 더 많았다. 배우고 싶은 것이 있어 선택을 해서 온 학교지만, 수능을 위해 배우는 과목들의 시수가 정작 더 많은 것이었다.

 

앞서 무슨 약한 소리를 하냐 말한 이들에게 이제 대답하고자 한다. “그래,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우리지만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이라는 타이틀 아래에서 입시로 허덕이는 것은 여기고 저기고 다를 게 없단 말이다.” 요새 들어, 배움이란 것에 필요 없는 것은 없지만 시험만을 위한, 입시만을 위한 수업은 진정한 배움의 모습일까 하는 생각들을 한다. 나만 하더라도 대학교 입시에 필요한 직탐 과목들을 배우는 시간에 “현금예금당좌예금현금성자산-”을 하고 있을 때면 이게 무슨 의미일까 문득 생각에 잠긴다. 수능을 보고나면 당장 2주만 지나도 내 머리를 떠날 것들인데 말이다. 이 문제가 단순히 몇 과목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은 아마 모든 이가 알 것이다. 시험용 공부로 가득 찬 시간표를 보면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저런 건 수능 말고 어디에 쓰일까? 수능이라는 꼬리표만 떼면 얼마든지 더 재밌게 배울 수 있을 텐데, 시간에 쫓겨 시험을 위해 하는 공부는 나중에 커서 엿도 못 바꿔먹겠다.’ 라는 생각들을 한다. 알아가는 기쁨은 이미 학교에는 없다. 그저 나를 평가하는 숫자들만 가득할 뿐이다. 그리고 나를 둘러싼 숫자들에게 익숙해지는 것이 나의 고등학교 생활이고, 또 입시경쟁의 한 부분이다.


이 글은 아수나로와 전교조가 함께 발행한 2014 학생의날 신문 '나에게 입시경쟁이란' 코너에 기고되었던 글입니다. 글쓴이의 허락을 받아 삽화를 제작하고 함께 다시 올립니다.


김너나

학교 다녔었고 졸업해서 어디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 밖에서 햇살을 받으니 좋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