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01 :: 청소년이라 덕질이 힘들다.

2016. 2. 25. 03:00Yosm Special

SPECIAL 01

:: 청소년이라 덕질이 힘들다.





 살면서 한번쯤 무언가에 빠져 본 기억이 있는 사람은 ‘덕질’의 행복에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덕질의 세계에서 여전히 청소년은 소외된다. 주로 많은 청소년들이 열광하는 아이돌 문화는 대중문화 속에서도 무시받기 일쑤고, 팬들은 ‘급식충’, ‘빠순이’로 불리며 인터넷 상에서 싸잡혀 욕을 먹는 일이 흔하다.


 사람들은 아이돌 그룹의 팬이라면 무조건 10대들을 떠올리며 ‘미성숙한’ 팬들의 행동을 손가락질 하고, 팬 커뮤니티 안에서는 20대 팬들이 권한을 가지고 주요한 일들을 하며 10대 팬들을 배척한다. 이렇듯 팬덤 안팎에서 청소년 팬들은 욕을 먹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어떤 청소년들에게는  덕질을 하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청소년이라서‘ 덕질이 힘든 이유를 살펴보았다.



10대 팬은 동네북?


 10대 팬들은 종종 소속사나 방송 스탭, 경호회사 직원들의 불합리한 대우를 견뎌야 한다. 방청이 가능한 방송이나 팬 사인회 등에서 경호원들은 팬들에게 폭언을 하기도 한다. 모 가수의 콘서트에 교복을 입고 갔던 한 청소년은 콘서트 경호원에게 “학교에서 참 선생님 말씀 안 듣게 생겼다.”라는 조롱을 들었다. 또한 방청을 하러 갔던 한 팬은 줄을 서는 동안 경호원에게 “XXX들아, 줄 똑바로 서라고. 너네 못 들어가고 싶냐?”라는 말을 들었다. 이러한 무시와 폭언이 꾸준히 일어나는 데도 팬들은 마땅히 호소할 수 있는 곳이 없다.


 그 당시 폭언을 들었던 청소년은 “내가 교복을 입고 있었으니 만만해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나 싶었다. 너무 황당하고 어이없었다”고 말했다. 학교의 ‘관리 대상’으로 존재하는 청소년들이 소속사의 관리 대상으로 이어지면서 인격적으로 존중받지 못 할 때가 많다.



팬덤 안에서의 나이차별


 덕질이 즐거운 이유는 덕후들끼리 모였을 때 생기는 정서적 유대감 때문이기도 하다. 팬들은 주로 팬페이지에서 사진이나 영상을 공유하고, 팬픽을 같이 쓰거나 팬아트를 그린다. 하지만 이러한 팬 커뮤니티에서도 청소년 팬들은 미성숙하다는 편견으로 쉽게 마녀사냥의 대상이 된다. 예를 들어, 다른 가수의 흉을 보거나 가수의 사생활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등 이른바 ‘무개념’ 행동들을 하는 팬들을 두고 근거 없이 10대들이 한 짓이라고 욕을 할 때가 많다. 같이 팬픽을 쓰는 온라인 모임 구성원을 구하는 데에도 ‘97년생 이상만 구해요’ 등의 나이 제한을 두는 경우도 있다.


 전반적으로 그러한 분위기가 주도하는 가운데서 10대 팬들은 설사 자신이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해도, 그런 나이제한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해도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다.


 주요한 실무를 맡는 일을 주로 비청소년 팬들이 맡기도 한다. 대부분 학교에서 오랜 시간 있기 때문에 청소년 팬들이 잘 나서지 않는 것도 사실이지만, 비청소년 팬들이 일방적으로 10대 팬들이 그러한 역할을 맡는 것을 막을 때도 있다. 때로 그런 역할을 자원한 팬이 고3이라고 밝히면 비청소년 팬들은 ‘수능 끝나고 해라’, ‘오빠들이 네 인생 책임져주지 않는다’와 같은 훈계를 늘어놓는다. 그러면 비청소년 팬들만의 운영이 되어버린다. 이렇듯 팬들 사이에서도 나이에 따라 장벽을 만들기 때문에 청소년 팬들은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덕질이 불가능한 생활 방식


 하지만 이렇게 힘든 덕질조차 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많다. 물리적으로 시간과 돈이 턱없이 부족해서다. 청소년들이 공부만 하도록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10대 팬들은 단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한다.


 하루 종일 학생들을 붙잡아놓는 학교도 그러한 정서를 대변한다. 학교는 빈번히 학생들의 덕질에 퇴짜를 놓는데, 대부분의 행사는 평일 낮에 하기 때문에 학교에 조퇴나 결석을 하지 않고는 갈 수가 없다. 하지만 부모와 교사의 허락이 없는 경우 조퇴나 결석이 되지 않는 학교에서 덕질은 절대 마땅한 조퇴, 결석 사유가 되지 못한다. 이럴 때 청소년 팬들은 부모와 교사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그냥 가는 것을 포기해버린다.


 야자시간에 학교 화장실에서 콘서트 티켓팅을 했던 한 청소년은 “야자 시간에 화장실을 간다고 나와서 했는데 들킬까봐 계속 조마조마했고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닌데...”라고 말했다.


 비싼 콘서트 티켓이나 굿즈 가격도 용돈에 의지하고 있는 많은 청소년들에게는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기념일에 맞추어 가수에게 선물을 하는 서포트 활동은 어림도 없고, 시상식 같은 경우 유료 투표 때문에 좌절하는 경우도 많다.


 청소년들은 알바를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여건도 열악할 뿐만 아니라 설령 직접 돈을 벌어서 산다고 해도 시간과 돈을 낭비한다는 시선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 또한 ‘청소년들은 공부만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알바를 하는 것도, 덕질을 하는 것도 청소년들에게는 무엇 하나 마음 편히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미 따가운 시선에 너덜너덜해진 청소년 팬들은 친구의 ‘입덕*’을 말린다. 덕질로 인해 부모나 교사와 얼마나 갈등을 빚게 될지, 인터넷 상에서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게 될지 알기 때문이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조건, 예의를 지켜가며 개념 있게 행동해야 한다는 조건, 돈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는 조건 등을 주렁주렁 매달고서 겨우 덕질을 ‘허락’받은 청소년들은 오늘도 덕질에 앞서 눈치를 살피기 바쁘다.


* 입덕 : 덕후의 세계로 입문하는 것 = 덕후가 되는 것.




글 : 치이즈 기자

그림 : 치리